나의 초등학교 시절과 1950대말의 교육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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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등학교 시절과 1950대말의 교육환경
  • 보은신문
  • 승인 2006.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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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사 범 - 보은읍 중동리(하 동안이) 공학박사·철도기술사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지만 1950년대 말은 학교시설이 열악하였다.  특히, 학림국민학교는 신설학교라 교육시설이 아주 열악하였다. 이러하였던 학림국민학교가 본궤도로 들어서 발전하다가 이제는 폐교되어 안타깝기에, 점점 잊혀가는 모교(제3회 졸업)의 초창기 모습을 정리하여 보았다.

입학당시(단기4291년)는 삼산국민학교 분교이었으며, 제1학년은 산성리 송정의 잠실, 제2학년은 산성리 구루목의 잠실, 제3학년은 학림리의 잠실에서 수업을 하였다. 학구는 보은면의 학림리, 중동리, 강산리, 신함리와 내북면의 산성리(현재 보은읍) 등 5개리이었다. 제1학년이 간이교실(2개 교실)로 사용하였던 잠실은 흙바닥이었으므로 가마니를 깔고 앉아서 수업하였다. 이듬해 1학년말부터는 임시로 지은 가교사에서 수업하였으며 2학년 때는 이도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하였다. 2학년 때는 본교인 삼산국민학교의 운동회에 참가하였다.

3학년 때에 학림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앰프시설이 없으므로 운동회 때는 빌려서 사용하였다. 3~4학년 때는 교실이 부족하여 1 교실을 칸막이 하여 2 학급씩 이용하였다. 4학년 때는 속리산으로 가을소풍을 갔는데 40여 리를 걸어서 갔고 올 때는 소형버스를 이용하였으며, 반별로 전체 급우들이 한 방에서 같이 숙박하였다. 신설학교라서 작업도 많이 하였다.  수업시간에도 운동장 고르기, 꽃밭 만들기, 울타리 나무 심기 등 학교 다듬기 작업을 하였고, 산에 나무심기, 논에서 자갈 치우기, 모내기 등을 수시로 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중간부터는 담임선생님께서 중학 입학시험에 대비하여 매일 방과 후에 학교숙직실에서 6명의 급우들을 별도로 지도하셨다. 그 당시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호롱불을 켜고 11시까지 공부하고 다음날 5시에 기상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당시의 어린 나이로서는 매우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생각된다.

5학년 때는 삼년산성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삼국 시대에 삼년산성은 신라의 땅이었고 동안이 뜰을 건너서 멀리 마주 보이는 산성리 잔미의 산성은 백제의 땅이었으며 신라와 백제가 보청천을 경계로 전쟁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들었다. 학림국민학교는 중동(中東)리(위 동안이)에 위치하였으나 읍내에서 가장 먼 학림(鶴林)리의 이름을 따왔다. 학림초등학교는 2000년에 분교로 되었다가 2003년에 읍내의 동광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이상으로, 초등학교 시절의 학교생활과 교육환경에 대하여 지면상의 제약으로 극히 일부만을 되돌아보았지만, 학교시설이 좋지 않았어도 오히려 정신적으로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또한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성장한 것은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었다고 생각된다. 포근한 내 고향 보은(報恩)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보은이 더욱 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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