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회남면 거교2리) 대청댐 건설로 새로 날망에 둥지 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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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회남면 거교2리) 대청댐 건설로 새로 날망에 둥지 튼 마을
  • 보은신문
  • 승인 2006.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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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멈칫한다. 그리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빗줄기가 그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댄다.

거교2리를 찾은 날, 그날의 날씨는 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들 사이에선 김장했냐는 말이 자연스레 오고 간다. 그것을 밑천 삼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아주머니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김장 한번 하면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등 종류별로 있는 대로 김치를 담궈 그걸로 겨울을 났지만 요즘은 누가 그렇게 하냐며 세상 살기 참 좋아졌다고 한다. 밭에 심은 배추가 속은 꽉 찼는지, 김장은 몇 포기나 할건지 언제 할건지, 배추 값이 싼지 비싼지 김장하는 일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다 관심사다.

시장에 나온 배추며 무 등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다른 반찬 마다하고 방금 담근 배추김치만으로 밥 한 공기 뚝딱 비웠던 김장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거교2리는 80년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사담마루라 불리던 원 마을이 수몰되었다.
그후 지금의 자리에 마을이 새로 형성돼 주민들이 모여산 지도 20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기고 있다.

571번 지방도를 따라 회남면에 들어서면 대청호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얼마 뒤 거신교를 만나게 된다. 그 다리를 건너면 도로 양편으로 솟은 언덕배기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산을 깎아 마을과 학교, 면사무소의 터를 닦고 가운데를 파 내려가 도로를 뚫은 회남면 소재지 거교2리다.

도로 오른편 언덕에는 신곡리에 있었던 회남초등학교와 면사무소가 옮겨왔으며 왼편 언덕에는 마을이 새로 형성돼 현재 40가구가 살고 있다.

이처럼 지대가 높은 언덕배기 위에 마을이 들어서 있기에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더군다나 면사무소가 바로 옆에 있어도 도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지난 92년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오른편 언덕과 왼편 언덕을 잇는 구름다리를 놓았다.

그전에도 조곡리로 건너다니던 다리가 있긴 했지만 예전부터 거교리로 불리다 실제 거신교라는 큰 다리가 들어서고 면사무소를 잇는 구름다리가 생긴 것이다.

거교2리는 고지대에 있어 사람들이 흔히 "날망"이라고도 부른다.

수몰 전 30여 가구였던 주민들이 80년 6월 현재의 날망으로 모두 이사를 한 뒤 2개월 후 보은에는 큰 수해가 났었다. 이주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주민들은 그때 일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날망은 대전, 청주에서 오는 시내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마을 봉사자로는 송석주(67) 이장과 양진석(73) 노인회장, 강원구(56) 새마을지도자, 김임순(74) 부녀회장이 있다.


# 수몰 전에는 부촌이었던 마을
거교2리는 마을이 수몰되기 전까지만 해도 회남면에서 제일 가는 부촌이었다고 한다.
30가구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주민들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농경지도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지을 땅이 없다. 마을과 함께 농경지도 물에 잠기고 마을이 들어선 언덕 주변은 대청호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농사지을 땅이 없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고추, 콩, 깨 등 밭작물을 조금씩 경작하고 있는 정도다.
벼농사를 하는 농가는 한 집도 없다고 한다. 전에는 한 집이 벼농사를 했었으나 주인 아저씨가 연로해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쌀을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남은 옛날부터 감 농사가 잘 되는 지역으로 거교2리에는 전답 주변이나 산기슭 등 마을 곳곳에 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감이 흉년이 들면 벼가 흉년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감을 수확하는 가을철이 돌아오면 서울 등지에서 감 장수들이 모여들고 시세도 좋았다. 감은 주민들에게 훌륭한 농가 소득원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대청댐 건설 이후 감 농사가 잘 안 돼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된 지 오래다.
좋은 시절은 씁쓸함만 남긴 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관광개발이 있을 것이라는 수몰시 이주에 따른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다른 대책이나 지원도 없는 실정이다. 또 마을에 주력사업이 없어 경제기반이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그때를 추억하는 주민들은 가슴 한편이 언제나 시리다.
희망도 품어봤고 철썩 같이 믿어도 봤다. 그래도 주민들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
면소재지인 거교2리에는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미용실, 약방, 건강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잡고 있으며 파출소는 날망이 아닌 거신교 건너에 있는 조곡리 마을 앞에 위치한다.
마을에는 중국집과 식당, 슈퍼도 있는데 장사가 잘 된다고 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용하거나 심지어 타 지역에서 일하는 공사현장 인부들도 이곳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호숫가에서 몇 척의 고깃배를 볼 수 있었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집이 4가구로 한때는 풍년을 노래할 만큼 고기가 많이 잡혔으나 갈수록 그 양이 줄어들어 현재 고갈 상태라고까지 말한다.
거교2리는 상업, 어업, 농업 등 주민들이 다양한 생활 기반을 갖고 있으나 상업을 제외하고는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새소식이 전해질 기미가 아예 안보이니 주민들도 단념한 듯 하다.
대청호의 멋진 경관을 넋 놓고 바라보기가 조심스러웠다.

# 대청호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사람들
거교2리는 마을회관의 2층을 회남면 노인회가 사무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기증을 했다.
회남면 노인회장인 김영근옹(80)이 날망에 살고 있으며 노인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여 대청호 주변을 청소한다고 한다.
대청호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대청호 품에 안겨 그것을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북으로는 거교1리와 접해 있으며 마을의 동,서,남쪽은 대청호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거교2리.
북쪽으로 도로가 놓여 있는 곳을 빼면 사방에 물이 차 있어 그야말로 대청호의 섬으로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밤에 멀리서 바라다보면 마을의 불빛이 높이 빛나고 또 수면에 일렁거리고 있어 마치 대청호를 지나는 큰배처럼 보인다고 한다.
경치가 좋고 공기도 좋아 청주나 대전 쪽에서 날망으로 이사와 사는 사람들이 4가구나 있다고 했다. 그들은 50대 후반인 한 가구를 빼고는 모두 60세 이상으로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대청호의 모습에 반해 마을로 찾아든 이들이다.
이곳은 식수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수질은 좋으나 지대가 높아 물의 양이 적어 곤란을 겪고 있다. 벌써 관정을 3번이나 팠는데 그전이나 다를 바가 없어 다시 또 팔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에 식수를 공급하는 대청호가 코앞이고 그로 인해 손해보며 살아온 이들도 그들인데 먹을 물도 모자라 불편을 겪는 처지라니 세상엔 이보다 더한 일도 많겠지만 알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송석주 이장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마을에 한 할머니가 살았었다고 한다. 자손이 없었던 할머니는 죽기 전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마을에 기증했고 주민들은 할머니의 제사를 대신 지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때는 알 수 없고 한 백 년 전쯤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음력 9월9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장만한 음식으로 해마다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는 할머니가 기증한 토지를 팔아 기금으로 적립해 놓고 제사 비용을 충당한다.
새로 생긴 마을 날망. 그곳에는 대청댐 담수로 고향을 잃은 여러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처음에는 애로 사항도 많았지만 이제는 서로가 화합하며 잘 지낸다고 한다. 송석주 이장은 서로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며 주민화합을 강조했다.
비가 내린 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거교2리에 내리쬐는 햇살은 제법 따뜻했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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