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승면 서원1리-사과 재배로 고소득 얻는 부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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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면 서원1리-사과 재배로 고소득 얻는 부자마을
  • 보은신문
  • 승인 2006.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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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마을이다"
삼승면 서원1리를 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정말 그랬다. 마을 주변이 온통 사과밭이다.
봄, 여름, 가을 과수원에서 살아온 알이 굵고 빨간 사과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다.
마을 뒷쪽으로는 금적산이 높다랗게 솟아 있고 앞으로는 국도 19호선이 지나가고 또 그 앞에는 행정 구역상 상가리(삼승면)에 속해 있지만 삼승초등학교가 있는 곳 서원1리.
마을에 도착한 순간 과수원의 사과 보다 내 눈을 먼저 사로잡은 사과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사과 모양을 한 마을 표석이다.
그것은 비록 돌로 만든 것이었지만 탐스럽고 먹음직스런 진짜 사과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주민들의 사과 사랑이 듬뿍 느껴지기도 했다.
서원1리는 배나무골, 감나무골, 신촌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곳이다.
송진헌 이장이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원래 국도변에 위치한 신촌에는 집이 몇 채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씩 그쪽으로 이사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본래 마을인 배나무골과 감나무골 보다 더 큰 마을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서원1리 49가구 중 현재 배나무골과 감나무골에는 각각 10여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두 곳은 예전에 배나무와 감나무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뚜렷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배나무골 앞에 큰 배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서원1리는 주민들 대부분이 사과를 주작물로 재배하기 때문에 벼농사 규모는 작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콤바인이 한 대도 없었으나 올해 한 농가가 처음으로 구입을 했다는 말을 송진헌 이장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사과 작목반에 든 농가가 20가구로 가입하지 않은 농가까지 합하면 23가구 정도가 사과농사를 짓는 서원1리.
마을 봉사자로는 송진헌(48) 이장과 송낙헌(76) 노인회장, 김학환(45) 새마을 지도자, 김옥주(52) 부녀회장이 있다.

# 보은의 三山 중 하나인 금적산이 있는 곳
보은의 3대 명산 중의 하나인 금적산이 있는 마을 서원1리.
보은의 三山이라 함은 속리산, 구병산, 금적산을 일컫는데 속리산은 아버지산, 구병산은 어머니산, 금적산은 아들산이다. 송진헌 이장의 말에 따르면 금적산을 어머니산, 구병산을 아들산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금적산은 삼승면 서원1,2리에 걸쳐 남북으로 삼태기 모양을 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와 경계로 해발이 652미터가 된다. 산 옆으로는 삼승면 선곡리가 자리하고 있다.
금적산은 명산으로 옛 지리서에 고을 남쪽 25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산 정상은 조망을 즐기며 쉬어가기 그만인 곳으로 구병산과 속리산의 능선을 볼 수 있으며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라고 한다.
정상에 올라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많다고 말하는 송진헌 이장.
마을에 그런 명산이 있는데 어떻게 그곳을 오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너무나 짧은 생각이었다.
금적산을 오르고 내리며 살아온 주민들의 삶의 한 단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속리산은 국립공원으로 구병산은 충북 알프스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금적산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등산로가 있는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봉수대지는 금적산에 있던 봉수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가 하나 있는데 고을 남쪽 금적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봉수는 <신중동국여지승람>부터 기록되어 있지 않아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적산 봉수는 남쪽에 있는 옥천군 청산의 박달라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회인 용산점으로 연락하였던 것으로 산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남쪽으로 청산방면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 회인 용산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반령 산줄기가 조망된다고 전해진다.
현재 봉수터로 추측되는 지점에는 KBS, MBC 방송국 송신탑이 건설되었다.
처음 보는 금적산이었다.
눈을 떼기가 아쉬울 정도로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누군가에게 금적산을 보러 가려거든 꼭 사진기를 가져가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빈촌에서 부촌으로 만들어준 사과
꿈도 못 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과나무를 밭에 심는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지역 전체를 온통 사과밭으로 만든 것은 지난 70년대부터다.
지금은 작고한 김종호씨가 그 당시 교육청 앞으로 되어있던 땅을 구입해 마을에서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김종호씨가 구입한 땅은 소나무 밭이었던 곳으로 산지를 개간해 사과농사를 지은 것이다.
그 후 다른 집에서도 점차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해 지금의 사과골이 될 수 있었다.
송진헌 이장은 마을에서 사과를 많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삼승면에서도 서원1리가 제일 빠를 것이라고 했다.
7,8년 전만 해도 사과재배 면적이 가장 많았으나 다른 지역에 사과 재배 농가나 경지 면적이 늘어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사과농사를 짓기 전에는 빈촌이었던 곳이 사과를 심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훨씬 나아졌다. 당시 사과 한 상자 값이 쌀5말이나 6말 정도 했으니 배고픔도 덜어내고 땅도 사고 자식들 공부도 마음껏 가르칠 수 있는 형편이 된 것이다.
마을에는 50평 규모의 마을 공동 저온 저장고가 있다. 보은군에서 제일 먼저 지은 것으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예전부터 서원1리 주민들의 사과 재배는 두각을 보여 왔다.
시행착오를 겪고 주민들 스스로 좀더 앞서가고자 노력한 결과 재배 기술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져 품질 향상을 꾀할 수 있었다.
수확한 사과는 남보은(前 삼승) 농협이나 원예농협을 통해 공동출하를 하거나 일부는 개인이 직접 공판장으로 가져가 거래를 하고 있다. 흠집이 난 사과 같은 경우는 원협에서 수거해 가공하여 따로 판매되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 마을 주민들이 심기 시작한 사과나무. 그것은 마을에 부를 가져다 주어 가난을 면케해주었다.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사과 농사 한번 잘 지어보고자 남모르는 애환도 겪었으리라.
위친계를 만들어 마을 애경사를 챙겼으나 청년회로 통합이 돼 60세 이하의 청년회 회원들이 마을일을 돌보고 있다. 한 집에 한 명씩 의무적으로 회원 가입을 해야한다고 한다. 자식들이 모두 나가 있더라도 예외는 없다. 외지에 있는 아들이 대신 참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한 집에 한 명씩 가입해야 된다는 말에 그렇게 하기까지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 그 정도로 단합이 잘 되냐고 물었다.
송진헌 이장은 아직까진 잘 된다고 했다.
마음씨 넉넉하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마음만큼 빛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한 집에 한 명을 원칙으로 하는 규칙이 지금까지 지켜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서원1리 마을 앞에도 돌아오는 28일과 29일 열리는 제2회 사과 축제를 알리기 위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시기에는 부족한 양이었지만 가뭄이 든 지 두 달 만이라 그나마 배추, 무 등 말라비틀어졌던 채소에는 더할 나위 없는 단비가 됐다.
처음 내리는 가을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비를 맞는 거리의 단풍들이 가을을 진하게 확인 시켜주는 날이었다.
바스락 기분 좋게 밟히는 단풍을 밟으며 사과 축제를 보러 오는 이들은 맛있는 서원1리 사과를 맛 볼 수 있다.
주민들이 애써 수확한 사과를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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