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콩 타작하랴 깨 찌랴 벼 베랴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과일 따랴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길가에 널어놓은 벼는 햇볕에 잘 말라야 할 텐데.
널어놓은 벼 때문에 다니기가 불편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건 너도나도 좋은 수확의 계절, 가을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도 농민들의 풍년을 기원할 것이다.
당우리 또는 닭모랭이로 불리는 하장2리는 지형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닭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이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형이다. 당우리 마을은 닭이 품고 있는 알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는 많은 인재가 배출됐으며 중학교도 있어 마을이 명당자리임을 입증해주고 있는 듯하다.
당우리에는 보덕초등학교와 보덕중학교가 있는데 보덕초등학교는 10여 년전 폐교돼 지금은 전인계발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개 지명을 따서 학교명칭을 정하는 곳이 많은데도 보은의 덕을 기린다는 뜻으로 보덕(報德)이라 짓고 1953년 개교한 보덕중학교는 가까이에 지역이 더 큰 관기(마로면 소재지)가 있음에도 금계포란형인 지형이라 터가 좋고 교육환경이 좋다하여 하장2리에서 유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장2리 역시 맛과 질이 좋은 쌀을 생산하는 탄부면 지역답게 주로 벼농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벼농사가 잘 되지 않아 감자를 심었더니 풍년이 되어 들 전체에 감자를 심었다는 감자들(감재들)로 불리 우는 들이 있을 만큼 땅이 척박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56년 삼가 저수지를 막아 삼가천으로 물을 흘려 보내면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게 되었다.
객토를 하고 농지정리를 하여 밭을 논으로 바꾸면서 빈농이었던 마을은 점차 살기가 나아졌고 마을도 점점 커져 하장리에서 관할하던 행정구역이 하장2리로 편성하게 된 것이다.
하장2리는 하장1리와 마찬가지로 땅에 황토가 많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문방구에서 찰흙을 사다가 만들기를 하지만 이기성 이장이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그런 흙이 마을에 엄청 많아 학생들이 들녘에서 퍼간 흙으로 만들기를 했다고 한다.
64가구 166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마을에는 4·50대의 젊은이들이 많으며 이들 대부분이 따로 직장을 갖고 있어 일하는 중간에 잠시 짬을 내 들일을 하고 가는 이도 볼 수 있었다. 마을 봉사자로는 이기성(52) 이장과 안조만(72) 노인회장, 이지현(35) 새마을 지도자, 김순자(48) 부녀회장이 있다.
# 마을일을 내일처럼 주민화합 잘 돼
하장2리는 각처에서 타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이다.
이북이 고향인 사람이 10가구나 되며 엄씨 성을 가진 주민이 3가구인 것을 빼면 같은 성(씨족)이 두 가구 이상 되는 집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해주고 합심하는 마음도 커 주위에서 민심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드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기성 이장은 무엇보다 주민들 단합이 잘 되고 마을에 범죄가 없다는 것이 제일 큰 자랑이라고 했다.
각처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해 똘똘 뭉치는 단결심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마을일을 내일처럼 여기는 민심만 자랑인 것이 아니다. 지리산의 청학동을 여기 속리산의 청학동 당우리로 옮겨 놓았다고 할 만큼 장수하는 노인도 많다.
산 좋고 물 좋은 배산임수의 터로 특히 물맛이 좋아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이기성 이장의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나는 물맛이 좋아 예전부터 보덕중학교 선생님들이 물통을 가져와 학교에서 물을 떠갔다고 한다.
마을 서쪽 도장골이란 곳에 청계샘이 있는데 그 주변에 천수답이 있어 농지정리로 인해 샘을 덮었다가 물맛이 워낙 좋아 작년 상하수도 사업시 다시 배관을 해 주민들이 상수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 유달리 높은 주민들의 교육열
하장2리 주민들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농사를 짓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자녀들을 교육시켰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주민들은 언제나 배가 두둑하다.
그들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마을에서 검사가 배출되고 의사로 진출한 사람이 여럿 되며 각급 학교에서 활약하는 교사 또한 줄을 잇는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사회 곳곳에서 하장2리의 이름을 드높이며 자랑스럽게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마을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보니 주민들은 자연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먹고살기 힘들던 시대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부모 세대의 아픈 가슴앓이가 자녀들의 교육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보덕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보덕중학교는 예전에 비해 학생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마음도 안타깝다.
그전처럼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로 마을이 시끌벅적하고 학교 담장을 넘는 학생들의 활기가 다시 마을에 퍼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20여 년 전 만해도 보덕중학교 학생들이 마을에 방을 얻어 자취를 많이 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교육열이 높고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마을 한쪽에 자리한 보덕중학교의 정경이 마을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는 듯 보였다.
# 고향을 잊지 않는 당우리인들
참 예쁘다.
고향을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으로 발길을 향하는 이들의 마음이 참 예쁘다.
전국 각처에서 직장을 다니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하장2리 마을 출신인들의 애향심은 당우리인이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일년에 한번 마을 청년회를 주축으로 주민과 출향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당우리인의 날.
서로 떨어져 생활하다 보면 이런 모임을 갖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단합이 잘 되는 주민과 출향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하장2리 출향인들로 구성된 ‘일심회’는 그 역사가 오래됐으며 초창기 회원이었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작고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모임을 가져 마을일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하장2리 출신 당우리인들.
이기성 이장은 고향을 사랑하는 어른들의 뜻을 기려 그 다음 세대 출향인들이 다소 침체된 일심회의 맥을 이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고향은 우리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는 항상 벗이 함께 있었고 정다운 이웃들이 삶의 한 부분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마을일에 써달라며 해마다 돈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과 애정으로 마을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고 함께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장2리 출향인들의 고향 사랑이 돋보이는 건 그들의 삶 속에 고향은 떠나온 곳이 아닌 지금도 늘 함께 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하장2리에는 오래 전 우체국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주변에는 탄부슈퍼와 송현슈퍼, 충청가든이 있으며 옛날에는 이곳이 시장터로 70년대까지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마을의 모습도 변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함께 마을을 이루며 이웃사촌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오늘도 내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있기에 주민들이 단합이 잘 되고 민심이 좋다며 자랑스레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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