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수문2구 (방화실)-향기로운 꽃의 열매라는 의미가 담긴 방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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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수문2구 (방화실)-향기로운 꽃의 열매라는 의미가 담긴 방화실
  • 김춘미
  • 승인 2006.09.2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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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2리는 마로면 소재지인 관기리에서 몇 분 거리에 있는 수문1리와 달리 2㎞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리와 가까울 것 같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39가구 65명이 살아가는 수문2리는 적은 가구수에 비해 마을은 꽤 넓어 보였다.

수문2리는 몇 백년 전 방화곡이었던 것이 방화실이 되었다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변에 밭이 많아 배 농사도 짓는 등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는 수문1리와는 다른 면을 갖고 있었다.

이곳은 피난지로 난리가 났을 때 마을 주민들이 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산아래 약물이 나와 약물내기라고 부르는 샘이 있는데 그 근처 고엽나무 아래로 피난을 많이 갔었다는 말을 한 주민으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산에는 몇 개의 바위가 있는데 경사가 심해 매우 미끄러운 뻔들지방 바우와 사람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생긴 엎드렁 바우, 이 바우는 상주 쪽에서 사람들이 와 기도를 올린다고도 한다. 그리고 장수 바우에는 말을 탄 장수가 칼을 뽑아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수문2리 마을 봉사자로는 김기철(59) 이장과 신현대(70) 노인회장, 최영열(31) 새마을지도자, 강병순(42) 부녀회장이 있다.

# 삼실로 이루어진 방화실
수문2리는 역두실, 물방화실, 한실 이렇게 삼실로 이루어져 있다.
역두실은 마을 초입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 옛날 역이 있을 자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물방화실은 중앙에 있는 마을이며, 한실은 마을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물방화실 앞 수령이 420여 년이나 된 정자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말없이 말해주고 있다. 어느 농촌 마을을 가나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정자나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어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자나무야말로 농촌의 표상이 아닐까 싶다.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들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앉아 더위를 식히는 등 정자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냥 나무가 아니라 오래도록 함께 한 허물없는 동무 같은 존재다.

수문2리의 자연마을 명은 방화실 이다.

이종하(80) 옹의 말에 따르면 방화실은 꽃다울 방(芳), 꽃 화(花), 집 실(室)의 뜻을 품고 있으나 원래는 집 실(室)이 아닌 열매 실(實)이 맞다고 한다. 오래 전 문서상의 기록이 잘못돼 바뀌었다는 것이다.

방화실의 원 뜻을 풀이하면 ‘향기로운 꽃의 열매’가 된다.

마을 양쪽 산이 방아다리처럼 뻗어 내려왔다 하여 방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방화실이었다.

향기로운 꽃의 열매는 방화실 마을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일까? 혹 숨겨진 전설이 있는 건 아닐까?

오늘도 바람은 방화실의 향기를 실어 나른다.

# 추석이면 연극공연을 하던 그때 그 시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흩어져 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이고, 오곡백과가 익어 먹을 것도 풍성하고, 사람인심도 덩달아 넉넉해지는 한가위.

지금의 수문2리 주민들이 추석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추석이면 마을에서 노래자랑과 연극 공연을 했다는 수문2리 주민들.

연극 공연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몰려오는가 하면 볼거리가 귀하던 당시 수문2리 주민들의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재미였다.

다른 주민들보다 서울에서 연극 볼 기회가 많았던 주민이 자신이 봤던 것을 대본으로 옮겨 그것을 가지고 공연을 한 것이다.

김기철 이장도 10대 소년 시절 연극 공연을 했었는데 공연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한 달 이상 연습을 했다고 한다. 새끼를 꼬면서 대본을 외우는 등 모두가 열성적이었다는 것이다. 또 자기 집 대문을 떼어오는가 하면 평상이며 집기 등도 가져와 무대를 직접 설치했다.

준비한 의상을 입고 분장을 그럴 듯 하게 하고 무대에 올라 그들이 펼친 연극은 흥겹고 신나는 추석을 만들어 주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주민들이 공연했던 연극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 방화실도 동제사를
같은 수문리라 그런지 수문2리도 1리와 마찬가지로 동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음력 1월 5일 집집이 돌아가면서 제사 준비를 하기 때문에 자기 순서가 되면 떡이며, 식혜, 음식 등을 준비하고 주민들이 모여 제를 올린다고 한다. 제는 한실 마을 뒤편에 있는 돌탑에서 행해지는데 크기는 수문1리 마을 입구에 있는 돌탑보다 더 컸다.

탑거리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는 갈평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도마티가 있다. 갈평, 적암, 화령 사람들이 보은에 서는 쇠전에 가기 위해 소를 몰고 그곳을 거쳐 수문2리를 지나다녔다고 한다.

마을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이종하 옹은 탑거리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주민들이 공을 들여야 지나다니는 사람이 피해가 없고 마을도 평화롭다 하여 젊은이들이 돌을 날라 쌓은 것이라고 했다.

반면 보은 지명지에는 이 돌탑이 조선 초 영남 지방 과객들이 이곳을 지나가다 쉬면서 돌을 던져 쌓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정자나무에도 술을 올려 마을의 안위를 기원했었으나 지금은 안 하고 있다.

도마티에는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중인데 마을 앞 도로에 10톤 차량의 통행이 쉴새없이 이어져 소음과 먼지뿐 아니라 사고의 우려가 있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마침 취재를 간 날은 살수차가 도로 위에 물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을에서 건의를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배려해주는 마음이 공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됐으면 좋겠다.

# 훈훈한 마을 인심
여름내 새파랬던 땡감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김기철 이장의 말로는 마을이 아늑해서 감나무가 특히 잘된다고 한다.
마을의 아늑함을 주민들이 닮았나보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 전 효부상을 받았다는 한 주민의 비가 세워져 있는가 하면 경로당 앞에는 경로당 건립 시 기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비에 새겨져 있다.

크고 작은 걸 떠나 성의껏 주민들이 합심해 마을일에 동참하는 그 모습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수문2리는 새 경로당을 지을 수 있었다.

수문2리에는 2층 짜리 구 마을회관이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수리를 해서 살 사람이 있으면 살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집에는 사람이 살아 훈기가 있어야 오래간다며 구 마을회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문2리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향기로운 꽃이 맺은 열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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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2010-01-20 20:35:42
-. 네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먼길을 돌고 돌아 불연듯 고향생각에 인터넷을 하다가 알게되어 부끄럽고 창피할 따릅입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나의 자녀들에게 떳떳하게 고향의 유래을 알려 줄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읍니다.아직도 부모님이 살고계시는 고향이지만 왜 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찾을려고 노력하지않아는지
제 자신이 고향 어른신들 뵙기가 죄송스러울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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