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급 농사꾼 회남 조곡 박범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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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급 농사꾼 회남 조곡 박범선씨
  • 송진선
  • 승인 2006.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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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복숭아, 슈퍼 배 생산해 고소득 올려
복숭아 1개가 800g 나가고 배 하나를 신생아 머리 만하게 생산하는 박범선씨는 박사 이상 가는 현장 습득 이론가이며 연구하는 농민이다.

보은군 벤처농업인협회 회원이고 박사학위 이상의 고급 기술을 갖고 있는 박범선(52, 회남 조곡1리)씨를 만난 건 그림같이 펼쳐진 대청호가 급체 한 것 같은 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주는 날이었다.

# 복숭아 한 나무로 50만원 소득
슈퍼 복숭아로 알려진 박범선씨의 복숭아 과수원도 대청호와 인접돼 있다. 복숭아를 싸놓은 봉지에는 주기적으로 복숭아 둘레를 재고 기록해 놓았다. 그것으로 몸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복숭아 둘레가 32.5㎝. 이를 수확해서 몸무게를 재보면 800g이 넘는다고 한다. 4.5㎏상자에 복숭아 8개 정도 들어가는데 상자당 도매금으로 3만원을 받는다. 개당 4000원정도 하는 셈이다.

일반 복숭아와의 경우 13개 또는 14개를 담아야 같은 무게가 나오고 가격은 1만6000원∼1만8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가격차만 1만원이 훨씬 넘는다. 그만큼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사과나 배도 아니고 복숭아를 상자당 3만원 받는다는 것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박범선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해도 재미가 붙고 농사를 짓는 것이 즐거운 것이 되고 과수원은 가고 싶은 직장이 되고 있다.

그런 소문이 퍼져 전국의 복숭아 생산농가들이 그의 농장에 자주 견학한다고 한다. 실제 눈으로 슈퍼복숭아를 확인하고는 다들 놀란다. 그럴 수밖에 없다.

1년이면 여러차례 외부 복숭아 생산농가들에게 많은 시간이 할애되지만 정작 우리지역 복숭아 생산 농가들은 그의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마침 지난 13일 이향래 군수가 그의 농장을 방문했다. 농민출신 군수답게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또 박범선씨가 설명하는 것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러면서 외지로만 선진지 견학을 갈 것이 아니라 이 농장을 와서 배워야 되겠군 했을 정도로 그의 영농기술을 인정했다.

그도 이렇게 슈퍼 복숭아를 생산해 재미를 본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복숭아 농장을 시작했는데 같은 면적을 재배하더라도 좀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하면서 농장을 오갔고 나름대로 크지만 당도는 떨어지지 않는 복숭아를 생산할 연구에 골몰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다.

그는 현재 복숭아 나무 한 그루에서 5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데 내년 목표는 60만원이라고 한다. 옥천과 충주에서 60만원 매출을 올리는 농가를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복숭아가 아니라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황금나무가 벌써부터 기대를 갖게 했다.

# 슈퍼복숭아 생산하는 방법
슈퍼 복숭아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수액조절과 꽃가루 교배법이었다.

전체를 살리려다가 전체가 다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가 복숭아에 적용한 것도 그 이론이다. 복숭아 나무 전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복숭아 한 나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중 2, 3개만 살리고 나머지 가지에서 달리는 복숭아는 일반 복숭아처럼 키우는 것.

그것이 방법이었다. 살리고자 하는 가지에는 수확이 끝나자 마자 매듭으로 묶어 수분이 올라가는 것을 막고 양분만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봄에 매듭을 끊으면 막혔던 가지에서 수분이 한꺼번에 많이 올라와 열매를 키우게 되는 이론이다. 그러면 가지도 안 뻗는다.

두 번째 노하우는 꽃을 따고 열매를 솎으면서 복숭아 열매 바로 위의 잎눈을 제거해버린다. 열매주위로 잎이 무성하면 약도 침투가 잘 안돼 병이 생기기 쉽고 또 복숭아에 얼룩이 생기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복숭아 열매를 솎을 때 암컷을 구분해 솎는 것이 방법이다. 뾰족한 것은 솎고 아기 엉덩이처럼 끝이 둥근 것은 매달고 인, 칼슘을 적절히 줘서 당도와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기술이었다.

자기만 알고 있는 고급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박범선씨는 보은군 농민들이 잘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3년전 황금 복숭아에 처음 이 이론을 적용해 연구한 결과 성공을 했고 올해 3년째 했는데 생각한대로 잘 맞아떨어졌다.

그의 이론은 살이 딱딱한 것은 안되고 살이 무른 것은 다 된다고 한다. 황도, 천종도, 숭일백도 등 품종별로 10주씩 30주를 실험한 결과 모두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 추석용 배 봉지가 터졌다
박범선씨가 슈퍼복숭아로 이름이 나긴 했지만 그의 주력 품종은 배나무이다. 그는 배도 아기 얼굴 만한 배를 생산하고 있다.

그의 농장에는 추석 때 출하할 배와 10월말 출하할 배로 구분해 봉지를 씌워 놓았다. 그리고 배 또한 한 나무에 달린 배 전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키울 것은 크게 키우면서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버린다고 해서 따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배의 크기로 크게 놔두는 것이다. 승부를 2, 3개 가지에서 달리는 배에 거는 것이다.

그가 배를 아기 얼굴 만한 크기로 키우는 노하우도 간단했다. 지주가 되는 밑둥에서 올라와 뻗은 굵은 가지(Y자로 휘어 하우스에 매단 것)에서 달리는 배는 일반 배의 크기로 크게 놔 누고 아주 가느다란 가지(도장지)에서 달리는 배를 키우는 것이 기술이었다.

박범선씨의 기술은 도장지를 내려서 접을 붙여 배를 키우면 수(수컷)배가 안나오고 아기 엉덩이처럼 예쁜 모양의 배가 나온다는 것. 이렇게 키운 후 굵은 가지는 잘라낸다.

이렇게 자신이 터득한 기술로 키운 배는 개당 950g이 넘어 7.5㎏ 상자에 8, 9개가 들어가는 한 상자에 6만9800원까지 받았다.

봉지도 햇빛의 룩스를 제서 씌운다. 일찍 출하할 배는 겉은 흰색이고 속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겉 봉지에 속 봉지는 빨간색으로 2중 봉지를 씌운다. 10월 하순 이후 수확할 배는 황토 색 봉지를 씌운다.

2중 봉지를 씌운 추석 대목용 배는 겉 봉지가 터져 버렸을 정도로 컸다. 이런 노하우가 쌓여 지금 최고급품 배를 생산하는 그는 배가 안 커서 걱정 해본 적이 없다.

# 실패 딛고 성공한 귀농인
조곡리에서 나고 자란 박범선씨가 처음부터 성공한 농업인은 아니었다. 1979년 이름만 대도 알만한 시계 제조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업해 서울생활을 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리고 80년 대전사무소로 파견 근무하던 중 키작은 신랑 박범선씨는 167㎝로 키가 훤칠한 부인 권영숙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고 81년 토질 좋은 땅이 모두 수몰되고 산 다랭이에 붙거나 농사짓기가 아주 불편한 땅만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처음 손 댄 것이 한우 사육이다. 마리당 수 백만원을 주고 한우 30마리를 구입해 사육을 했으나 소값 파동으로 본전은 커녕 수 백만원 주고 산 것이 똥값(?) 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피울음을 삼키며 청산했다.

그리고 시설 하우스를 지어 수박농사를 했다. 수박 한 개가 13㎏정도 나간 것도 있을 정도로 농사를 잘 지었다. 재미도 있었지만 타산이 맞지 않아 이것도 접었다.

당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졌다.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농사로 인생에 승부를 걸기 위해 귀농한 본인이고 또 아들만 3형제를 뒀고 살림살이 넉넉했던 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부인에게 호강은 아니더라도 고생은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금 성공한 농업인이 되게 한 과수작목이다. 80년대 말 경사가 급해 콩이나 심던 밭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밭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처음 2000평에 배나무를 식재했다. 그 후 배를 3500평으로 늘렸고 복숭아는 2000평정도, 사과나무는 1000평 가량 식재했다. 논은 400평도 안된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해 달고 맛있는 고품질 복숭아·배·사과로 이름이 나 청주, 대전 등 청과시장마다 그의 이름이 적힌 과일상자는 뜯어보지도 않고 경매를 부칠 정도이고, 또 리콜제를 실시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등 제품관리에 철저하다.

벌써 추석용 배는 선주문으로 거의 판매가 됐을 정도로 판매에 힘들들이지않는 박범선씨는 ‘억’ 소리를 듣는 부자농군이다.

아침 5시30분이면 들에 나가 밤 9시가 돼서야 집에 오는 힘든 농사를 하고 있다. 첫째는 호주 어학연수 중이고 둘째는 금오공대, 셋째는 충주대까지 아들 3명이 모두 대학생이고 막내 동생까지 대학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한눈을 팔 새가 없단다.

“밥만 먹으면 일한다”는 표현을 했다. 그래도 농사가 좋고 재미있다고 한다. 천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이해가 갔다. 작은 키에 몸집도 작지만 그가 품어내는 에너지는 등치가 큰 사람 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이제는 엄청났던 빚도 거의 갚았고 대학생 3명 학자금에 생활비까지 어려움 없을 정도로 꾸려나가고 있고 아들 3명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있고 특히 키가 187㎝로 의장대 사열을 맡았던 막내 아들 수병씨는 메가패스 텔레비전 CF와 르까프 카탈로그 촬영을 할 정도로 CF계에 이름난 자식도 있으니 사는 것이 더 즐거울 수밖에 없다.

군수 상은 물론 지난해 5월 이달의 새농민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마을 이장, 의용소방대장을 지내는 봉사자이기도 하다.

취재하는 내내 소년같이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가 남긴 여운은 바로 환한 미소였다. 그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세상사는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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