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큰절을 하라
상태바
세상을 향해 큰절을 하라
  • 보은신문
  • 승인 2006.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 구 필(보은읍 교사/수필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 수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가끔 내 꿈속에 나타나 큰절을 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친다. ‘이만하면 나도 삶의 재미를 찾고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그런 자만에 빠졌을 때 경고의 의미로 다가오시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가 어디든 다녀오시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큰절을 올려야 했다. 왜 절을 해야하는지 이유는 몰랐다. 무조건 아버지나 친척 어른에게는 큰절을 했다.  한번은 오전에 나가신 아버지가 해가 지기 전에 돌아 오셨다. 귀가 시간이 아닐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는데, ‘절하지 않고 무엇들 하는 거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모두 혼비백산 한 채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 후로 우리는 아버지가 집안에 들어서면 아버지를 따라 들어가 절부터 올렸다. 그냥 절하는 것이 집안을 편안케 하고 모두의 신상을 지키는데 이롭기에 아무 생각 없이 큰절을 했다. 절하는 것이 몸에 배이니 친구 집을 가도 절을 안 하면 불안하여 친구 아버지에게도 큰절로 인사를 드려야만 편했다. 친구들이 집에 찾아오면 “우리 아버지한테는 큰절로 해야 한다”며 큰절을 시키곤 했다.

사춘기 때는 형식에 지나지 않고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큰 절 강요에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절 교육에 집념을 보이는지 그때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인사하는 것은 자기 수련의 하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마음을 자연스레 갖게 하고 겸손할 수 있게 하는 데는 최고의 교육방법이었다. 그런 자세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알면서 아버지의 역설적인 자식 사랑에 감탄했다.

아버지가 의도하신 것이 무엇이건 간에 나는 큰절이 가지는 힘이 백 마디의 말보다 신뢰를 갖게 하는데 최고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큰절을 올려서 아내를 얻은 일을 생각하면 절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장남인 나는 아내를 사귈 때 집안 형편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약간의 빚이 있고, 여동생 넷과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모두 내가 가르치고 시집 장가를 보내야 한다.”며 “부모님도 내가 평생 모실 것이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녀를 믿는 마음이 컸기에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애지중지 키워온 9남매의 막내딸이 층층시하에 부자도 아닌 집으로 그것도 맏며느리로 가야 하는데 그녀 집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져버려 누구한테도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본래가 정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기질인 나는 마음의 병을 얻어 앓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서로 갈 길이 다른 것 같으니 다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진 나는 술로 소일하며 시름에 젖어 살았다. 두 달 후, 평소처럼 그녀의 집 앞을 울적한 마음으로 지나가는데 창문에 잠깐 비치는 어슴푸레한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그녀라는 확신을 했다.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녀의 어머니와 큰오빠와 올케가 거실에서 갑자기 도둑놈처럼 나타난 나를 향해 외쳤다.

“여기가 어딘 주 알고 들어오느냐, 밖으로 당장 나가라!”

서로 밀어내고 들어서려는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저기 방안에 있는 따님과 말하기 전에는 절대 못 나갑니다.”

건드리면 더 커지기만 하는 목소리에 질려 선지 옆방으로 들어가서 말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했다. 방안에는 그녀가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가.

“한 마디만 묻자. 나를 피하고 안 만나는 것이 저쪽 방에 계신 어른들의 뜻이냐, 아니면 너의 뜻이냐?”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지만 “알았다.”하고 나와 어른들 안방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 오빠와 올케에게 나는 생애 최고의 예를 갖추어 큰절을 하고 다시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말했다.

“그 동안 따님을 괴롭혀서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 끝난 사랑, 설움에 북받쳐 눈물이 쏟아질 만도 하건만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 방안에서 느껴지는 공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절을 하는 순간부터 온 방을 뒤덮고 있던 나에 대한 불신과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편한 마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며칠 후면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 사흘째 되는 날, 전화가 왔다. 결혼을 허락한다는 희소식을 듣고 나는 스스로에게 큰절을 했다.

나는 지금 그녀와 딸 셋을 낳고 20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아내에게 장난처럼 절을 하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절을 하며 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