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고승리]어른들과 더불어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 곳
상태바
[탄부면 고승리]어른들과 더불어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 곳
  • 김춘미
  • 승인 2006.06.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은읍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굴리를 지나 왼편으로 있는 고승교를 건너면 탄부면 맨 서쪽의 첫 번째 마을인 고승리가 자리하고 있다.

고승리는 고승이 또는 고싱기라고도 하였는데 마을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없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87호의 집들이 크게 웃말과 아랫말로 나뉘어져 있는 마을에는 실 거주민 145명 가량이 생활하고 있다.

웃말과 아랫말에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큰 정자나무가 있는데 아랫말에는 그런 정자나무가 두 그루나 있었다.

고승리는 주민들 대부분이 벼농사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 외에 시설채소로 방울토마토와 일반 토마토, 오이를 재배하는 농가가 각각 3호, 양돈 농가가 3호, 한우 사육 농가가 4호 정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마을 곳곳에서 축사와 시설채소 비닐하우스를 쉽게 볼 수 있다.

고승리 앞 들녘에는 언뜻 보아도 몇 백 년 이상의 수령으로 짐작되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옛날 큰 장마 때 나무가 떠내려 오다 지금의 자리에 멈춰 뿌리를 내렸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조상들이 나무를 심은 것인지 전해져 내려오는 설이 맞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목의 느티나무처럼 마을의 역사도 녹녹치 않게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승리 마을 봉사자로는 김홍제(65) 이장과 전수만(75) 노인회장, 김춘길(48) 새마을 지도자, 김순자(64) 부녀회장이 있다.

# 벼농사가 주 소득원
고승리 주민들이 벼농사를 짓는 논 만해도 30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탄부면 하면 보은에서도 벼 재배 면적이 넓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일대에서 생산되는 쌀은 맛이 좋고 품질이 좋은 걸로 유명하다. 예전부터 탄부 쌀은 전국에서 일등급 대우를 받을 정도로 이름 나있다.

탄부면에 속해있는 고승리도 이러한 탄부 쌀의 명성에 한몫을 더한다.

넉넉한 보청천 물과 기름진 들녘을 간직한 고승리.

특별히 벼농사가 잘 되는 이유를 묻자 토질도 좋고 벼를 재배하는 주민들의 기술력도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마다 짓는 농사라지만 매년 좋은 수확을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모든 일에 때를 잘 맞춰야 하며, 심고 키우고 가꾸는 솜씨도 좋아야 하며, 자연 조건 또한 뒤따라줘야 한다.

농사짓는 기술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보통의 관심과 경험으로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좋은 쌀을 많이 생산하며 삶의 기반을 다져온 고승리 주민들에게 그동안의 뿌듯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쌀 수입 개방으로 인한 쌀 값 하락이 그들에게 안겨준 건 허탈감뿐이다.

밭농사는 얼마 하지도 않고 대부분이 논농사에 주력해 왔는데 어찌 앞일이 막막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원망 섞인 불만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간과해 버리기에는 농민들이 당해야 할 아픔이 너무 크다.

“내년이면 이 마을 젊은이들이 다 떠날지도 모르죠”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일 수도 있고,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한 젊은 농군의 이 말은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듣기에도 가슴 철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옆자리에 있던 마을 어른도 가슴이 철렁했던지 “그래서 정말 떠난다구?”하는 말을 되물어봤다.

“백날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이 농민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체념과 포기로 농촌은 점점 쇠락해져만 가고 있는데 이 나라의 관리자들은 왜 그리도 눈뜬 봉사들이 많은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차마 이 기사의 결론을 “백날 써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로 끝맺을 수가 없어 불안한 희망을 걸어본다.

전국에서 맛 좋고 질 좋은 쌀로 인정받는 탄부 쌀. 그 쌀을 생산하는 탄부면 고승리 주민들. 그들은 열심히 일했으며 노력해왔다. 그들에게 돌아와야 할 것은 푸대접이 아닌 농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다.

사랑도 관심을 가져야 싹이 트듯 농민을 위한 올바른 정책도 관심을 가져야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농민들이 미우나 고우나 믿을 수밖에 없는 눈뜬 봉사들이여 이제 그만 눈을 크게 떠야할 때가 아닌가.

# 든든한 젊은이들이 지키는 마을
25명으로 구성된 고승리 청년회는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힘이 돼주고 있다.
보기만 해도 듬직한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고승리 주민들에게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울철이면 청년회 회원들이 5명씩 조를 이뤄 마을을 순찰하며 방범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마을 주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밤새 안심하고 편안히 잘 수 있도록 마을을 돌아보는 것이다.

어른들이 나이가 많다보니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진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에 마을 곳곳 집집마다 살피며 긴 겨울밤을 지세는 청년회원들.

마을회관 외벽에는 비상등까지 설치돼 있었다.

내 자식도 못하는 일을 동네 청년들이 발 벗고 나서서 해주는 덕분에 고승리 주민들은 더없이 든든하다.

이뿐 아니라 청년회원들은 마을 어른들을 잘 모시고 잘 따른다.

얼마 전에는 관광버스 3대를 대절해 어른들을 모시고 부산으로 관광도 다녀왔다고 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인 농촌 마을에서 청년회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승리는 젊은이들이 많다보니 마을 분위기가 활기차고, 주민들이 모인 자리가 더 즐겁고, 마을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돼 여러모로 마을에 좋은 일이 되고 있었다.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정자나무 아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주민들이 허물없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민간 화합이 잘 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취재를 하기 위해 고승리에 도착해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마을 유래 비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어느 마을보다 더 애쓰고 더욱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이 말이 그저 막연한 것이 아닌 가슴 깊은 곳까지 진하게 와 닿았다.

# 마을 규모에 비해 혜택 받는 것 없어
87호 145명이 생활하는 고승리는 마을 규모가 큰 것에 비해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빈약한 편이다.

마을 회관은 지은 지가 오래돼 건물에 금이 가 갈라지기도 했으며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고승리 주민들은 마을회관 신축을 바라고 있었다.

마을에 빈집이 8채 정도 있으나 지원 금을 받아 빈집을 철거하는 마을이 있는 것에 반해 고승리는 그런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 또한 주민들에게는 큰 근심거리로 작용한다.

번듯하게 잘 지어놓은 타동네 마을 회관도 부럽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깨끗하고 깔끔한 버스 정류장도 부럽다. 노인들에게는 언제든지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게이트 볼 경기장이 마련돼 있는 마을도 부럽다.

노인들의 경우 인근 마을인 사직리에 가서 게이트 볼 경기를 한다고 한다.

하고 싶어도 마을에 경기장이 없으니 맘대로 할 수도 없고 우리 마을에도 게이트 볼 경기장이 있으면 참 좋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고승리의 새파란 벼들도 농민과 함께 찌는 듯한 무더위를 견디고 있는 듯 보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