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리면 불목리) 구병산 자락 아래 작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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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속리면 불목리) 구병산 자락 아래 작은 마을
  • 보은신문
  • 승인 2006.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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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 25번 국도를 따라가다 탄부면 임한리 숲이 보일 즈음 왼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포장길이 불목리로 향하는 진입로이다. 그곳에서는 산으로 가려져 있어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린 탓인지 안 그래도 먼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23호 70여 명이 생활하는 불목리는 불목골 하나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불목골은 불모골이라고도 불리는데 정감록 비결파들이 지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자료에는 마로면 시루산에 떡시루를 걸어 놓고 방화실에서 불을 붙여 불이 잘 타는 가를 불목리에서 들여다보는 형국이라 하여 불목(火目)골이라 불러오다 행정구역 개편 시 불목(佛目)이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유래비에는 “실증할만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우리 마을 불목의 명칭은 主位保局(주위보국)이 중생에게 좋은 법을 開示(개시)하고 悟入(오입)하기에 알맞은 佛寺(불사)의 適地(적지)로 오랜 세월 寺刹(사찰)이 存續(존속) 하였으므로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由來)하였다 한다.”고 적혀 있다.

이런 점으로 비추어볼 때 불목리 마을 유래에 관한 명확한 답을 얻기는 어려운 듯하다.

불목리는 같은 면에 속해 있는 봉비리와 인접해 있으며 주민들은 봉비리 새비랭이로 넘어가는 까치실 고개와 서느고개를 이용해 자주 왕래를 하고 있다.

마을 뒤로 보이는 구병산 줄기 아래 지방안, 중골이란 골짜기가 있는데 중골에는 예전에 사기그릇을 만드는 곳이 있어서인지 아직도 땅을 파면 사기 조각들이 나온다고 한다.

소나 사람이 빠지는 곳이 많았던 수구렁은 논이 있는 골로 경지정리 이후 많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땅이 질척해 그래도 빠진다고 한다.

잡은 불목골이라 불리는 곳은 전에는 산이 있어 화전을 일궈 경작을 했으나 지금은 평야지로 만들어 주민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들녘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안에는 불목리 청년회에서 세운 마을 표석이 있다. 그 자리는 오래 전부터 봉비리를 거쳐 면사무소를 다니던 길목으로 고개 너머로 이어지는 좁은 포장길이 나 있다. 타지 사람들도 그쪽으로 많이 다니고, 표석마저 없으면 마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라 그곳에 마을 표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마을이 작은 것에 비해 50대 미만의 젊은이가 10여 명이나 있어 초등학생이 4명 유아원생이 1명 정도 있으며, 그전에는 담배를 많이 재배했으나 지금은 농가에서 특별히 주력하는 작물은 따로 없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마을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불목리의 마을 봉사자로는 전순호(49) 이장과 이상순(77) 노인회장, 이춘희(45) 새마을 지도자, 양근순(40) 부녀회장이 있다.

#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주민들 불편
불목리는 외속리면 11개리 중 교통이 가장 불편한 곳으로 버스가 운행되지 않고 있다.

보은에서 관기로 이어진 국도 변에는 버스 정류소도 없으며 탄부면 임한리 정류장 전에 있는 마을 진입로 앞에 버스가 서기는 하지만 그곳에 마을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더구나 국도변에서 내리면 외지인의 경우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동네가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유일하게 보이는 곳이 개인이 운영하는 서원 농장(양돈)이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농장까지 한참을 걸어가면 그곳에서 저만치 산아래 23호의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참을 걸어가다 심심하기도 하고 조금은 지루하기도 한 참에 문득 이 길이 가을이면 꽃이 만발한 코스모스 길이 되면 참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걸어다니기에도 먼 길일 것 같아 눈요기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 길을 걸어보니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주민들이 불편하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주민들의 가장 현실적인 바람은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는 것이다.

불목리와 가장 인접해 있는 마을은 걸어서 20여분 남짓 걸리는 봉비리이다. 주민들은 봉비까지는 버스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 버스가 불목리를 거쳐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병원을 자주 다니는데 교통이 너무 불편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야 차를 소유하고 있어 괜찮지만 차가 없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꼭 시행되어야 할 점인 것 같다.

현재 많은 주민들이 봉비리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 광국지경판문록 있었던 곳
불목리에는 탄부면 임한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던 기계 유씨의 재실이 있다.

그곳에 도지정 유형문화재 164호 광국지경판문록이 있었다고 한다.

송당 유홍(1524∼1594) 선생은 중국 명나라 역사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의 아들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이의 수정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다가 선공했다. 종계 변무를 축하하는 왕과 조신(朝臣)들이 송당의 공훈을 찬양하는 글이 많았는데 이 글을 목판에 새긴 것이 바로 광국지경판문록이다.

지금은 청주시 소유의 유형문화재로 이관된 상태다.

불목리와는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듯해도 문화재가 마을에 보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민들은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유래비에도 기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마을에 그런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자료로 유용하게 쓰인다면 그것 또한 주민들에게도 뿌듯한 일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을 남긴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취재 중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럴 수 없어 섭섭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아직도 광국지경판문록이 불목리에 보관돼 있다면 주민들에게 특별한 자부심을 심어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숙원사업은 마을회관 건립
작은 마을 불목리. 그곳에 도착해 불목리만의 특징 있는 무언가를 찾다보니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눈에 띄었다.

전순호 이장의 말로는 작년보다 수세가 좋아 나무가 더 무성해졌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농촌의 자연환경도 많이 오염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더없이 반가웠다.

전 이장은 보호수로 만들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주민들이 편하게 앉아서 쉬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쉼터가 되는 느티나무 그늘이 변변한 마을 회관 하나 없는 불목리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이다. 그래서 전순호 이장은 주민들을 위해 해마다 병해충 방지 약도 손수 할 정도로 느티나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100년을 넘기는 나이를 먹을 동안 불목리 주민들과 함께 해 온 느티나무 주변에 아직 확실하게 계획이 잡히진 않았지만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마을회관이 앞으로 건립될 것이다.

노인정으로 쓰는 건물이 있기는 해도 너무 오래돼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따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회관을 지을 필요성이 절실했으나 터를 마련하지 못해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다행히 작년에 회관 터로 쓸 땅을 100여 평 마련했다고 한다.

군에 회관과 정자 건립을 신청한 상태로 주민들은 하루 빨리 일이 추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의 바람이 꼭 현실화되길 바란다.

불목리 마을 바로 앞에는 청원∼보은∼상주 간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버스 한 대 다니지 않고, 고개 길을 넘어 다니고, 국도 변에서는 불목리라고 쓰인 이정표뿐 마을조차 보이지 않은 외진 곳에 자리한 마을의 모습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큰 변화 없이 묵묵히 세월을 견디어 온 듯한 불목리에 변하는 것이 있다면 좋은 것만, 주민들이 바라는 것만 바뀌어 그 안에서 주민들이 행복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보은의 명산인 구병산 자락이 마을 뒤로 힘차게 뻗어 있는 마을 불목리.

작은 마을 불목리에도 길은 이어져 있다.

시름과 고난보다는 삶의 기쁨을 실어 나르는 길이 되어 그 길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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