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노송이 인사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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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노송이 인사하는 곳
  • 김춘미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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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라는 뜻의 은사들 마을 모습. 보은에서 영동으로 향하는 19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읍 소재지를 벗어나 만나게 되는 첫 동네가 금굴1리이다.

이곳에서는 보은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농공단지와 환경사업소, 제재소 등을 볼 수 있다. 업체나 기관이 마을에 있다고 해도 특별한 도움이나 혜택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농공단지 같은 경우 마을 주민 중 그곳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3명뿐이라고 한다.

그래도 환경사업소는 마을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은사뜰 진입로 개설과 하수관 공사, 쇠푸니 정자 준공 등 환경개선사업비를 지원 받아 이 같은 사업을 하게 되어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마을 앞 도로변에는 큰 규모의 시설하우스가 설치돼 있는데 이 마을 주민인 안종록씨가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나기환씨가 생산하는 단고추도 금굴1리에서 내세우는 대표 농산물 중 하나이다.

금굴1리에는 쇠푸니와 은사들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는데 두 마을 사이에 금굴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전에는 그곳이 전부 전답이었다고 한다.

두 마을간 거리가 너무 멀어 서로 왕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쇠푸니에 있는 마을회관을 은사들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것이 한 가지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35호 100명 이상의 주민이 생활하는 금굴1리의 마을 봉사자로는 노인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현상(68) 이장과 나기환(41) 새마을 지도자, 강용옥(56) 부녀회장이 있다.

# 쇠푸니와 은사들
금굴1리는 쇠푸니와 은사들 두 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쇠푸니는 금광이 있었다는 곳이 있는 마을로 24호 정도가 모여 살며 마을 뒤쪽으로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옛날에 금을 많이 캤다하여 쇠푸니라고 하였는데 마을명이 “금을 캔다”는 뜻의 금굴(金掘)인 것으로 보아 마을명의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서 금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 워낙 오래 전 일이어서 인지 주민들을 통해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은사(隱士)들은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라고 한다. 은사들 앞에는 들 가운데 아름드리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안쪽에 마을이 있는 것을 보니 그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은사들 앞 도로변에서는 일반 소나무 숲과는 다른 모습의 독특한 소나무 숲을 볼 수 있다. 흔히 보아왔던 군집을 이루는 숲이 아닌 농수로를 따라 길게 심어져 있어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소나무가 마을 앞을 빙 둘러 있기 때문에 10여 호 되는 집들이 그 품안에 안겨 있는 듯하다.

은사들에 특이한 소나무 숲이 생기게 된 연유를 김현상 이장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오래 전 천지개벽이 일어나 산사태가 발생해 전답이 매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 이장의 천지개벽이란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된 후 옛날이다 보니 주민들이 나서서 일일이 손으로 복구 작업을 했는데 모아 놓은 흙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것을 어디다 치울 수가 없어 그 흙으로 제방을 만들고 흙이 안 밀려나게 하기 위해 그 위에 소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때 심은 소나무가 300년 이상이나 되는 세월을 꿋꿋하게 견딘 덕분에 우리는 사연 있는 아름다운 노송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소나무가 마을 앞 평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며 금굴1리 은사들만의 자랑스런 풍경이 되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은사들 소나무 숲은 마을에서 자체 관리가 어려워 현재 군 소유로 군에서 관리를 한다고 한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은사들의 노송. 보은의 자랑거리가 거기에도 있었다.

# 빨간 깃발의 염소 할아버지
금굴1리 노인회의 총무직을 맡고 있으며 은사들에 살고 있는 노양우(74)씨는 빨간 깃발의 염소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산외면 신정리가 고향인 노씨는 교직에서 퇴직한 후 염소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는데 그 수가 150여 마리나 된다고 한다.  염소 떼를 몰고 보청천 둑방으로 풀을 뜯기러 가는 노씨의 모습은 요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가 치켜드는 빨간 깃발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가 지휘하는 데로 움직이는 염소 떼의 움직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사료 값을 절약하기 위해 염소에게 풀을 먹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사육비 절감 효과도 컸지만 노씨는 평생 자신과 함께 동행할 빨간 깃발을 가지게 됐다.

빨간 깃발은 염소를 사랑하는 노씨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퇴직 후 지금까지 염소와 함께 하는 삶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를 세우고 염소를 통솔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만든 빨간 깃발. 그 덕분에 염소 떼를 몰고 보청천 둑방까지 무사히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는 소나 염소 등 가축을 몰고 들에 나가 풀을 뜯기는 풍경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노씨의 빨간 깃발이 색다르고 그에 맞춰 척척 움직이는 염소 떼의 움직임이 신기해 보이는 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그들만의 관계가 그 모습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환경 사업소’가 주는 혜택
금굴1리 도로변에 위치한 환경사업소는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은사들 진입로 개설과 하수관 공사, 쇠푸니 정자 준공 등 환경사업소를 건립한 지역에 지원하는 환경개선사업비로 이 같은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쇠푸니 마을 앞에 세워진 넓은 정자는 돌아오는 10일 날 준공식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회관 앞에 놓인 좁은 나무의자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몇몇이 모여 나물도 다듬고 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정자 아래서 조금은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달 17일에는 주민 30여 명이 대청댐을 관광해 유람선도 타고 청남대도 견학했다. 주민들은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좋은 구경도 했다며 그런 기회를 갖게 해준 환경사업소 측에 고마움을 표했다.

# 잘된 자손 많은 것이 내 자랑
은사들이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라고 해서 그런가, 쇠푸니에서 금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그런가, 금굴 1리에는 잘된 자손들이 많아 주민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작년에 별세한 김천호 충북도 교육감, 전 보은농협 안종철 조합장, 공무원 교육원 김길상씨 등 금굴1리 출신의 여러 인물들이 고향을 빛내었다.

이 외에도 육군 대령, 행정고시, 사법고시 출신이 나와 주민들이 입을 모아 자랑할 만 했다.

특히 주민들은 보은이 낳은 교육계의 큰 별이었던 김 교육감이 별세했을 당시 내 일처럼 가슴 아팠다고 한다. 평소 김 교육감의 고향마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이들이었다.

김현상 이장도 98년 공직생활을 퇴직한 후 99년 고향인 금굴리로 돌아와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김 이장은 그래도 농촌은 공기도 좋고, 살기에 좋다며 농사지어 자식들 먹을 것도 좀 대주고 하는 것이 전에 누려보지 못했던 시골 생활에서 얻는 보람이라고 했다.

외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또 동향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도 있을 것이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좋은 것과 싫은 것,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예쁜 것과 못 생긴 것 등등 단순히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으로 구분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고향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고향이 갖는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따른다. 그것은 그 안에 내 지난 삶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향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향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기고, 용기를 얻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나의 고향을 만들어주는 것도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굴1리 은사들 앞 아름드리 노송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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