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경주 김씨인 김귀정이란 분이 이곳에 정착하여 씨족부락으로 형성되었는데 현재 경주 김씨는 10여 가구 정도라고 한다.
세중리는 6개 자연마을인 신기방(새뜸), 북암방(북바위), 중천방(중뜸), 중앙방(행랑), 동방(장터), 내동방(안골)으로 형성되어 있다. 106호 261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마로면에서 관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마을로 군 전체로 보아도 상당히 큰 마을에 속한다.
마을일을 맡아보는 이성수 이장(60)과 구장회 노인회장(72), 김기봉 새마을지도자(57), 한경순 부녀회장(54)의 수고가 세중리 곳곳을 살피고 있다.
¤ 마로 남부 상권의 중심지였던 마루 장터
세중리는 마로면 관기리가 면소재지로 되기 이전부터 마루장터로 불릴 만큼 마로 남부 상권의 중심지었다.
면소재지가 아닌 일반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농협 분소나 초등학교, 교회, 보건진료소 등 웬만한 기관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농촌 마을이 겪고 있는 것처럼 인구가 줄고 특별한 소득 원이 없기에 점차 쇠락해져 가고 있다. 200호 이상이 살았던 마을에는 현재 100여 호가 남아 있으며 상점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장터는 과거의 번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이발소, 미장원, 파출소 등 부족한 게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로 농협 분소인 세중 지소, 약방, 떡 방앗간, 가겟집만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세중 지소(지소장 안상권)는 농협 설립 초창기 때 세워졌으며 그 후에 마로 농협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세중리 주민들에게 지소는 특별한 장소이다. 단순히 금융거래를 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하고, 동네 사랑방처럼 재미난 얘기와 여러 가지 소식들이 오고가는 사람들의 채취가 가득한 곳이다.
지소 한쪽에 마련해놓은 커피며 녹차 등은 지소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세중리 주민들이 언제든 들러 진한 커피맛과 향긋한 녹차향을 즐길 수 있어 지소 측의 고마운 배려가 느껴졌다.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지소 한켠에 진열된 각종 생활필수품들은 주민들이 필요할 때마다 바로 구입해 쓸 수 있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하다.
안상권 지소장은 “마을이 크다보니 이장님이 마을일을 보시느라 고생이 많다”며 이성수 이장의 노고를 걱정해줬다. 그만큼 한 가족 같은 맘으로 주민들을 걱정해주고, 어렵고 힘든 일은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자 하는 지소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좀더 편의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길 희망하고 있었다.
본소와는 달리 사료나, 비료, 농약 등 영농자재를 직접 배달해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했으며, 현금인출기나 컴퓨터 같은 기계가 구형이라 업무를 보는데 다소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어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을까 염려했다.
올해 초 마로, 탄부, 삼승 농협이 합병해 ‘남보은 농협’으로 새롭게 출범하고, 손익관계나 경제 논리로 인해 세중 지소가 폐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며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었다.
주민수의 감소로 지소의 조합원 역시 많이 줄어든 상태다. 그렇다보니 자체적인 지소 운영이 어려워 본소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안상권 지소장은 몇 십 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해온 세중 지소가 없어진다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일부 업무를 폐쇄하거나 존속을 위한 어떤 조건이 시행되더라도 지소가 오래도록 주민들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랬다.
주민들 역시 지소의 역할을 높이 사며 언제고 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남아주길 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 가치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보단 작은 것을 살려 큰 것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 해결점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눈앞의 이익보단 그동안 지소와 함께 해온 주민들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 조합 운영진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세중리에 도착해 처음으로 눈에 띈 건 태극기 펄럭이는 세중 지소 건물이었다.
‘와! 이런 것도 있네’하는 신기한 마음에 발길이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언제라도 세중리에 가면 태극기 펄럭이는 세중 지소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자그마한 약방이 있다. 진열된 약품들은 소화제, 몇 가지 연고 등 협소했지만 장터가 있었을 당시에는 이곳도 많은 약품들로 진열장이 꽉 찼을 것이다. 30여 년 동안 약방을 지켜온 김동구(70세)씨는 “지금까지 해왔던 거니까 그냥 지키고 있는 거지. 이젠 찾는 사람도 없는데 그만 할 거야”라고 말했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벌이도 안 되지만 그래도 마을에 약방이 있는 건 주민들에게 고마운 일이다.
¤ 백 여 가구가 넘는 큰 마을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들이 넓어 세중리에 있는 들을 지칭하는 4말리 대추말리, 마당말리, 소때말리, 추자말리가 있으며 이밖에 신나무들, 풍매기들, 행기들 등이 있는데 대부분 상전옥답(上田沃畓)을 이룬다. 밭보다는 논이 더 많으며 밭농사의 경우 여느 마을처럼 고추 농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마로 배나무단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배나무를 많이 심어 현재 배 재배 농가가 10여 가구 정도로 전에는 더 많았다고 한다. 그밖에 사과 재배 농가가 4가구 있다.
세중리는 감나무도 수확이 잘 돼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충북 영동 지역에서 감을 사러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현재 비농가가 12집 정도며 50대까지 젊은이 축에 드는 사람들이 주민수의 15%를 차지한다. 전에는 마을에서 각 기관단체장들이 많이 나올 정도로 세중리는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마을이었다. 그만큼 인물이 많았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갈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세중리에 자리한 68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중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놓여 있어 주민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 이 상태로 가다가는 결국 폐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도시나 농촌이나 장단점은 다 가지고 있다.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놀고 체험하는 살아있는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고, 농촌의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과 수준 높은(수준 높은 교육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람을 키우는데 더 값진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그 나름의 판단과 기준으로 선택을 하겠지만 농촌 학교는 지역적인 특수성을 살려 그것을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는 부모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농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이야 도시로 향하는 행렬이 우세지만 언젠가는 그 우세가 역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벌써 몇 십 년째 그래왔는데 택도 없는 일이라고. 그러나 9회 말 만루 홈런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보은군내 단일 마을 중 100가구 이상이 생활하는 마을은 그리 흔치 않다. 과거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큰 마을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에서 주민이 많다는 것은 마을의 큰 힘이다. 뭔가를 일굴 수 있는 자원인 셈이기도 하다. 사람을 지키는 건 환경이며 그 환경을 만드는 건 정책이다. 그들이 소중하게 대접받고 쓰임 받는 정책이 수반돼 세중리가 쇠락의 길이 아닌 지금의 위치에서 과거의 번성을 되찾길 소망해 본다.
¤ 주민을 위한 좋은 생활 환경
보은에서 마로면 소재지인 관기에 들러 면의 남쪽인 옥천, 청산 방면으로 가다보면 기대리를 지나 왼쪽으로 새로 포장된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작년에 개설된 비상도로로 소방도로 겸 농로로 활용되고 있다. 원 도로를 이용할 때보다 관기와의 통행거리가 2㎞ 단축됐다고 한다. 뭔 거리를 지나다녀야 했던 불편이 해소돼 주민들이 좋아했다.
세중리에는 세중보건진료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은 세중리 외에 인근 마을인 원정리, 갈전리, 한중리, 변둔리 등 6개 마을 주민들이 애용한다. 멀리 보은 읍내나 관기까지 가지 않고도 간단한 약 처방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마을 안길도 잘 포장되어 있고, 98년 수해 이후 하천 정비도 이루어져 큰 어려움은 없는 듯 보였다.
마을에는 노인회관과 50평 규모의 문화생활관(마을회관)이 따로 있어 주민들이 공동 생활을 하는데 편리한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3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마을 주민 85명으로 구성된 ‘상조회’는 마을의 애사를 맡아 처리하는 모임으로 전에 구성됐던 위친계와 향우계가 98년 통합된 것이라고 한다.
큰일을 당해도 든든한 상조회 회원들이 있어 걱정이 없을 듯하다.
세중리의 힘은 사람이다. 어린 아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중리의 땅을 지키는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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