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리면 구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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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속리면 구인리
  • 김춘미
  • 승인 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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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어진 것을 구하며 살던 지혜의 고장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다 농촌 마을을 지나칠 때면 ‘저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12월 4일 드디어 첫눈이 내렸다. 완전한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첫눈으로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내고 구인리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도 겨울 손님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구인리는 보은∼상주간 25번 국도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지나는 누군가도 마을 사람들의 삶에 궁금증을 던져봤을까.

외속리면에서 봉비리 다음으로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구인리는 전체 95호 219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농현상과 노령화, 외속 농공단지 근무 등으로 인해 농가수는 52호 정도밖에 안되며 나머지는 모두 비농가이다.

본래 예안 이씨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21호만이 예안 이씨이고 각성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예안 이씨 세거비'가 세워져 있어 지나는 이들에게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구인리는 이장 이우직씨(44), 노인회장 이의직씨(72), 새마을지도자 염명섭씨(42), 부녀회장 황은자씨(46)가 마을 살림을 맡아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항상 애쓰고 있다.◆ 어질게 살아가는 선비고을
"구인(求仁)이란 말은 선비들이 어진 것을 구하며 사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구인리는 옛날 마을 입구에 서낭나무와 다리가 있어 ‘귀신교(鬼神橋)’ 또는 ‘지렁이들’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구인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은 조선조 숙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에 이성만(李成晩), 은만(殷晩)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당시 보은 현감으로 있었던 이번(李蕃)이 영의정으로 있던 그의 아우 이여와 함께 이 마을에 들려 두 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극찬하고, 마을 이름이 귀신다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 영의정 이여가 ‘효제(孝悌)는 바로 어진 것이 그 근본이다’라고 말하며 마을 이름을 ‘구인교(求仁橋)’라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한다.

이곳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마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1589년의 일이다.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이며 무신이었던 불곡(佛谷) 이천 선생의 후손인 이성만, 이은만 형제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구인리는 예안 이씨(禮安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다. 현재 구인리에 살고 있는 예안 이씨의 중시조인 이천 선생은 지난 93년 당시 문화체육부가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이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나라 과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선생은 조선조 세종 때의 과학자로서 세계최초의 청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창제를 비롯해 금속활자의 백미인 갑인자(甲寅字) 창제, 장영실 등과 함께 천체 관측기구 제작, 병선과 화초의 개량 등 우리 전통 과학 발전에 헌신한 분이다.

현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유서각(諭書閣) 추원각(追遠閣) 재실(齋室) 등이 외속리면 오창리에 건립되어 있다. 예안 이씨 종중 재실인 영창재(永昌齋)는 1693년 건립된 것으로 1917년 소실되었던 것을 1922년에 중건한 것이다.

◆ 구인팔경의 아름다운 자태
구인리는 자연마을인 구인(귀신다리, 귀인다리), 방아다리, 대목이, 쇄실로 이루어져 있다.

방아다리(또는 방아실)는 도로 옆의 구인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뒷산 능선이 마치 방아다리처럼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도랑에 디딜방아를 걸쳐놓고 다녔기 때문에 방아다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대목이는 평각으로 넘어가는 도로 부근의 마을로 옛날부터 이곳에 큰 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쇄실은 귀인다리 남쪽에 있으며 예안 이씨 재실이 있는 곳으로 재실이 변해 쇄실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소나무가 울창해 송곡(宋谷)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에는 예부터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구인팔경’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8경의 1경은 오봉귀운(五峯歸雲:오봉산에 모여드는 구름)이요, 2경은 구병명월(九屛明月:구병산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이라. 3경은 행단청풍(杏壇淸風:행단에서 부는 맑은 바람)으로 4경인 유수모연(柳藪暮煙:버드나무 숲속에 드러운 저녁연기)과 잘 어우르는 구나. 5경인 옥녀단풍(玉嶺丹楓:옥녀봉의 단풍)아 6경인 선암백설(仙岩白雪:선암바위에 흰 눈)아 7경인 조평춘수(鳥坪春樹:조평들에 서 있는 봄철의 나무)와 8경인 부천야우(鳧泉夜雨:오리샘에 나리는 밤비)를 기다리는구나.

현재 거주 주민들은 구인팔경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 절경을 시처럼 음미하며 풍류를 즐기던 옛 조상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자연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다. 먼 옛날 조상들이 ‘구인팔경'이라 이름져 대대손손 전해지게 한 것에는 분명 깊은 뜻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된다. 언뜻 보면 평범한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대를 이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구인리에 옛날부터 있어 왔던 큰 은행나무며 몇몇 자연의 산물들은 농지정리, 길 확장 등 현대사회의 생활 틈에서 자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자연과 사람 중에 한쪽이 배척 당해서는 결코 안정된 부를 얻을 수 없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자연도 함께 번성해야 한다.

◆ 해마다 함께 하는 정월대보름 윷놀이 행사
구인리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윷놀이 행사를 한다. 이때는 마을 주민뿐 아니라 농공 단지에 입주해 있는 회사 직원들도 함께 참여한다. 윷놀이 행사는 전통 문화 계승의 의미를 넘어 주민 단합과 서로간 화해와 이해의 장으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 문화란 그 나름의 존재 이유와 긍정적 가치 창출을 바탕으로 형성돼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부터 서서히 상실의 길을 걸어왔고 현존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앞에 그래도 구인리 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 윷놀이 행사'로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흥겨운 놀이와 음식은 한바탕 웃음으로 주민들에게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주민들은 농공단지 입주 회사에서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요즘 경기가 안 좋은 관계로 그나마 안정적인 소수 업체만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2년의 합의 과정을 끝내고 시작한 농공단지 조성은 구인리 주민에게 크고 작은 해택을 주고 있다. 업체 직원들이 마을에 집이나 방을 얻어 세를 사는가 하면 주민들 중에 농공단지에 일터를 갖고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에서 농사 외에 다른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농공단지로 인해 생계 유지에 도움을 받고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활발한 경기 활성화로 내 고장에 기반을 둔 업체들이 날로 번성하여 지역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 고추작목반 운영 등 밝은 전망
농촌의 주 소득작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추다.
구인리는 타 부락과 비교해 고추 재배를 가장 많이 하며, ‘고추 작목반'까지 구성해 생산성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현재 작목반 회원으로 24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1인당 평균 1,000평정도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어 총 2만평 이상의 고추밭을 경작하고 있다. 주민들 또한 호당 경지면적 3,000평 중 고추가 차지하는 비중이 3, 400평은 된다고 한다.

지난 5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가을걷이가 끝난 뒤 좋은 가격에 고추 180근을 판매했다. 그 외에 다른 농산물도 판매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주민들에게아쉬움을 남겼다. 이우직 이장은 <&28799>협회 직원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28813>고 말했다.  이번을 계기로 양방이 만족하는 폭넓은 거래가 더 많이 성사되고, 도·농간 교류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어 농민들도 “부자 되세요!”
 구인리에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다.
 버스정류장이 도로와 마을진입로 간 시야를 가려 그동안 사고가 많이 발생한 것이다. 날로 피해는 늘어만 가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보은군에 버스정류장 이전을 건의했으나 승강장이 깨끗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반사경을 설치했으나 주민들은 입을 모아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냐”며 조속한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는 구 마을회관 철거가 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철거비용이 만만치 않아 계속 미뤄온 실정이다. 마을회관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바램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바란다.
 외속리면 구인리 바로 윗마을인 오창리에는 폐교가 하나 있다. 현재 그곳에 퇴비공장이 들어서 구인리 주민들이 악취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주민들이 왜 버스정류장 이전을 요구하고 공원을 조성하려고 하겠는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다.
 미래를 보장받기는커녕 전망할 거리조차 미미한 암울한 농촌의 현실 속에서 이젠 늙고 기운 없어 두 손놓고 구경만 해도 좋을 사람들이 마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금 주민들이 바라는 요구와 마을을 꾸준히 가꿔나가는 노력은 후손들의 삶에 향기 나는 거름이 될 수도 있으며 바로 그것이 우리 농촌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만을 불사하는 업체의 경제논리가 우선시 되거나 마을 주민과 따로 노는 민원행정이 계속된다면 한쪽은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될 때 농촌 마을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쓰는 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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