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이 낳은 교육계 큰 별 김천호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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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이 낳은 교육계 큰 별 김천호 그는 누구인가
  • 곽주희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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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양성 위해 한길을 걸은 페스탈로찌
1등 인생, 효심 지극한 교육자로 불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교육계에 투신한 뒤 ‘청빈’,‘열정’으로 충북교육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천호 교육감이 지난 20일 새벽 숨졌다.

보은군 보은읍 금굴리에서 김기하·심순단씨의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성장한 김 교육감은 어린 시절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보은 삼산초등학교와 청주 사범학교 병설중학교, 청주 사범학교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탁구, 배구, 테니스, 축구 등 구기 종목에서도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만능 스포츠 맨’이었을 뿐 아니라 친화력이 뛰어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 3때부터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학업을 이어온 김 교육감은 62년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교사로 교단에 섰으며, 74년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를 시작으로 1980년 청주대 법학과, 1986년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0년 충남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평생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90년 공모를 통해 주 캐나다 한국교육원 원장을 지내기도 한 김 교육감은 1993년 도교육청 초등장학과장으로 재직할 때 절약 실천 운동인 ‘아가모(아끼고 가르고 모아쓰기)’ 운동을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등 수많은 실천 개혁 아이디어를 내놓기고 했다.

청원교육장과 가경초 교장 등을 거쳐 2002년 보궐선거를 통해 도교육감에 오른 그는 소탈하고 뛰어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2003년 재선돼 2007년 12월까지 임기인 충북교육계 수장역을 맡아왔다.

김 교육감은 2003년을 ‘청렴 충북교육의 원년’으로 삼아 학생들과 후배 교육자들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충북교육 청렴 봉사상’을 제정했다.

2003년과 2004년 2년 연속 부패방지위원회의 청렴도 측정 결과 전국 최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고, 감사원의 공공기관 자체감사활동 평가에서도 최우수기관 표창, 행정자치부의 행정서비스헌장 실천 우수기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4년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 결과 괄목할 만한 학력 신장을 거두고, 전국과학전람회 대통령상, 전국학생과학발명품대회 금상 등 18명 모두 입상 등 과학교육과 교육정보화, 체육부문에서도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또 지난 2월18일 새벽 모친상을 당한 김 교육감은 문상 시 조의금과 조화를 일체 받지 않고 당시 관심사였던 정기 인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지시하는 등 교육계 수장다운 도덕성과 차별성을 보였다.

김 교육감은 실제 상을 치른 뒤 금융기관에서 적지 않은 돈을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육감은 지난 1997년 충북도교육청(초등교육과) 재직 시 신장을 떼는 대수술을 받는 등 인생 역경도 겪었지만 굳은 의지로 충북 교육의 수장으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수술 당시 김 교육감에게 신장 기증한 사람은 김교육감의 제자로 알려지고 있으나 최근까지도 비밀에 부쳐져 교육계의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 교육감은 취임 이후 캐나다 한국교육원 원장 재직 시 세계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충북 진천에 ‘잉글리쉬 캠프’조성에 적극 나섰으며, ‘찾아가는 교육감실’을 운영해 교육현장을 직접 방문해 교육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김 교육감은 전국 소년체전과도 깊은 인연을 보이고 있다.

지난 70년대 충북이 전국소년체전 7연패의 위업을 이룰 당시 장학사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왔으며, 학교 체육체육의 애정과 관심은 2002년 5월 교육감으로 당선된 후 일선 학교마다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김 교육감은 교육감 재직 1년만인 지난 2003년 전국체전에서 충북이 종합 3위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전국소년체전 7연패의 영광을 재현했다.

저술에도 남다른 의욕을 보여 ‘열린 학습 교수활동과정안 작성 전략’, 수필집 ‘아름다운 만남’, 선택과 집중의 교실수업 전문경영을 돕는 ‘최적학습조건모형’ 등을 저술했고 ‘권위주의 교육의 이론과 실제’와 ‘뇌의 자연적 학습체계에 따른 교수 방법’ 등의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재직기간 중 녹조근정훈장(2000년)과 황조근정훈장(2002년)을 받았다.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김 교육감은 지난 1964년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공인 7단증을 갖고 있는 스포츠맨이자 국가대표를 길러낸 지도자였다.

그는 한벌초 재직 당시 최순호를 축구선수로 발굴해 국가대표로 키운 것을 비롯해 88올림픽 탁구 개인단식 은메달리스트인 김기택,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마상현 등 축구와 탁구, 태권도 등의 체육 부문에서 10여명의 국가대표선수를 길러냈다.

1997년 신장염 때문에 신장 2개를 모두 떼 내고 제자가 기증한 신장을 이식받아 생활해 온 김 교육감은 최근 옥천 모중 교감 자살과 관련, 심적으로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소년체전 개막식 행사를 격려하기 위해 지난달 말 이 학교를 방문한 데 대해 학교측의 ‘과잉 영접’을 비난하는 글이 전교조 홈페이지에 오른 것이 발단이 돼 교육계 내부의 갈등 양상이 나타나다 급기야 이 학교 교감이 자살하고 그 가족들이 경찰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던 것.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일선 학교 방문이 엉뚱한 파장을 몰고 오고 후배 교육자의 자살로까지 이어진데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김 교육감은 최근 가까운 지인들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서는 평소 세심하게 남을 배려해오던 김 교육감이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지 못한 것이 화를 불러 온 것으로 보고 안타까워했다.



고 김천호 교육감의 애절한 ‘사모곡’

지난 20일 갑작스레 고인이 된 김천호 교육감의 관사에는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지난 2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온 편지에는 어머니를 그리는 ‘막내아들’의 애절한 마음과 최근의 심경이 묻어났다.

고 김 교육감은 지난 4개월간 300자 분량의 원고지에 매일 편지를 쓴 뒤 컴퓨터에 옮겨 넣어 저장했으며 안방 탁자에는 최근 3∼4일간의 편지가 원고지에 적힌 그대로 놓여 있었다.
고 김 교육감은 음성초등학교의 한 학생으로부터 받은 편지나 손님이 찾아와 나눈 대화에서 느낀 점 등 일상적인 일들로 글을 시작한 뒤 어머니의 가르침을 구하며 편지를 맺고 있었다.

편지에는 ‘늦은 밤에 올리는 편지지만 꼭 읽어봐 주십시요’라는 내용에는 밤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편지를 써내려 간 고 김 교육감의 효심이 엿보였다.

6월11일에 쓴 편지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교육행정에 있어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를 살려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어 충북 교육계 수장으로서의 생각을 비치기도 했다.

또 고 김 교육감은 15일자 편지에서 ‘저 요즘 힘들거든요. 어머님이 붙들어 주세요’라는 글로 충북 옥천 모 중학교 교감 자살 파문과 관련한 최근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바쁜 일과에 묻혀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사라질까봐 매일 일기를 쓰듯 어머니께 편지를 쓰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 “업무 때문에 밤늦게 귀가해도 돌아가신 어머니께 편지를 쓰셨던 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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