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마을이야기 - 보은읍 어암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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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째 마을이야기 - 보은읍 어암2리
  • 임향묵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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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백송고사, 주민들 아픈 마음달래
보은에서 속리산 방향으로 조금만 나가다보면 보이는 삼년산성 아래 터를 잡은 마을이 바로 어암리이다.

그 중 어암 동쪽에 새로 생긴 새터와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는 큰 탁골, 작은 탁골의 자연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어암 2리이다.

새터에는 5가구 15명이 살고 있으며, 어암2리의 주 마을이라 할 수 있는 큰 탁골에는 28가구 30여명, 작은 탁골에는 20가구 25여명이 살고 있다.

숫자에서도 나타나듯 어암2리는 가구수에 비해 사람이 별로 없다.
40대의 주민은 한 명도 없이 65세 이상이 마을 전체의 80%를 차지할 만큼 고령화가 되었으며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 감골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마을 전체에 감나무가 많았던 어암2리지만 현재는 죽은 나무도 많고 또한 수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용작물도 없이 논 5만여평과 밭 3만여평의 소득작물이 이 마을주민들의 생계수단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이문을 남긴다기보다는 일년 농사를 지어 일년의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의 수단인 것이다.

이 또한 마을 주민들의 노령화로 인해 감나무를 관리할 수 없으며, 큰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어암2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맨 위쪽에 천연기념물 제 104호로 지정된 보은백송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약 200여년이 된 보은백송은 소나무과에 딸린 상록교목으로 높이는 약 11m이고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는 약 1.8m이다.

이 백송은 금산김씨의 선조인 탁계 김상진이 정조 17년인 1792년에 중국에 갔다가 종자를 얻어와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암 마을의 자랑이었던 이 백송은 현재 나무가 죽어버려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의 수장인 허상만(70)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보호차원으로 군에서 90년대 이후로 두 차례에 걸쳐 나무 주변정리와 함께 복토를 한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너무 높게 나무 위에 흙을 덮어놓아 그로 인해 나무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나무가 죽기 3년전부터 갑자기 송진이 계속 흐르더니 그 뒤로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복토는 하지말고 주변 정리만 했어도 됐을 것인데, 아까운 좋은 나무만 죽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을 떠나서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던 나무가 죽어버리자 주민들은 최근 잇따라 일어나는 악재에 대해 연관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애달픈 사연의 삼년산성
앞서 말했듯이 어암2리는 삼년산성을 병풍처럼 두고 형성된 마을이다.
삼년산성이 이곳 주민들에게 2차적인 소득이나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고 있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삼년산성은 둘레가 약 1.7㎞이고 성벽의 높이는 13m, 폭은 8∼10m에 이른다.

이 성에는 서문·북문·동문터가 있으며 특히 성벽의 군데군데에 곡성이 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한편 성내에는 아미지란 커다란 연못이 있었으며 이 주변의 암벽에는 옥필, 유사암, 아미지 등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김생의 필체로 전해오고 있다.

한편 삼년산성도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축성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산 속에는 장사로 이름난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장사 남매는 누가 더 힘이 센지 그 우열을 가리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대결했지만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남매의 어머니는 어느날 남매를 불러다가“너희 남매는 천하장사이다. 매일 경쟁을 해도 끝이 없다. 그러니 단번에 끝낼 수 있는 것을 해 보아라”라고 승부를 내기 위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내용인즉 오빠는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몰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며, 누이는 오빠가 서울을 다녀오기 전에 돌을 날라 산능선을 따라 성을 쌓는 것이었다.

시합은 아침 해뜰 때 시작해서 서산에 낙양이 지는 사이 끝나야 하며, 시합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목을 잘라 버리는 잔인한 시합이었다.

잔인한 시합으로 인해 오누이가 힘자랑을 하지 않길 바란 어머니의 바램과는 달리 남매는 흔쾌히 시합을 받아들였다.

결국 시합은 시작하고, 아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딸은 성을 다 쌓아버렸다.

문짝만 달면 아들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아들 을 살릴 생각에 딸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며 쉴 것을 종용하였다.

결국 어머니의 간청으로 딸은 어머니가 정성으로 끓인 팥죽을 먹었고 그 사이 서울에 올라갔던 오빠가 도착하여 누이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축성에 얽힌 이와 같은 전설은 삼년산성 외에도 회북면 아미산성에도 있다고 한다.

모두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을 희생시킨 어머니의 이야기인 것을 보니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인 생활을 반영한 듯 하다.


마을회관 신축을 바라며
어암2리에는 20년이 넘은 마을 회관이 작은탁골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 버스 한 대 지나가지 않아 보은 시내에 한번 나올라치면 너무나도 고생이 심한 탓에,더욱이 마을 주민 대다수가 60세 이상의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쉽게 나올 수도 없는 형편이다.

또한 여느 시골마을 보다도 더한 홀로 사시는 분의 비율이 높아 이곳 주민들은 일거리가 없을 시 항상 경로당에 모여 지낸다.

그런 경로당이 이곳에 생긴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낡은 건물은 둘째이고 재래식 화장실은 경로당과 떨어져 있어 노인분들에겐 상당한 애로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지난해 마을회관 보수신청을 제출하였는데 올 5월 초에 보수비 900만원의 예산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낡은 건물에 900만원으로 보수를 한다해도 나아질 것은 없을 것 같고, 또한 보수를 하게되면 5년안에는 신축 신청이 안된다는 사실에 얼마전 포기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내가 이장으로 있을 때 마을 회관만은 새로 꼭 신축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는 허상만 이장과 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바램은 깨끗하고 안락한 마을 회관의 신축이라고 한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경로당에 모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게 일상이다.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을 경로당에서 보내기 때문에 더욱 더 편하고 깨끗한 경로당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마을 회관 신축을 군 예산으로 책정하는 것보단 도 예산으로 책정하게되면 천만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왕 새로운 회관을 설립할 것이라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어암2리에도 좋은 마을회관이 설립될 수 있도록 군에서 적극 협조해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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