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회남면 남대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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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회남면 남대문리
  • 임향묵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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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가는 길목, 관광지로 개발 희망
전설이 살아 숨쉬는 마을

남대문리는 본래 회인군 서면 지역으로 호점산성의 남문밖에 있어 남대문이라 불렸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연마을 거구리, 만마루을 병합하여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거구리는 남대문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아홉명의 부자가 살고 있었다하여 클 거(巨), 아홉 구(九)자를 사용한다.
만마루는 남대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과거 만지동으로 불렀었는데 고려 때 최영장군이 이곳에서 만지창을 만들어 만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 때 평택현감을 지낸 경주김씨 김호라는 사람이 포수에게 쫓기는 꿩을 살려주었는데 꿩이 보답으로 그가 죽었을 때 묘소를 이곳에 잡아주었고 그의 자손의 일부가 묘소 아래로 옮겨와 형성된 마을이란 설이 있다.
현재 만마루에는 6가구가 살고 있다.
회남면 최대 크기의 마을인 남대문리는 근래 들어 귀농한 몇몇 사람들로 가구수가 늘어 현재 43가구 120여명이 살고 있다.
남대문리는 다른 마을과 달리 자연마을과 자연마을이 거리상 분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남대문, 거구리, 만마루가 멀찍이 떨어져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마을 행정상 불편함이 있기도 하다.
거리상의 문제로 현재 이곳은 2개의 마을 회관이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가구수를 가지고 있는 거구리내에 있는 경로당은 많이 낡아서 외벽에 금이 가는 등 문제점을 보이고 있어 주민들의 걱정을 낳고 있다.
주민들은 하루 빨리 마을의 공동 생활공간인 회관의 재건축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었던 이곳은 지난 1983년에는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마을 전체에 감나무가 많지만 대청호가 건립되면서 감나무의 생산력이 많이 떨어져 그 모습만을 유지하고 있다.
남대문리는 고추, 옥수수, 콩과 같은 밭농사가 주를 이루고 과일은 복숭아와 배를 생산하고 있으나 4가구는 재래식 방법을 통한 고추장, 된장 등의 전통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3가구는 누에를 이용한 동충하초 등을 생산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남대문에서 만마루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남대문전통식품 생산 장소가 있다.
남대문에서 직접 재배한 콩과 고추를 이용해 전통의 장 맛을 재현해 인기가 높다.
남대문리는 매년 정월보름이면 마을입구와 쉼터에 있는 돌탑에서 마을의 발전과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탑제를 올리고 있다.
한편 남대문리는 지난해 10월에 한전보은지점과 1사1촌 자매결연을 맺어 두 차례에 걸쳐 전기·계량기를 보수 받았으며 또한 한전 직원들이 이 마을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산물도 구입하는 등 1사1촌의 내실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적과 전설이 많은 마을

삼국시대 백제가 쌓았다는 호점산성은 남대문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회남면 거교리와 회북면 용곡리 경계에 있는 토·석축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2722m이며, 해발 280m 이상의 산봉우리 5개와 그 사이의 계곡을 둘러 쌓여 있다.
전설에 최영장군의 태를 묻었다 하고 금칼이 숨겨져 있으며 우리 나라 사람이 3일간 먹을 양곡이 있다고 전해져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보물을 찾는다고 산에 올라가 산성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호점산성 외에 김호의 묘와 고현재, 양달해 효자각이 자리하고 있다.
만마루 뒷산에 자리하고 있는 묘는 평택현감 증승정원도승지 경주인 김호의 묘소로 포수에게 쫓기는 꿩을 숨겨준 덕으로 꿩이 잡아준 명당이라는 설로 유명한 곳이다. 묘소 아래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 후퇴의 목조와가 팔작지붕의 재실인 고현재가 있다.
효자각은 거구리 입구에 있으며 현판은 ‘효자증조봉대두동몽교관양달해지여 효부증영인안동김씨지여’로 되어있다. 1905년에 명정되어 남편과 아내의 효행을 기리는 정문으로 처음 신곡리에 세웠으나 지난 80년 대청댐 담수로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였다.
남대문리에는 문화유적 외에도 마을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자연마을 거구리 뒷산에는 길이 15m의 굴이 있는데 옛날 이 굴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하여 용굴이라고 불리고 있다.
천연동굴로 회인현감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현감이 회인으로 돌아가기 전에 비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용굴은 입구가 좁고 동굴 안 위에는 작은 공간이 있어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가 사다리를 치우면 아래에서 아무리 총을 쏘아도 맞지 않아 6·25때 피난민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용굴 안에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군에서 보호장소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한편 이곳에는 인천이라 불리는 샘이 하나 있다.
과거 서울에서 당파싸움으로 쫓겨난 벼슬아치가 기생첩을 데리고 내려와 신분을 감추고 살았으나 신분을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은 나이 많은 영감이 젊은 아내와 산다고 빈정거렸다.
대감은 삶에 회의를 느끼는 한편 자신의 첩에 대한 미안한 생각으로 스스로의 목을 매달았다.
그때 나라에 정변이 일어나 다시 벼슬아치가 속해 있던 당파가 정권을 잡아 동지들이 찾아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대감을 발견하였다. 대감의 첩이 사지를 주무르고 용굴에서 나오는 샘물을 입에 넣어주었는데 얼마 후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튿날 서울로 떠나면서 대감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어진물이라 하여 ‘인천(仁泉)’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인천은 물빛이 마치 우유색깔 같으며 물맛이 차고 맵다고 한다.
이 샘에 관을 연결하여 마을에서 식수로도 사용하고 있다.
남대문리 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골동품 집 앞 논에 가로 세로 5m이상 되는 ‘이괄바위’가 있다.
이괄은 1587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백규, 본관은 고성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이듬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워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사로 영변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국경수비에 힘쓴 인물이다.
그러나 1624년에 그의 아들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무고로 인해 정부에서 수사관을 파견하자 반정시 공신등급 책정 때 정사 공신 2등으로 취급한 일과 반역에 의심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되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처음 막강한 군사와 탁월한 작전으로 피 한번 흘리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이튿날 도원수 장만이 지휘하는 정부군에게 패해 도망가다 부하에게 목이 잘려 죽게 되었다.
현재 이괄바위라 불리는 이것은 원래 산에 있던 바위였는데 이괄이 이곳을 떠나면서 바위를 가리켜 “만약 이 바위가 절벽에서 떨어지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고 하였는데 그가 죽는 날 뇌성벽력과 함께 바위가 떨어져 지금의 자리에 이르고 있어 이 고장 사람들이 이괄바위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등산로와 쉼터의 활용 방안

거구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쉼터라는 곳이 있다.
계곡 물이 흐르는 곳에 쉴 수 있는 터를 마련한 곳으로 고즈넉하고 깨끗해서 여름철이면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더욱이 청주, 대전과도 거리상 가깝고 호점산성 등산로가 있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휴양지로 변모시키고자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쉼터를 새로 가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외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데도 변변한 주차공간과 공용 화장실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쉼터 공간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더 많은 등산객과 계곡을 찾는 외지인들을 통해 마을의 이미지도 높여주고 또한 마을의 소득증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쉼터를 찾는다고 한다.
이들 외지인들에게 마을의 특산품이나 농산품들에 대한 현장판매를 하게 된다면 얼마간의 소득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공간을 마련해 놓고 한쪽에 철에 나는 과일이나 농작물의 가판 판매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쉼터와 등산로 근처 주변 정리가 필수가 돼야한다.
쉼터 이용료 공지가 붙어있긴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 또한 이런 이유로 현재 쉼터의 활용 방안에 대해 적극적 검토를 하고 있으며 군 차원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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