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농장 운영하는 외속 오창2리 김동헌씨
# 한우물만 파다외속리면 오창2리에는 나무에 인생을 걸고 한평생을 살아온 나무지기 김동헌(74, 속리농원)옹이 있다.
유실수 중심으로 자신의 분신처럼 키운 묘목 포장이 5000평 가량 되고 묘목 수도 2만본에 달한다.
김옹이 운영하고 있는 묘 포장을 찾았을 때는 신규로 감나무 작목을 구성하고 감을 소득작목으로 가꾸기 위해 마로면 주민들이 감나무 묘목을 구입하고 있었다.
인근 옥천에 묘목시장이 열리지만 그곳에서 구할 수 없는 감나무 묘목도 값도 더 싸게 그렇다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좋은 묘목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무 심기 좋은 식목일에 즈음해 묘목 포장을 찾는 이들의 방문이 잦다.
묘 포장을 찾는 이들은 나무 심는 요령 및 나무에 적합한 토질 및 관리요령까지 덤으로 지식을 얻어간다.
고염나무를 대묘로 감나무를 접붙인 것에서 감씨로 묘목을 키운 것 등을 찾아볼 수 있는 등 묘포장에서는 그의 실험정신에 의해 탄생한 각종 묘목을 감상할 수 있다.
충북대 농대 출신인 김옹은 61년 도내에서 2명을 뽑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 영동읍사무소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임용 2년만에 영동군청으로 발탁, 산림업무를 보게 되었고 40세도 안돼 과장으로 승진하는 등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김옹은 74년 단양군 산림과장을 끝으로 퇴직을 했다.
공직생활 동안 영동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퇴직 후 영동에서 역시 산림과 관련된 사업을 했다.
표고목 6000본 정도를 보유한 표고농장도 운영하고 문화재를 보수하는 사업체도 운영했다.
특히 문화재 보수하는 사업을 하면서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에 있는 선지당을 보수했고 김씨 종중 제실도 건립했으며 현재 기거하고 있는 집 대문도 짰다.
이렇게 공직에서 퇴직을 하고 김옹은 하는 사업마다 잘돼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돈을 모으는데 큰 재주가 없어 지출도 많았던 김옹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훌훌 털고 85년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는 큰딸의 소개로 미국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도 조경수와 잔디를 식재하고 스프링쿨러를 설치하는 등 조경업무에 종사하며 김동헌이라는 이름 석자를 캘리포니아에 알렸고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던 김옹은 기술이 인정을 받아 주문이 밀릴 정도였다.
그러던 차 오창리에 아버지가 기거하던 집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 91년 영주권까지 반납하고 다시 한국으로 나왔다.
# 나무 묘포장 본격 운영
‘배운 도둑질이 이것’이라고 김옹은 미국에서 나와 유실수 묘포장을 운영했다.
잣나무, 밤나무, 호도나무, 감나무, 은행나무, 고염나무, 왕살구나무, 대추나무, 매실나무, 먹자두나무, 산초, 계피까지 그는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묘목을 기르기 시작했다.
거름주고 매일 물주고 일반 농작물에 정성을 들이는 것 처럼 묘목에도 사랑을 줘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김옹은 나무 돌보는 것에서 하루를 시작해 나무를 돌보다 방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정성을 들여 키운 묘목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울안의 모판도 모자라 인근으로 포장을 점차 늘려나갔다.
그러나 묘목이 돈이 되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자신이 접을 붙여 묘목을 생산하면 접을 붙인 나무의 열매가 어떤가 확인을 한 다음에야 판매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은 5∼6년, 어떤 것은 10년이 지나야 돈으로 회수될 정도로 결실을 보고 판매하는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옆에서 김옹의 말을 듣고 있던 부인 엄경옥(73)씨는 “다른 사람은 접을 붙여 활착이 되면 그 다음해라도 묘목시장에 내놓는데 이 양반은 열매가 어떤가 눈으로 확인하고 판매를 하니까 돈으로 회전되는 기간이 많이 걸린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은행나무 지주를 한다고 철근은 140만원 어치를 샀다고 한다.
은행나무도 특성상 꼿꼿하게 자라지 않고 지주를 설치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뻗기 때문에 사람이 은행나무 아래를 서서 걸을 정도는 꼿꼿하게 키가 크도록 지주를 세우고 위로 크도록 철사로 유인을 했다.
김옹이 기르고 있는 묘목의 주종인 은행나무는 다른 것에 비해 기르기 쉽고 열매 수확도 다른 과실은 모두 달려있는 것을 따야하지만 은행은 일부러 따는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을 주우면 되니까 다른 것에 비해 노동력이 1/10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력이 약한 노인들이 대부분인 요즘 농가에서 재배하면 다른 유실수에 비해 큰 노동력을 들이지 않고 수확을 할 수 있다며 농가에서 재배를 고려해볼 것을 권장했다.
더욱이 은행나무 가지 중 유난히 굵은 열매를 맺는 것을 발견해 이 가지를 접을 붙여 생산한 것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 묘목은 포도송이처럼 알이 작으면서 많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알이 굵은 은행이 생산되는 것들이다.
# 영동 소나무 베고 참나무 키워
요즘 산림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잊지 않았다.
산을 완전히 벌채를 하고 잣나무, 전나무 등 산에 우량종자를 심는다고 하는데 기존 산림의 간벌 보육만 해도 경제수종이 잘 살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를 심는 경비, 간벌 경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자신의 묘포장 앞에서 마주 보이는 간벌하지 않은 산은 참나무가 잘자라고 있었고 군에서 벌채를 하고 대신 심은 잣나무는 언제 열매가 맺고 제대로 잣을 딸 수 있겠느냐며 산림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벌채하지 않고 그냥 놔뒀으면 참나무라도 잘 자랐을 텐데 다 베어내고 새로 나무를 심느라 오히려 재목만 잃었다고 지적한 것.
영동군은 산림정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을 때부터 산에 소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참나무를 가꿨다고 한다.
참나무는 기름값이 비싼 요즘 연료 대체목으로 좋고 또 숯을 굽고, 표고목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참나무 처럼 경제적인 나무도 드물다는 것.
그래서 전국의 표고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영동군이 차지하고 있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영동군에서 생산되는 표고가 인지도 및 품질에서 소비자들의 인식이 좋고 그 때문에 영동군은 부자지역으로 변모했다.
같은 산악지대이면서 이같이 산림을 제대로 활용해 수익을 얻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현재 보은군과 영동군의 큰 차이점이라고 비교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조림정책을 지양하고 대신 기존 산림에 대한 간벌만 제대로 실행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나무를 얻을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입장을 밝혔다.
한평생 나무와 함께 세월을 보낸 김옹에게 조금이라도 묘목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매년 7, 80여명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김옹을 찾아온다.
항상 농민들의 살길이 무엇인가, 어떤 것을 심어야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김옹에게서 이대 대한 공부를 많이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김옹이 권장하는 묘목 중의 하나가 산초나무이다.
옛날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땔감으로 사용했을 때는 나무가 우거질 사이도 없어 산초나무가 비교적 잘 자랐으나 요즘과 같이 기름 등으로 난방을 하면서 숲이 우거져 양지식물인 산초나무가 햇빛을 받지 못하는 생육조건이 됐다는 것.
산초의 효과는 열매나 나무껍질, 잎을 말려 가루로 내어 밀가루와 초(酢)로 반죽하여 튼튼한 종이나 헝겁에 펴 바르면 유선염과 종기, 타박상에 좋다.
치질에는 산초의 어느 부분이든지 달인 물로 씻으면 효과가 있고 뿌리는 불에 태워 소말(燒末)로 하여 쓰기도 한다.
달인 물을 마시면 두통과 기침을 멈추게 하며 입에 물고 있으면 충치의 아픔도 멈춘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탕을 끓이거나 욕탕에 넣어 사지슬통(四肢膝痛)을 제거하는 데 쓰이고 풍한습비(風寒濕痺)에도 좋다고 한다.
또 산초는 온성인 자극성 살충 살균제이며 건위, 구풍, 이뇨작용이 있다고 하며 열매, 나무 껍질, 잎 등을 달여 찌꺼기를 제거하고 더욱 졸여 엿같이 만든 다음 이것을 작은 스푼으로 한 스푼씩 1일 3회 복용하면 부종에도 효과 있다고 한다.
사찰에서는 10월에 약간 덜 여문 열매를 채취하여 간장을 여러 번 끓여서 부어 오래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는 산초간장을 밑반찬으로 해마다 담는다.
특히 산초기름은 2홉들이 한 병에 10만원을 호가해 소득작목으로 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옹 혼자 관리하던 넓은 묘포장을 휴일에는 영동에 사는 큰아들이 와서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관리를 거들어 준다.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부인 엄경옥씨는 이제 그만 손을 놓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분신처럼 눈만 뜨면 묘포장에 나와 하루 종일 사는 남편의 즐거움을 막는 것 같아 속으로만 걱정할 뿐이다.
홍매화 묘목도 확보해 조만간 보은군에 기증할 계획도 갖고 있는 김동헌·엄경옥씨 부부는 슬하에 2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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