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 벽지 심문섭·와따나베 미유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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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 벽지 심문섭·와따나베 미유끼 부부
  • 송진선
  • 승인 2005.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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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부인 결혼 10년
한국인 남자와 일본인 여자가 만나 가정을 꾸린 지 10년.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다른 것 투성이 였지만 단 하나 종교가 같아 연을 맺은 심문섭씨와 와따나베 미유끼씨 부부의 알콩달콩 결혼 10년을 훔쳐본다. 

설 명절 국민의 대이동이 실시된다. 도시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고향의 부모를 찾아서,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 문중 어른을 찾아서 국민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로 대이동을 한다.
10시간이 걸려도 고향을 찾는 것이 한국에서는 하나의 문화가 됐을 정도다.

일본인이 설보내기
설이라고 해서 유난을 떨지도 않고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설이라고 해서 특별히 모이는 것도 아닌 일본의 신정 풍습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명절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조상 위패를 모셔놓고 푸짐하고 다양한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차례를 지내는 유교식 명절 모습에 떡국은 끓이지만 간단하게 음식을 먹으며 조용히 보내던 일본인 와다나베 미유끼씨는 손님도 많이 오고 한국 주부들이 해야할 일의 양에 가위가 눌렸을 정도.

95년 결혼해 96년 4월 일본에서 한국의 남편을 찾아서 온 와따나베 미유끼씨는 그래도 한국인 주부로 살기 10년에 이력이 생겨 설 명절이 다가와도 설인가 보다 할 정도로 무뎌졌다.

바로 옆집에 사는 큰 형님을 도와 부침개도 만들고, 떡국 떡도 만들어 썰고, 만두도 빚으며 차례 지낼 준비를 하는 게 처음과는 달리 부담이 없다.

한국주부로 살기 10년
이렇게 한국인 주부가 다된 와다나베 미유끼씨가 한국인 남성과 혼인을 한 것은 95년. 대학때 통일교 관련 서클에서 활동하며 통일교에 심취해 종교적으로 탄부면 벽지리에서 농사를 짓는 심문섭씨와 맺어졌다.

41살 동갑인 이들 부부가 결혼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1남1녀 중 장녀로 도시에서 살고 대학교도 다니던 와따나베 미유끼씨가 일본도 아니고 한국으로 그것도 농촌으로 시집가는 것에 대해 부모 및 남동생의 반대가 너무 심하자 자신의 믿음대로 밀고나갔다.

96년 홀홀단신 말도 안통하고 풍습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한국인 남편을 찾아온 것은 종교의 힘이 컸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여름철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겨울에도 새벽 6시면 일어나 생전처음 남편과 같이 비닐하우스 1400평, 논농사 3000평 지금은 접었지만 소도 20여마리를 사육하는 등 농사일도 하고 밥짓고 빨래하고 가정생활까지 정말 힘든 결혼 생활이었다.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 일본 친구에게 카레, 매실장아찌를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고통을 겪었다.

언어소통이 잘 안돼 남편이 가져오라는 것을 가져가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져가기도 하고 불고기를 해먹자고 했는데 엉뚱하게 돼지 두루치기를 할 때도 있었고 남편의 무뚝뚝한 성격을 적응하지 못해 서러운 마음도 컸었다.

김치찌개 제일 좋아하는 한국주부
그러나 비록 무뚝뚝하지만 남편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면서 남편과 함께 한다는 행복감으로 고통은 극복이 됐고 일본에서도 매운 음식을 잘먹었던 탓에 김치찌개 등 매운 음식도 곧잘 먹는 등 한국인이 되어갔다.

지금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 일명 두루치기라는 고기볶음, 불고기 등 웬만한 한국 음식은 거의 만들 줄 알고 자신있게 만드는 것이고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찌개이다.

이렇게 한국인 주부로 10년간 살면서 슬하에 8살인 큰아들 효준과 둘째 효률(5), 막내 딸 은실(3)이와 씨름하느라 간간이 전화로만 문안인사를 하고 그동안 친정 나들이 한번 하지 못하다 지난 1월 10년만의 외출을 했다.

남편 심문섭씨, 3자녀와 함께 일본 동경 근처에 있는 사이다마현에 있는 친정에서 4박5일을 보낸 그녀는 마침 어머니 생신이 끼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역, 들기름 조선간장을 가지고 가 어머니 입맛에 맞는 담백한 미역국을 끓여 어머니 생일상을 차렸다.

한국처럼 매년 생일때마다 푸짐한 음식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회갑, 고희연만 큰 상을 차리는 일본에서는 또 생일이라고 해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지만 한류덕분에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다는 풍습까지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10년만에 얼굴을 만난 딸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감격해 했다.

일본 친정 식구들과 외식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와따나베 미유끼씨는 10년간 왕래가 없다가 이번 방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며 앞으로는 더 자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낀 그녀의 자녀들도 엄마인 그녀에게 일본말을 가르쳐달라고 조를 정도다.

방학기간이라 요즘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공부 봐주고, 미운 3살, 미운 5살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 통제하기가 힘들어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을 정도다.

아직 아이들 학원은 못보내고 있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풍물 배우고 싶어하는 아줌마
어디를 둘러봐도 누구 하나 내편이 돼 줄 사람 하나 없었던 낯선 한국 땅에 남편을 비롯해 시어머니, 자식들, 큰 집 식구들 모두 내 편이 된 지금 한국인 주부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매주 일요일날 예배를 보며 일본인 주부들과도 수다도 떨며 향수를 달래는 그녀는 노래방에 가서 한국 트로트 부르며 스트레스도 푸는 그녀는 사랑의 미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남행열차도 잘 부르고 요즘은 ‘어머나’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서울, 제주도도 한 번 가보지 못한 그녀는 남편과 결혼하고 속리산에서 3일을 보낸 것이 전부였던 신혼여행을 이제는 구혼여행으로 제주도나 서울을 가보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탄부 하장 복지회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강좌도 무료 봉사했었던 와따나베 미유끼씨는 시간이 되면 풍물을 더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이제는 한국인 보다 더 한국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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