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없는 오지, 세상과 단절
상태바
전기없는 오지, 세상과 단절
  • 송진선
  • 승인 2005.01.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한면 차정리 박희설·김복영씨 부부
21세기, 달나라를 가는 시대이다. 도서벽지에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기는 생활하는데 공기처럼 꼭 필요한 것이 된지 오래다.
한전에서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인데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집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수년간 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애달던 소박한 우리의 이웃 이야기를 풀어본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니까 당연히 산골이다. 주변에 인가하나 없는 외딴집이다.

안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 한 집에 텔레비젼이 2개인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 가정과는 달리 라디오에 의존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오늘 날씨가 춥다는 소식도 라디오로 전해듣는다. 당연히 건전지로 돌아가는 라디오이다.

전기가 없으니까 계곡 물을 모아놓았다가 식수로 사용한다. 물동이 2개에 물을 퍼 담아 길어오는데 그 생활이 수년간 계속 되다보니 인은 박혔겠지만 팔이 아프다.

빨래는 도랑 물 고인 곳에서 하는데 요즘같이 날씨가 추워 계곡이 얼면 빨래를 하는 것이 제일 걱정이다.

보은군 소유인 수한면 차정리 169-2번지에서 임대료 8만4250원을 지불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박희설(64)·김복영(57)씨 모습이다.

수해 때 넘어진 나무, 폭설 때 찢어진 나뭇가지는 이들의 중요한 난방을 위한 땔감이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물을 한 솥 담아 군불을 지피면 하늘로 솟은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장작을 많이 때 까맣게 탄 아랫목도 데운다.

겨울철 학교를 갔다오면 할머니가 차가워진 손을 녹여준다고 이불을 깔아놓은 아랫목에 손을 넣어 녹여주었던 일, 밥 주발을 아랫목에 넣어놓았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딸에게 어머니가 점심상을 차려주던 그런 옛날 풍경이 살아있다.

이들이 일구는 농경지는 어떤가.
농기계가 못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농사를 기계로 짓는 것과는 달리 경운기로 겨우 삶아놓은 논에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어야 하고, 손으로 벼를 베야 하고, 손으로 타작을 해야 한다.

경지정리를 잘못해 기계가 빠지기 때문이 아니다. 산 다락 논인데도 질어서 기계가 빠지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

농사만이라도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좋으련만 여건이 이들의 신세를 볶는다.

생활의 편리를 쫓아 가전기구도 크고 새로 나온 것을 들여놓은 요즘 세상에 이들이 이렇게 사는데는 사연이 있다.

수원에서 건축일 즉 목수 일을 하다 1998년 고향인 수한면 동정리 인근인 차정리로 들어온 박희설씨는 수원에서 살 때 가난했지만 그래도 지금과 같이 촛불을 켜고 계곡 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고 전깃불을 밝히고 수돗물 먹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아무 때나 빨래를 할 수 있는 집에서 살았다.

나이가 있어 목수일 얻기가 쉽지 않자 박희설씨는 전 재산을 톡톡털어 논 1400평, 밭 2000평 정도를 마련하고 10여년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완전히 폐허였던 지금의 집을 사서 들어왔다.

지붕이 무너져 하늘이 보였고 문 앞에는 굵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살 수 있을까 할 정도였지만 많은 돈을 들여 집을 고치고 가꿔 지금과 같이 사람냄새 나는 집을 만들어 놓았다.

더욱이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지만 보은군이 축사를 짓고 관리사도 지은 곳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끌어들이는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전에 전기가설을 신청했다.

하지만 전기가설에 필요한 건축물 대장이 없어 가설이 어렵다는 통보에 박희설씨는 수한면과 군청 등을 쫓아다니며 건축물대장 등재 관련을 알아보기도 했다.

또 수장에게 부탁하면 될 수 있을까 해서 전 김종철 군수와 박종기 군수에게도 직접 전기가설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줄 것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진척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군에서 축사와 관리사를 건축하고도 건축물 대장에 등재되지 않아 박희설씨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21세기 속 19세기를 살고 있다.

박희설씨는 전기만 들어오게 해주면 내가 보답이라도 하겠다고 기자에게 부탁에 또 부탁을 했다.

<세상사는 사람이야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