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로 어버이날 도지사 상도 받아
한지붕 아래서 사는 4대 가정인 김형규씨 가족을 만나 취재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을 때 절대로 신문에 나올 정도가 되는 그런 가족이 못된다고 극구 사양했고 때가 됐으니 소찬이지만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했다.대부분이 가족 소개를 한다고 하면 사양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설득을 하는데에도 상당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가족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너무 건강해 꼭 소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꼭 보도를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마도 본의 아니게 시간을 빼앗은 것이 미안해 마지못해 “그러마” 하고 취재에 응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아 기쁜 하루였다.
가족끼리 함께 모여사는게 당연한 풍습이었던 가족 문화가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형제는 물론 부모 자식간에도 한 지붕아래 어우러져 사는 건 드문 일이 돼버렸다. 사회학자들은 가족 해체를 핵가족화라고 개념지었다.
자식은 결혼하면 분가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식의 보살핌이 필요한 노부모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식어간다. 독거노인도 늘어가고 있고 각박해진 세태가 가족간의 삶과 생활조차 메마르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이런 세태에 8일 32번째 어버이날 보은읍 봉평리 김형근(53)·김옥화(52)씨네는 요즘 보기드문 전통적인 가정으로 꼽힌다.
올해 83세인 모친 김동순씨를 모시고 아들 3형제 중 큰 아들내외인 김길환(30)·최임순(32)씨와 5살, 2살인 손자 성준·성현까지 4대가 함께 살고 있다. 여형제만 넷이나 있는 외아들이라 부모 봉양은 의당 그의 몫이었지만 시집온 후 시부모를 29년동안 모신 부인 김옥화(52)씨의 정성 덕분에 가능했다.
가난하지만 사람됨됨이에 장인 승복
산외면 장갑리에서 보은읍으로 이사나온 김옥화씨의 부모님은 딸이 그것도 맏딸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라는 세상 대부분의 부모처럼 사위감이라고 소개한 김형근씨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이 맘에 걸려 처음에는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몇 번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비전 있고 사람됨됨이에 반해 결혼을 허락, 23세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외아들인 가난한 형근씨 하나 믿고 시집살이를 자처했다.
김옥화씨는 남편 위로 누님 한 분 있고 아래로 줄줄이 있는 시누이들을 친동생처럼 키우다시피 해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더 고약하다는 시누이 시집살이도 겪지 않았고 고부간의 갈등없는 가정을 꾸려갔다.
지붕이 새어 비만 오면 신혼 방에 양동이를 갖다놓고 빗물을 받을 정도로 반듯한 집 한 채 없는 생활이었지만 리더십 강한 믿음직한 가장 김형근씨를 중심으로 가족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됐고 그것이 곧 화목이었다.
딸을 줘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던 김형근씨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은 80년 새로 단층의 슬래브집을 지을 때 그대로 나타났다.
90년대 초 농촌지도소(지금의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부엌 개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것을 그는 10년을 앞선 그때 입식으로 집을 지었고 나중에 2층을 올릴 것을 염두에 두고 집안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고 집을 늘릴 것을 대비해 건물외벽으로 철근을 빼놓았다.
함께 사는 큰 아들 내외를 위해 2층을 올렸고 집도 늘렸으니 20년 전의 설계도가 그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자수성가해 9500평 경작하는 대농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옛말처럼 목표를 정해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던 부인 김옥화씨는 땅 한평 없이 건설현장에서 벽돌쌓는 일로 돈을 벌었던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여러 가족이 살기가 어렵자 해외건설현장의 노무자로 나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과 상의, 2년간 요르단과 사우디에서 노무자로 지냈다.
남편이 사막에서 흘린 땀으로 모은 피 같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살림을 일으켰다. 80년 보은 대홍수 때 사과 과수원을 망쳐 모두 캐내는 불행도 겪었지만 성실히 일한 이들에게 하늘은 비가 새지 않는 튼튼한 슬래브집과 논 6000평, 사과 과수원3500평 땅 9500평을 줬다.
수입대비 지출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사과 한 상자 판 것까지 가계부에 기록할 정도로 계획적인 살림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큰 슬하의 아들 3형제도 잘 자랐다.
큰아들은 공고를 나와 잡은 일자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미용기술을 배웠고 청주 오수희 미용실에서 수련 중 자신의 스승이었던 최임순씨를 만나 결혼, 현재 보은읍 삼산리에서 ‘휠 헤어아트’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다.
학사장교 출신으로 중대장 진급 교육중인 작은아들 정환(28)씨와 간호사 출신 둘째 며느리, 손자 하나를 두고 있으며 막내아들 성환(25)씨는 삼성 에스원 청주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큰아들한테 나가서 살라고 해도 안나가네요”
‘정직한 사람이 되자’,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는 김형근씨의 삶이 녹아있는 가훈이다. 자식과 손자들에게 항상 어른을 극진히 공경하고 어른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가훈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자신은 노모를 모시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큰아들 길환씨는 결혼과 함께 분가를 권했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극구 함께 살기를 청해 덕분에 아기 울음소리, 웃음소리가 담 밖까지 들리는 사람 사는 것 같은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있다.
맞벌이인 아들 내외 대신 손자 둘을 보살피고 논밭 9500평을 경작해야 하는 짐이 무거워 “나가서 너희들 맘껏 살아라”고 강요(?)도 하지만 아들 내외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며느리 최임순씨는 “살림도 다하고 애들까지 봐주시는 어머니께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늘 죄스럽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채소를 좋아해 돈나물, 돌미나리, 쑥도 뜯으며 건강도 다지고 반찬거리도 대주는 어머니 김동순씨. “나는 고기는 안먹고 채소를 좋아해 또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아들, 딸 손자, 증손자까지 모두 모이면 70명을 훌쩍 넘기는 대식구인데도 다들 떨어져서 사니까 큰 일이 있으면 한 번 모일까 1년 열두달이 있어도 얼마나 보냐구. 서로들 바쁘니까 얼굴 못보고 지나가는 해도 많을 거야.”라며 “떨어져 살면 손주가 보고 싶다고 맘대로 볼 수 있겠어 어디?”라며 증손주 보는 즐거움이 함께 살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인 듯 싶었다.
김형근씨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효자로 전통모범 가정을 이룬 점을 인정받아 이원종 도지사 표창을 받는다. 그는 전통 모범가정이라는 명칭에 마냥 거북스러워하면서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을 자식이 돌보는 건 당연한 도리입니다. 궂은일 맡아준 아내 덕분에 4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4대가 함께 하는 김형근씨의 생활을 보면서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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