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외면 대원리 정원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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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면 대원리 정원수씨
  • 송진선
  • 승인 200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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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면서 장애인 돕는 정도사
장애아동들이 다닐 학교가 들어오면 땅 값이 떨어진다고 못들어 오게 실력행사를 하는 곳도 있지만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도 많이 향상돼 지금은 비례대표 1순위에 오를 정도다.

보은에서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버리게 하고 장애인들을 어둠에서 밝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정원수(49)씨를 꼽을 것이다.

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서는 장애인끼리 힘을 합해야 한다며 군 장애인 연합회를 만들어 지금의 반열에 오르게 했고 처지가 더 딱한 장애자들을 돕자고 곰두리 차량봉사대를 발족시켜 봉사활동을 전개한 주인공이며 장애자가 아닌 보통의 주민들로 인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울분은 얼마나 컸을 것이며 슬픔에 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팔팔했던 청년 엔지니어
15m 고층에서 낙상으로 장애
경북 의성출신으로 고등학교까지 순탄하게 잘 다니고 포항에 있는 전기가설 업체에 취업, 포항제철 제2공장의 전기공사에도 참여하는 등 엔지니어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태권도 유단에 축구도 잘하는 등 팔팔했던 청년 정원수는 78년 지상 15m에서 떨어져 좌측 고관절이 완전 파손되는 엄청난 재해를 입었다. 14개월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왼쪽 다리가 20㎝가량 더 짧은 장애자가 되어 병원문을 나선 후 3년간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좌절에 빠져 자살도 결심하는 등 자신을 학대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아들이 살아있나 확인했을 정도로 부모님 마음 고생을 시킨 그였다. 그러는 동안 이상한 기운을 발견했는데 3년간 방안에 있으면 잠도 못자고 좌절에 빠지면서도 밤 늦게 산에 올라 밤이슬을 이불삼아 누워도 잠을 잘 자는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이다.

매일매일 죽을 결심하다
산에서 기 정진하며 마음 잡아
그 길로 보은 접경인 경북 화남면 평온리 산속에서 80년부터 9년간 도를 닦았고 보은으로 이사해 시내에 살면서 산외면 대원리에 대원정사를 짓고 자기 수양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의 신통함이 알려져 사람이 몰려들었고 제자(?)도 많이 배출했으며 침술로도 유명세를 떨쳐 지금도 정원수씨를 정도사로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장애를 극복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으며 정도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1993년 날라온 예비군 통지서가 그를 장애인으로 등록시킨 계기가 되었고 보은군 장애인들의 후원자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예비군 훈련이 장애인 등록 계기
장애인 권익 보호 앞장
장애인으로 등록시키기 위해 장애인이 있는 집을 방문하면 그때만 해도 ‘병신’소리를 듣기 싫어 두문불출하는 장애인들이 장애인으로 등록시키려한다며 낫을 들고 쫓아와 해꼬지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다리 절어 가며 십 수 번씩 방문해 겨우 등록시키는 수고를 멈추지 않은 탓에 당시 200명에 불과했던 등록 장애인을 480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원수씨는 96년 보은읍 교사리 춘수골 삼거리 공터에 자신의 사비를 들여 콘테이너를 마련, 장애인연합회 공간을 만들었다.

몸이 아파도 거동이 불편해 병원가는 것도 포기하고 있는 동료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16대의 곰두리 차량봉사대를 발족시켰고, 전국의 곰두리 봉사대 차량이 보은으로 몰려들어 시가행진을 하는 장관도 연출했다.

그렇게 장애인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모임이 사작됐고 2000년 12월 현재의 사무실을 마련하는데에도 정원수씨의 역할이 컸으며 16대의 곰두리 차량 봉사대는 40대로 늘었다.

지금도 장애인 행사를 하면 각종 스폰서를 하는 등 후원에 앞장서고 있는 정원수씨는 군내 소년소녀 가장들을 후원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 몸으로라도 때우는(?) 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장애인연합회장을 지냈고 곰두리 차량 봉사대장도 지낸 정원수씨는 자활수기가 도 최우수, 전국 입상에 들었고 올해는 도연합회 표창패를 받기도 했다.

97년 20㎝ 짧은 다리에 인공 관절을 심어 짧은 다리를 보완했지만 심하게 아플 때는 한 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통증이 심하며 지금은 다치지 않은 쪽까지 아파 힘들게 하지만 약자인 장애인을 위한 마음은 쉼이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 장애인들이 한 달 100만원이라도 벌 수 있도록 각 기업체에서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인 협조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마무리했다.
정원수씨는 결혼에 대한 에피소드가 남다르다. 83년 신체건강한 보통의 여자와 처가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결혼식을 올렸고 좋은 곳에 혼처를 정해주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배신한 딸자식을 12번이나 데려갔을 정도로 인정하지 않았던 처갓집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사위로 인정받고 있는 정원수씨.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처가에 찍히게 만든 부인 이태숙씨와 대학생인 딸 둘과 보은중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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