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 동지회 군지회회 권 영 관 사무국장
해마다 6월25일은 찾아오는데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처참하게 한민족을 죽였던 전쟁. 전쟁의 참혹한 세계를 경험한 어른들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픔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에 즈음해 만난 보은군 6·25 참전 동지회의 사무국장 권영관(75, 보은 삼산3리)씨는 비전상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부로부터 다른 보훈 단체들과 비교해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며 소외감을 피력했다.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나라를 지킨 것은 똑같은데 국고 지원은 전혀 없는 상태다. 그나마 지난해 보은군으로부터 180만원을 보조받아 격전지를 순례한 것이 고작이다. 다른 보훈단체와 같은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라고 강조하는 권국장은 1999년 6월15일 창립이후 벌써 10여명이 작고했다는 것.
비전상 동지들은 전쟁이라는 값진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나라로부터 대우도 못받고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다며 예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25참전 기념탑을 보은군에 건립, 그동안 예우도 받지 못한 동지들을 탑에 새겨 넣어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겠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권국장이 전쟁터에 나간 것은 한국전쟁이 피치를 올리던 51년 8월 23살 때. 부모님과 함께 아내와 열 달밖에 안된 핏덩어리 아들을 두고 전쟁의 화염이 불같던 때에 경기도 파주군 장단면의 한국군 제1사단 15연대에 보충병력으로 입대, 고랑포 백사고지에 배치됐다.
당시 전투가 치열해 백사고지에서 1사단 병력이 초토화 됐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죽어나간 악명높은 고지였다. 또 전열을 가다듬어 경기도 연천으로 옮긴 후 퀸 고지를 사수하는데에도 1시단 병력은 거의 초토화 됐다.
그러니 자신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고 옆에 아군이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중대장이 전사해 중대 부관이 지휘했을 때도 있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 잠자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겨우 주먹밥에 새우젖 국물로 허기를 채우며 전투를 벌이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많은 동료 군인들의 희생을 치룬후 얻은 것은 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이 되고 55년 4월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오자 살아서 돌아온 아들, 남편에 대한 고마움으로 집안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파편으로 얻은 상처 등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 병력이 죽었다고 후방에 까지 소문이 났던 1사단에서 살아서 온 권국장을 가족들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고마워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면서 목이 매여 말끝을 흐리기도 한 권국장은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우리 민족 전체가 겪고 있다며 다시는 이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통일을 이뤄 한민족 한겨레가 다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은읍 강신리에서 4년8개월동안 이장을 보고 삼산3리에서도 22년5개월동안 이장을 봤던 권국장은 보은농협 감사도 18년이나 맡았을 정도로 주변의 신망이 두텁다.
현재 김옥단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여기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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