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가정… 전통윤리 숨쉬는 화목한 박영덕씨댁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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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가정… 전통윤리 숨쉬는 화목한 박영덕씨댁 가정
  • 보은신문
  • 승인 199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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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군내 최우수 가훈상 수상해 '가전충효 세수돈목' 5백년간 이어와
모든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의 절대적 교시는 사람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든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소식은 미담과 땀내음 가득한 노동의 이야기이기 보다는 패륜과 한탕주의로 가득차 있다. 그렇기에 뜻있는 사람들은 전통윤리에 다시 귀기울이며 가장 기본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 가정을 올곧게 세우는 일부터 앞서하자고 호소한다.

바로 그 점에서 모범이 될 가정이 여기 있다. 11월3일 문예회관에 전시된 각 가정의 가훈전시회에서 최우수 가훈상을 수상한 박영덕씨(32, 외속 오창)의 가정이다. 박씨의 가정은 5백여년전 이조 초기 17대 선조가 써서 남긴 가훈을 족보와 함께 보관해오다 박씨가 서각 으로 제작한 가훈을 출품해 상을 타게된 것.

박균석옹(74)의 5남4녀중 4남으로 8천여평의 논농사와 4천여평의 밭농사를 지으며 운봉 서각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씨 가정의 가훈은 '가전충효 세수돈목'으로 충효를 지키는 것이 가정의 전통이며 가정을 이루는 데는 화목이 기본이라는 뜻이다. 가훈의 가르침을 따르며 항시 자신을 돌아본다는 박씨는 보은중학교를 졸업(29회)하고 전문농업경영인의 꿈을 안은채 보은농공고 자영농과 1기로 진학(34회 졸업)하여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말한다.

천하의 근본인 농업을 고집하는 박씨는 연애와 결혼에 얽힌 이야기도 남들과는 사뭇다르다. 지난 91년 결혼한 이미화씨(31)와는 80년대초 펜팔을 통해 만났다고 하며 그 이후 6년간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채 서신만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후 오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씨와 4년여의 열애기간을 거쳐 화촉을 밝혔다고 하는 박씨의 이야기는 쉽게 만나고 쉽게 이별하는 요즘의 경박한 풍조에 대한 경종일 수 있다.

이렇게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성품이기에 어렸을때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박씨는 87년께 농사일을 쉬는 날 취미삼아 시작했던 서각 역시 이제는 프로급이다. 값싼 조각도로 나무에 새기고 싶은 글월이나 그림을 새기던 중 90년도에 우연히 서각 전시회를 보게되고는 거절하는 동천 송인선 선생을 몇번이고 찾아가 사사를 허락받았다는 것. 박씨는 동천 선생이 사사를 거절할때 상주에서 괴목공예를 배우기도 했지만 그 화려함에 비해 깊이를 느낄 수 없어 다시 보은으로와 끈질기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나무를 잘라 웅덩이에 넣고는 1년을 기다리고 또 1년을 건조시키고 제재작업을 한뒤 응달에서 다시 반년여를 건조시켜야 5단계로 마름질하는 기초 재단에 들어갈 수 있는 기다림의 예술, 서각에서 박씨는 선조들의 은근하고 그윽한 가르침을 얻는 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농사일에도 누구보다 부지런해 마을 사람들의 칭찬도 많다. 그러나 박씨는 "아직도 부모님을 모실때 소홀한 점이 있다"며 견손하기만 하다.

이렇게 스스로 본을 보이는 박씨 때문일까. 딸 해원이(4살)와 지원이(1살)는 자상한 아빠이지만 해원이는 어린나이에도 벌써 예절이 몸에 배웠다. 가훈을 만들고 걸어놓기는 쉬워도 그것을 지키기는 결코 쉬운것이 아니다. 성실한 농부로서 또 서각의 장인으로 충실한 화목한 박씨 가정을 나서며 '가전충효 세수돈목'의 내용을 한번더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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