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것은 소중한 것
상태바
우리것은 소중한 것
  • 보은신문
  • 승인 1995.11.18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샘문학회 회장 송원자씨
지난 주말 선운사의 단풍촬영을 다녀온 남편이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내려가 선운사 근처에서 일박을 하고 오전에 선운사의 단풍을 본 뒤 서해 바다를 만끽하자고 했다.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곱게 채색된 단풍잎이 계곡물위에 잔잔이 내리는 모습이 보이고 흰이를 드러내고 깔깔거리며 기슭에 와부서지는 파도가 내 가슴에 일러거렸다. 선운사는 가사는 남겨져 있지 않지만 고려사 악지에 곡명만 남아있는 백제의 선운산이란 가곡을 연상해서인지 고전적인 멋이 흐르고 단풍이 절경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한번은 꼭 가보고싶은 늦어져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일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늦가을 정취가 사방에 묻어나는 사과들을 보며 지역의 문화재를 찾아나 섰다. 그것은 남편이 소속해있는 보은사우회에서 사진전시회가 있는데 그때 우리지역 문화재도 함게 전시하기 때문에 촬영겸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숨결과 높은 공덕을 보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찾은 곳은 수한면 차정리에 위치한 후율사였다.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신 위안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으로서 가까이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이율곡의 후진이라하여 후율사라 일컫게 된것도 처음 알게되었다. 사당안을 돌아본 아이들은 전에 한번 가본 김수온 부조묘에 가지고 졸랐다. 우린 다시 보은읍 지산리로 향했다. 지난 봄 들판이 푸르름으로 채워갈 무렵 마을입구에 있는 서낭당에 돌을 몇개 얹으면서 아이들에게 옛조상들의 생활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김수온 부조묘에는 애들말대로 감이 여러개 달린 감나무가 있었고 이끼낀 돌계단도 정겨웠다. 문을 들어서니 사당안에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가 모두 잎을 떨구었고 주변에는 노란 은행잎이 쌓여있었다. 방문을 여니 영정이 봉안돼 있었다.

많은 시간의 벽을 넘어 찾게 된 사당안의 풍경에 젖어 보았다. 뒤에는 대나무가 울창하고 바람이 불때면 자기들끼리 몸을 부딪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종대왕때 건립된 보은향교를 향했다. 그곳은 자주 갔던 곳으로 그 옛날 유생들이 문턱을 드나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간곳이 성운 묘소 묘갈이었다. 소재지가 성족이란 것만 알고 성족리를 찾았으나 종곡리에서 넘을 수 있는 가마실 고개 중간에 있었다.

예전에는 국민학교 학생들이 이 고개를 넘어 학교를 다니던 곳이었는데 길이 폐쇄되어 있었다. 한적한 곳으로 길 양옆에는 나무가 우거진 데다가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터라무서움마저 느꼈다. 묘소를 관리하시는 분이 비석의 돌을 먹으면 과부가 임신하지 않는다는 전설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고 비석주변이 깨진 것은 아마도 이를 입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고 낙엽이 쌓여진 숲길을 걸으며 변화와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마실고개를 내려오는데 사방에서 어둠이 밀려오려고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살면서 많은 것을 추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황금을 최상으로 여기고 또 어떤이는 보이지 않는 부분의 소중성을 아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군내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느낀것이라며 우리의 조상이 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으므로 옛것에 대한 소중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와의 고유의 선은 쉽게 오지만 충열문이나 의열문, 효자문등의 단청 입힌 것이영 가깝게 느껴지지않던 지난 시간들. 그러나 우린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노랑머리와 푸른 눈빛을 가질 수 없고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지않고는 못배기는 한국인이다. 선운사의 단풍과 파도소리를 듣지못했어도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하루가 보람되었고 앞으로도 문화재 탐사에 나서서 자라는 누이아이들에게 우리것의 소중함을 심어주겠다 다짐해본다.


<생각하며 삽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rtyrtrt 2010-07-11 16:00:49
감명깊내요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