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바치 외곬 인생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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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바치 외곬 인생 30년
  • 송진선
  • 승인 1995.09.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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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양화점 대표 서갑석씨(보은 성주)
회사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기성화에 밀려 수제화 점이 사라진 요즘 그래도 고집스럽게 수제화 점을 이어가고 있는 갖바치 서갑석씨(50. 털보양화점). 몇 날 밤을 꼬박 새야만 주문물량을 해댈 수 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주문 한켤레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털보 서갑석씨는 30년 가까이 앉았던 낡아빠진 나무의자에 앉아 가게를 열면서 들여놓은 중고 미싱기를 돌리며 신발을 짓고 또 수선하는 일을 놓지 않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7남매중 장남인 서갑석씨가 신발짓는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15살 되던 해이다.

식구중 입을 하나라도 덜기위해 그의 부모들은 서갑석씨를 밥도 먹여주고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읍내 양화점의 점원으로 보냈다. 한번 보면 그대로 만들어 낼 정도로 눈썰미가 있었던 서씨는 좀더 나은 기술을 얻기 위해 서울의 유명한 양화점에 취업 갖바치가 되기위해 노력, 실력을 갖춘 기술자가 되었다. 그후 결혼을 하고 고향 보은으로 내려온 서씨는 '77년 기술자 2명까지 채용해 처음으로 자신이 주인인 '털보 양화점'이라는 상호로 문을 열었다. 당시 맞춤구두가 고가여서 흔하지는 않았으나 주문이 많을 때에는 기술자 2명과 함께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만 주문량을 끝낼 수가 있었을 정도였다.

또 한 켤레에 7천원정도 하는 기서오하는 비오는 날 하루만 신어도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가 기성화에 대한 인기도는 별로 없었고 한 켤레당 가격이 1만5천원에서 1만8천원까지 해도 '서갑석표'신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벌이도 괜찮은 편이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3년간 열심히 일을 했고 가정 경제사정도 점차 나아져 줄줄이 있는 동생들 학비도 보태주고 용돈도 대줄 정도로 호황기였으나 80년 물난리를 만나 서씨가 고생하며 일군 양화점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후 현재의 양화점 장소로 이전, 84년까지 꾸준하게 판매되었으나 유명회사의 제화광고가 나오던 85년경부터 점차 쇠퇴해 지금은 구두를 짓는 일보다는 수선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털보양화점의 '서갑석표'를 애용하는 30년 단골은 현재 1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털보양화점 구두라야 맘에 쏙들고 발이 편하고 오래 신는다며 서갑석씨의 솜씨를 최고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들이 서씨에게 수제화의 맥을 이어가도록 힘을 주고 있고 시력이 떨어져 신발을 더이상 만들수가 없을 때까지는 계속 만들겠다는 고집을 갖게 한다.

30년 가까이 신발을 만들었으나 살림은 그리 넉넉지 않은 가난한 가장이 신발 짓는 일을 놓지 않도록 묵묵히 뒷바라지해 온 부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서갑석씨.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두딸과 막내인 중학생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는 서갑석시는 비록 벌이는 시원치 않지만 과거의 영화가 묻어 있는 미싱기로 몇 안되는 주문구두를 지속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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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원 2011-08-08 16:14:5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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