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간 삶을 담금질해 장인자리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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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간 삶을 담금질해 장인자리 올라
  • 송진선
  • 승인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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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재(야장) 설용술(보은 죽전)씨
지방문화재(야장) 설 용 술(보은 죽전)씨56년간 대장간에서 삶을 담금질해 장인자리 올라 등줄기는 이미 땀으로 흠씬 젖었고 이마에서 볼을 타고 연신 흐르는 땀방울이 물이 되었는데도 그 흔한 선풍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쓱 닦으면 그만이다.

보은읍 삼산1리 59번지에서 보은읍 죽전리로 이사한지 4개월여만인 허름한(?) 남다리 대장간을 찾았을 때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올해 8월11일 충북도 지정 문화재인 야장(冶匠)으로 선정된 장인 설용술(70, 보은 죽전)씨는 주문받은 연장을 만드느라 메질을 하고 있었다.

달군 쇠를 모루(머리돌) 위에 올려놓고 메질을 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올라 군무를 연출했고 한참을 얻어맞은 후 생명을 얻은 쇠붙이는 호미, 칼, 낫, 도끼, 쇠스랑, 괭이로 태어났다. 설용술씨가 대장 기술을 처음 배운 것은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다.

7살 때 아버지가 작고하자 맏아들이었던 설용술씨는 삼산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14살 때인 48년 삼산리에 있던 마차공장을 겸한 최씨 대장간에서 일을 배웠던 것이다. 14년간 이곳에서 대장일을 한 설용술씨는 62년 안씨 대장간으로 옮겼고, 33세살 되던 해인 67년 대장장이의 벌이가 꽤 좋은 편이어서 힘들어도 해볼만한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남다리 대장간을 개업했다.

처음 대장일을 배운 후 하루같이 화덕에 불을 피우고 담금질과 메질을 해 집안을 돌보고 아들 4형제를 키웠다. 한때는 이곳에서 2, 3명의 대장장이가 일한 적도 있었고, 풀무질하는 일꾼과 배달꾼을 따로 두고 운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장간의 망치소리가 끊일 줄 몰랐던 시기는 이제 추억속의 이야기가 되어 버려 인부들도 하나 둘씩 떠나 화덕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 풀무를 돌렸던 인부대신 자동 풀무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농사일을 거의 기계로 하고 값싼 중국산 농기구가 들어와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아직도 설용술씨에게 연장을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고 오랫동안 거래한 농민들은 아직도 손으로 만든 것이 더 튼튼하다며 거래를 끊지 않고 있다.

그럭저럭 한달 꼬박해야 20만원 벌기도 빠듯해 부인 구광래씨와 생활하기도 버거운 실정이지만 달리 배운 것도 없고 젊음을 담금질한 대장간을 쉽게 떠날 수가 없어 무거운 쇠메를 놓지 않고 있다. 명장에 올랐지만 무거운 쇠메질 56년에 척추가 틀어지고, 팔은 위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숯불이 튀어 팔은 온통 화상흔적이고, 약해진 시력이 훈장처럼 남았다.

벌이가 시원찮아 후계자 찾기도 어렵다는 설용술 장인은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을 식히려는 듯 한숨을 토해내고 다시 화덕에서 달군 쇠뭉치를 끄집어 내어 마치 가슴속의 한을 삭이듯 메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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