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가정…가난딛고 일어선 이홍기씨댁 "박사집안"
상태바
이런가정…가난딛고 일어선 이홍기씨댁 "박사집안"
  • 송진선
  • 승인 1995.09.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거 학자집안 현재 박사집안으로 맥이어
보통 어떤 한 가정을 소개할 때 학자(선비)집안이니, 권문세도가니, 교육자 집안이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특별하지 않는한 보통 선비집안 즉 학자집안은 가난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 가난이 끈기를 만들고 노력을 창출해 결국 성공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탄부면 장암2리 자연마을명으로는 경상(증생이)리인 이홍기씨 가정 또한 학자집안으로 가난했지만 그의 형제들은 가난이라는 굴레를 멍에로 지지않고 해당 전공분야에서 국내 대가로 꼽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군내에서 손꼽히는 집안중의 하나다.

더욱이 이들집안에는 한명도 아닌 현재 과정중에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 총 4명이 '박사님'이다. 과거 학자집안의 명문을 현재의 박사집안으로 그 맥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형님인 이홍기씨를 중심으로 봤을때 둘째동생인 이중기씨(61)는 농업토목분야에서 학위에 연연하지 않은 '박사'로 그 분야의 사람들은 그를 학위를 받은 박사보다 실력이 더 좋은 박사라고 인정한다. 올해 과악의 날에는 동탑산업훈장까지 수상했다.

넷째동생인 이찬기씨는 공학박사이다. 또한 이중기씨의 장녀인 이명희씨도 분문학 박사이다. 이외에 이홍기씨의 막내아들인 이종선씨(33)는 정치사회학 박사과정중에 있다. 한 집안에서 한 명의 박사가 탄생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닐텐데 4명씩이나 배출한 것은 주위에서 찾아보기 드문 사실이다. 이들이 이렇게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것은 특히 이홍기, 이중기, 이형기, 이찬기씨 아버지의 희생이 컸다. 가난한 학자집안에서 태어난 이홍기씨 형제는 겨우 밥먹기에 급급했고 그나마도 굶는 날이 많았다.

식구가 많을 때에는 15명정도 되었는데 솥조차 귀해 밥을 해먹고 다시 그 솥에다 쇠죽을 끓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해서든지 자녀들 공부를 시키겠다는 열의로 남의 집땅도 빌려서 경작하고 품도 파는등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 그러한 노력끝에 자녀들의 교육에도 많은 힘이되었고 땅마지기라도 마련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살던 시절 이들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밥상머리 교육은 지금도 생활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4남2녀의 장남으로 부모가 데리고 살겠다는 의지로 인해 이홍기씨는 탄부국민학교만 졸업해서 면사무소에 근무하다 65년 농지개량조합에 입사해 91년 정년퇴임했고 형과 동생사이에서 공부를 포기해야만 했던 세째동생 이형기씨는 지금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탄부국민학교와 보은중학교, 보은농고를 둘째인 이중기씨는 새벽에 별보고 집을 나가면 다시 별보고 집에 올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 먼거리를 걸어서 다니면서도 힘들다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학은 서울대 농공학과를 진학, 말이 대학교 다니는 것이지 가정형편도 안좋아서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면 다시 등록하고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 어렵게 공부하던때에 막내인 이찬기씨도 사직국민학교와 보덕중학교, 경기공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공대를 진학했을 때에는 꽁보리 밥에 소금이 반찬이었으며 맏형인 이홍기씨가 동생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 12집을 다니며 돈을 꿨을 정도였다. 그러다 둘째인 이중기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야 겨우 형편이 나아졌다. 동생 학비도 보태고 집안도 보살피던 이중기씨는 처음 충북도청에 취직했으나 수리조합 연합회(현 농어촌진흥공사)로 자리를 옮겼고 농어토목의 대가인 그는 국비로 네덜란드 델프트(DELFT) 공과대학에서 수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농어촌진흥공사에 근무하면서 이중기씨는 수한면 교암리 보청저수지를 비롯해 갈평, 소여저수지를 축조했으며 특히 현재 최적의 공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동양 최대규모의 시화방조제와 새만금지구 방조제 축조술을 비롯해 금강 평택지구 개발시 사용했던 기술은 현재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국내 수자원계획 수립시 설계기준으로 활용될 정도로 현재 이중기 농어촌진흥공사 부사장은 해당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고 또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중학교 입학금만 대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를 다니겠다고 할 정도로 학비 조달이 어려웠던 이찬기씨는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자 고등학교를 둘째형이 공부하고 있는 서울의 경기공고로 진학을 했는데 당시 보덕중학교에서 경기공고를 진학한 예가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 교사들로 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맏형과 둘째형의 도움으로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고대 대학원에서는 환경학을 전공해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강원대학교 공대학장으로 있다.

환경이 전공인 이찬기씨는 요즘도 환경처의 각종 사업을 계획하는데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외에 이중기 부사장의 2남2녀중 장녀인 이명희씨도 불문학박사이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곧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이명희씨는 현재 프랑스에서 영화 관련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한국에서 교수가 될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이홍기씨의 막내인 이종선씨도 고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3남2녀중 막내로 사직국교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중학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이종선시는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정치사회학으로 박사과정 중에 있다.

형제, 삼촌지간인 이들은 공부만 열심히하고 제 앞만 가리는 것이 아닌 우애도 남다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태풍이 불었는데 형님 농사에는 피해가 없나, 서울에 비가 많이 왔다는데 동생 비 피해는 없나, 조카들은 잘 자라고 있나, 전화로 안부르 물으며 자주 못만남을 해소한다. 이들은 돌아오는 추석에 만나 회포를 풀기위해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만들고 있다. 교통체증이 아무리 심각해도 밤새워 고향으로 줄달음칠 이들 '박사님집안'은 한가위보름달이 지는줄도 모르고 정을 피울것이다. 어렸을 때 추석빔을 기다렸던 심정으로 이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부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