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희생으로 국가시수
날씨가 궂은 날이면 종일 앓는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상처의 아픔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소고디기 때문이다. 상이군경 조연석씨(69세, 보은 삼산3리). 그는 여순반란사건에서 엉덩이 관통상을 제주 4·3폭동사건에서는 대퇴부골절상과 하퇴부 복잡골절상을 입었다.그때문에 평생을 6cm나 짧은 오른쪽 다리를 가진 불구로 살아가야만 했다. 아직도 싸한 아픔에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워야 한다. 부상으로 인해 대한민국 명예제대 7호로 제대를 한후 충북경찰학교에서 2년간 조교생활을 하다 당시 기승을 부리던 공비토벌경찰 훈련을 위해 보은경찰서에 배치 된것이 보은사람으로 남게 된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공비토벌을 위해 전투경험이 없는 경찰을 훈련시키며 산외면 대원 신선봉과 용화지구 속리산과 영동 덕유산까지 공비토벌을 다녔다. 회인 쌍암전투를 끝내고는 방위포장을 받은 조연석씨는 전쟁이 끝나고 보은경찰서 수사과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또다시 지역방범을 책임지며 봉사했지만 군대시절 다쳤던 상처때문인지 건강이 뒤따르지 않아 경찰을 떠나야 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후 농민으로 살아온 조연석씨는 올해로 19년째 마을이장직을 맡은 보은읍 최장수 이장인데다 보은농협수석이사를 역임하는 등 지역봉사활동으로 일관된 일생을 보내고 있다. 어려웠던 그때를 생각하며 전투참가이후 아직 법주사를 가보지 못했고 아직도 기름보일러를 놓지 않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조연석씨는 젊은 전후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넉넉지 않은 경제생활을 하면서 사치와 낭비가 심한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 국력은 아직은 더 일하고 아껴야 할때입니다"고 당부를 잊지 않는다. 부인 장매자씨와 아들 조덕형씨(45세, 서울)를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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