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산증인 윤수만 할머니의 숙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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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산증인 윤수만 할머니의 숙부 찾기
  • 보은신문
  • 승인 199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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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내 가족사 찾아야겠소"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던 한 할머니가 숙부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위한 당시 확동자료를 찾고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수한면 차정리에서 태어난 윤수만할머니(69세)가 바로 그 주인공. 윤할머니는 지난 90년부터 정신대에 대한 일본 보상문제를 둘러싸고 재판에 나가 증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었다.

못난이로 불리며 어린시절을 보내던 윤할머니는 당시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하던 숙부 윤용원씨(조부 윤재용씨의 2남, 1남은 성원<윤할머니의 부친>로 인해 고향인 수한차정리에서 살지못하고 전가족이 탄부와 내속 대목골 등으로 숨어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이같이 일본군으로부터 독립운동가족으로 낙인찍혀 숨어살다가 13살 되던해 당시사주택일까지 받아놨던 고모와 함께 일본에 끌려간 윤할머니는 해방이 되던해인 18살까지 일본에 있어야만했다. 끌려가자마자 고모와는 헤어져 생사를 알수 없었고 곧바로 위안부 노릇을 하게된 윤할머니.

그러나 일본군을 받아들이려 하지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자 일본군이 팔을 부러뜨려 지금까지도 왼팔이 틀어진채 불구로 살고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졸도를 계속하는 등 끝없이 저항하자 감옥으로 옮겨졌는데 그래서 당시 히로시마에 있었지만 원자폭탄 폭격속에서도 감옥에 있는 관계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

18살에 한국에 나와 밥을 빌어먹으며 철길을 따라 고향인 내속 대목골의 집을 찾았지만 온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얘기와 집도 불타없어져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오갈곳이 없던 할머니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목숨은 부지됐고. 거지처럼 구걸을 하며 여기저기 떠돌던 윤할머니는 한 스님을 따라 속리산 복천암을 따라 갔다가 28세되던해 역시 전쟁에 나갔다가 다리를 잃은 남편(2년전 사망)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생활능력이 없던 남편이기에 남의집살이 청소부 등 고생을 해가며 생활을 영위했고 1남1녀를 둬 딸은 출가를 시켰지만 아들은 척추를 다쳐 역시 영세민으로 부인도 도망가 엄마없는 딸하나를 키우며 보은에서 살고있다. 지난해부터는 국가가 지원한 13평의 아파트에서 월 20여만원을 보상받으며 서울에서 살고있는 윤할머니는 죽기전에 독립운동을 했던 작은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위한 자료를 찾고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사나 재판기록부, 정부보존문서나 수용사실 등 기록을 찾아야 하지만 마땅히 찾아야 할 방법도 모르고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떠돌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어릴적 얘기로는 유공자 선정은 어려울 듯 보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다만 숙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형이 있다는 유중열옹(보은읍 이평)만이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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