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올 고향 찾아온 영광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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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못올 고향 찾아온 영광의 사나이
  • 보은신문
  • 승인 1996.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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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철씨(보은 노티)
첫번째 출향인의 날이 열리던 날. 문화예술회관에서건 공설 운동자에서건 이날 참석한 출향인들은 모두들 즐거워 했다. 그런 출향인들중 유독 감개무량함이 그야말로 얼굴에 쓰여있을 정도로 즐거워 하던 사람이 있다. 바로 문효철씨(43, 보은 노티, 중초 초등교 23회 졸).

그의 표현대로라면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고향을 이처럼 건강하게 또 이같이 많은 출향인들과 고향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 참석하게 될줄은 몰랐다고 한다.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인 서른여덟(90년)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폐병 4기에다 간경화까지 겹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정도로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실날같은 인생의 끈을 놓아야 할 때에 그토록 자식의 목숨을 살리려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셨다. 어머님의 장례식날 입시조차 지키지도 못하고 입관도 지켜보지 못하는 자식의 도리를 다못한 죄보다도 그만큼 죽은 목숨으로 한켠에 내던져져 있어야만 했던 문효철씨.

건강을 잃자 운영하던 섬유공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아남의 손에 넘어갔고 부인도 떠나갔다. 세상의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런 그가 이처럼 살아서 5년여만에 고향을 다시 찾았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문효철씨가 이같이 다시 회생 할수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신 하나였다. 워낙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니 그 끈질긴 병마도 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는 산 것으로 만족을 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 가장 평범한 이 진리가 그에게 있어서는 꿈이고 삶의 지표가 되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아버지를 도와 꿋꿋이 커준 석광군(중학 2년). 장학금을 탈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아버지의 힘이 되어주는 그 아들을 위해서도 그는 지금의 건강을 지키며 살아내야하는 것이 그의 남겨진 과제란다.

그가 병마를 이겨내고 기적같이 살아났을 때 주위사람들은 "이는 다시 태어난 것과도 같다"며 이런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판을 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들의 도움과 작곡가 주성민씨의 곡을 받아 '영광의 사나이'란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했다.

비바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낮과 밤을 지세우며 이 길을 왔다./ 한때는 괴로움에 돌아설가 했지만/ 지금은 푸른 꿈을 활짝 빛내여/ 고향을 찾아가는 영광의 사나이 이런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와 '사육신'이란 노래를 자 작곡으로 하고 그외 '소쩍새우는 고향'등 기성곡을 포함해 음반 3~4만개를 제작했다.

그가 부른 노래가사처럼 가난과 병마를 싸워 이기고 고향을 찾아가는 영광의 사나이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앞날에 더 많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보은은 내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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