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은 더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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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은 더 들지만
  • 송진선
  • 승인 2000.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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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땅보면 보람유기농 10년째 이철희씨(마로 한중)
벼 40kg 한가마 8만2천원
고추는 한 근에 7천8백원 

당장 눈앞에 병에 걸려 죽어가는 농작물이 보이는데 농약을 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콩이나 팥보다 풀이 더 큰 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농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또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졌다.

또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경우 수확량이 분명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농민들은 유기농법에 대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신기해 할 일일 것이다.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의지의 한국인이다. 마로면 한중리 백록동(산에 사슴모양의 흰색 차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에 거주하는 이철희씨(62)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은지 올해로 10년째다. 그의 집은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얼마를 가다보면 마을의 맨 꼭대기 집, 그것도 산 중턱에 겨우 걸터앉았다.

배운 것이라고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사짓는 기술밖에 없어 이철희씨는 부인 강순희씨(55)와 함께 오로지 땅 파는 일에만 열중했다. 변변한 땅마지기도 마련하지 못하고 화전을 일구며 살 정도로 살림은 궁핍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느날 이철희씨의 처남댁에 다니러 갔다가 당시농사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물보다 키가 큰 풀이 가득한 처남의 밭이었다. 이유인즉 유기농을 한다는 것이었다. 86년 유기농을 시작, 유기농 관련 모임인 `한살림' 회원이 되었던 처남은 비료와 농약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토양에 미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땅이 되었다며 큰 풀은 나중에 밭에 깔아 퇴비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철희씨도 땅을 살려보자는 일념으로 91년 3월 유기농 농산물만 소비하는 구성체인 `한살림'의 회원으로 가입하고 우선 고추부터 유기농법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부족한 성분을 보충하기 위해 비료를 주면 그만이었지만 비료대신 퇴비의 주성분으로 쓰이는 축분과 쌀겨, 깻묵을 잘 발효시켜 퇴비를 충분히 줘 땅심을 높였다.

첫 해에는 비료와 농약을 줘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일반인들 보다 수확량이 크게 떨어졌다. 92년에는 밭작물 전체로 확산하고 벼농사는 50%만 유기농재배를 하고 93년에야 논과 밭 모두 유기농 재배를 했다. 퇴비는 벼의 경우 평당 1kg을 줘야 하는데 처음에 1kg을 다주는 것이 아니고 평당 소요되는 1kg을 밑거름으로 50%, 가지거름 30%, 이삭거름 20%을 줘서 벼가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농약을 치면 안되기 때문에 일일이 논, 밭을 매야 했다. 물에 손을 넣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손바닥이 썩었을 정도. 올해는 우렁이가 대신 논을 매기 때문에 손이 썩는 일은 없다. 한동안 그런 이철희씨가 동네 사람들에게 조차도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졌지만 환경을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에 이철희씨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가까이 땅심을 높여놓아 올해도 태풍으로 벼가 많이 쓰러졌지만 다른 논과는 달리 멸구가 안생겼고 다른 집의 고추는 탄저병과 역병이 심하게 걸렸지만 농약 한 번 안한 이철희씨의 고추는 이제 조금 탄저병이 나타날 정도고 끝물인 지금도 고추 크기는 변함이 없다고.

토양에 미생물이 살아있으니까 농작물이 뿌리가 튼튼해져 병에 대한 저항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얼마전에는 서울대학교 미생물 연구소에서도 토양을 채취해가고 성균관 대학교에서도 역시 토양을 채취해갔다. 농산물 품질 관리원에서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있는데 토양에서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미생물이 그의 농경지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기도 한다. 이러게 생산된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 보다 2배 가까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벼의 경우 올해산 정부 추곡수매가가 40kg기준으로 1등가격이 5만8120원이지만 이철희씨는 8만2000원, 고추도 1근당 7800원을 받는다. 얼마전에는 삼양농산에서 유기농 쌀을 주문해와 쌀 80kg 가마당 36만원에 팔았다. 유기농으로 생산만 하면 전국에 회원들이 산재해 있는 한 살림을 통해 판매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 공급이 달릴 정도.

삼성에서도 한 살림을 통해 하루 배추 500포기씩을 주문해 이철희씨에게도 배추농사를 권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손이 안돌아가 포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기농 농산물을 선호하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 졌기 때문. 이철희씨는 “잘알다시피 주위에서 흔히 본인들이 먹을 고추나 배추 등에는 농약도 덜하면서 시장에 내다파는 농산물은 죄의식없이 농약을 마구 치고 있는데 고추의 경우도 탄저병이나 역병, 벌레를 죽이기 위해 1주일이 멀다하고 농약을 치고 있으니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철희씨네도 배추 한 포기 시장에서 사다먹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해 자급자족하고 있는데 그가 농사짓는 것이 벼와 고추, 깨 등은 기본적인 것은 물론 팥, 수수, 마늘, 땅콩, 기장, 차조, 동부, 백태, 대파 등 우리 토종은 거의 재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중 그의 주 소득원은 벼, 고추, 참깨. 이것을 한살림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유기농 재배법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동네에서 5집이 고추 유기농을 시작했다. 10년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철희씨는 점차 확산될 것으로 확신하고 잇다. 왜냐하면 농약은 치면 칠수록 병균들이 농약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퇴비는 주지않고 비료만 준다면 땅이 죽어 더 이상 작물이 살 수 없는 토양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제초제의 경우 양잿물의 200배의 독성을을 보이고 고엽제와같은 피해를 나타내 앞으로 가면 갈수록 농산물 소비자들이 농약을 친 농산물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신에 차있는 이철희씨는 얼마 후면 농부로서도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 나이이지만 겨우 살린 땅을 죽일 수가 없어 남에게 팔지않고 유기농을 하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한다.

귀농자들이 그의 농장에서 유기농 체험을 하고 한살림 회원들이 일손돕기를 해줘 부족한 일손을 그나마라도 충당하고 있는 이철희씨는 화전, 국유지까지 합쳐서 겨우 밭 2500평, 논 2500정도에 불과하고 연 소득액도 많지않다. 그러나 슬하의 1남3녀의 자녀들은 땅을 살리는데 바친 부모의 땀을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러워 한다.

농촌에 있으면 결혼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부모의 걱정을 뒤로하고 장남은 유기농 2세로 어설픈 손놀림이지만 아버지의 유기농 경험을 물려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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