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김기만옹(보은 강신)
상태바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기만옹(보은 강신)
  • 송진선
  • 승인 1996.03.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인물 키우는 "대꼬챙이"
김기만옹, 큰 도움을 주는 작은 사람 사회가 더욱 살갑게 느껴지게 하는 사람이다. 넉넉한 살림도 아니면서 십수년간 지역의 인물 키우기에 여력을 쏟고있다. 슬하에 7남매가 두고있고 그 자식들을 모두 대학교까지 가르친 형편도 아니다. 그 살림을 쪼개서 김옹은 장학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동안 수혜를 입은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서운함을 갖기 보다는 남을 도와준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를 확대해가고 있다. 김옹이 고집스럽게 이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의지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인의 적극적인 내조덕이다.

한번도 왜 그일을 하느냐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고 자식들도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면 적극 찬성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난 90년에는 아예 자신의 호적명인 동호를 따서 '동호장학회'를 만들어 대를 이어 장학사업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 놓고있다. 처음 김기만옹이 장학금을 준 것은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인 80년부터이다.

처음에는 종곡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을 선발해 중학교 입학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했고 이제는 중고등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주고있다. 배우고 싶어하는 남을 좀도와주자는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가지 16년간 32명의 학생에게 6백40만원을 지급했다.

자녀들이 준 용돈을 절약하고 또 1년농사 지은 것중일부를 장학기금으로 따로 떼어놓아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기금이 모아져 지금은 이자로 장학금을 중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김옹은 지역에서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근검절약하는 대꼬챙이 노인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근검절약하는 자녀교육에는 투철해 결혼해 분가시킬때에는 한달분량의 쌀과 방값, 숟가락, 그릇, 솥이 고작이었다. 이것은 맏이라고 더주고 막내라고 덜주고 하는 법이 없이 김옹의 자식들에게는 누구나가 똑같이 적용되었다.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서 너희 힘으로 자립하라는 것이 김옹의 자녀의 결혼생활에 대한 절칙이다.

부모의 검소한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그 부모의 그 자식이라고 큰 아들인 홍범씨(55. 농림수산부 가공과계장)와 둘째아들 홍선씨(50. 대전광역시청 의약계장) 그리고 홍백씨, 홍제씨, 홍길씨, 광태씨등 자녀들도 부지런하고 검소하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김옹의 성미에는 덜미치는지 자녀들에게 좀더 절약해줄 것을 채찍질하면서도 속마을으로는 매우 흡족해한다.

김옹은 도 손자손녀들의 입학금은 꼭 손수 챙겨주고 있다. 입학을 축하하면서 훌륭한 사람이되어야 한다는 격려이다. 늘 건전하고 편안한 마음가짐 때문인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정갈하다. 김옹과 그의 그림자같은 부인이 함께 어려운 이웃에게 뿌려주는 사랑의 단비가 계속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