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청소길로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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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청소길로 한 평생
  • 보은신문
  • 승인 199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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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퍼지기전 새벽 4시부터 깨어나 보은 골목을 달리는 지천동(57)씨의 하루는 이제 낯익은 일과이다. 한때는 소방서에 근무하다 70년초 읍사무소(당시 보건소 소속)미화요원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20년을 비가 오나 눈보라가 치거나 리어카를 끌며 보은 골목골목을 누빈 세월에 어느덧 희끗희끗한 머릿결을 날린다.

“짜증난다고 싫증내거나 불만을 가졌다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죠, 이제껏 천직으로 삼고 쭉 해왔습니다” 너털하게 웃는 지씨는 새벽 쓰레기를 버리는 보은 아주머니들과 아주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보은 수정이 고향이면서 보은 삼산에 살고 있는 지씨는 “리어카에 쓰레기를 싣고 와 많은 양의 쓰레기를 타이탄 트럭에 옮겨 실으려다 보니 쇠스랑으로 연탄재를 부수면서 얼굴과 옷이 모두 뽀얗게 뒤집어쓰던 때를 잊을 수 없다”며 “지금은 덤프트럭이 들어와 한결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미화요원 시절 만해도 연탄 소비도 적고 쓰레기도 적어 청소하기에 애로가 크지 않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쓰레기 양의 증가로 고달픈 하루를 맞는다. “더러 주민들이 수고한다며 양말이나 내의라도 사주고 그럴 땐 정말 고맙다”며 “미화요원 대부분의 가정이 불우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안기순 읍장은 “직업이 미화요원인 관계로 애는 애대로 쓰면서 칭찬도 못 받는다”며 더많은 주민들이 따스한 손길로 감싸주길 부탁한다.

지씨의 급여는 미화요원이 모두 그렇듯 박봉이다 보니 자녀들의 학비문제가 큰 부담이지만 새로 들어오는 미화요원에겐 “머지않아 선진국 마냥 우리 같은 노동자에게도 특혜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도 잊지 않는다. 지천동씨는 부인 김사연씨와 1남6녀를 두고 있지만 가족과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어쩌다 지씨가 외지로 볼일 보러 갈 때도 유심히 쓰레기더미에 눈길이 간다며 우리지역이 대체적으로 깨끗하다는 평을 들을 땐 흐뭇하다고 말한다. 일요일과 국경일도 없이 식구들의 새벽잠을 빠져나와 보은을 달리는 지씨의 일과에서 보은의 깨끗한 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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