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농고를 찾아서
상태바
보은 농고를 찾아서
  • 송진선
  • 승인 1990.0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여년 전통, 성실하고 능력있고 예절바른 학생으로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서 농업은 생존의 바탕이었고, 민족적 삶의 뿌리를 형성하는 원류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농업의 정책적 육성은 불가피했고, 농업학교의 설립 또한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전국에서도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학교로 성장한 보은 농업고등학교는 90년 2월 13일로 41회의 졸업횟수를 자랑하고 배출된 졸업생만도 7천여명에 달하는 전국의 명문고교이다.

성실하고, 능력있고, 예절바른, 정직한 학생으로 키우기 위하여 교장을 비롯한 46명의 교사들에 의해 알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영농기술을 배워 녹색혁명을 이루려는 의지로 학생들의 눈빛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 설립 초창기
1944년 3월 28일. 식민정치가 절정에 이를 즈음 보은 공립농업학교가 4년제로 농업과 1학급을 인가받고 6월 5일 입학식을 가졌다. 당시에는 일본인들의 엄격한 통제속에서 고등교육을 받기보다느 일본 숭배작업과 광솔 등을 채취하는 근로봉사가 고작이었다. 보은군 잠사공동판매소(현 농산물 집하장 창고)를 가교사로 시작한 농업학교의 학생은 겨우 16명이었지만 자식을 둔 아버지들까지 다닐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의는 진지했다.

그리고 해방후 당시 일본인 국민학교인 왕산국미학교로 이전한 것이 45년 10월 12일, 초대 교장에 김교현씨(초대 제헌의원)가 취임하여 정식으로 한국인 교사 밑에서 배움의 길이 열린 의미 있는 해이다. 또한 우리말 우리글을 비롯하여 짓밟힌 역사를 재정립하는 창조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콩깨묵 섞인 밥이나 죽으로 주린 배를 채웠고, 광목이나 베로 만든 교복을 입었던 가난한 고교시설을 회상하는 최낙빈씨(1회, 엽연초 생산조합장)는 일제때의 힘들었던 기억을 되짚는다.

46년 9월 보은 농업중학교로 학제를 개편(6년제)하여 농업과 2학급을 인가받았다. 그리고 48년 4월 5일 보은면 교사리 100번지의 현위치로 이전하여 50년 5월 3일 역사적인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곧 6.25가 발발되었고 며칠 후 학교는 임시휴교에 들어갔다. 한파가 대단했던 1.4후퇴때에는 미군이 학교에 주둔하여 책·걸상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수복후 생존자들이 다시 모여 수업이 재개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의 행방이 불명한 상태였고, 미군 주둔시 버리고 간 폭발물을 잘못 건드려 죽는 학생들도 있었다. 51년에 농업중학교에서 농업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고 수업기간도 3년에 임업과가 신설되어 현 고등학교 체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 학제개편으로 당시 농업중학교 4학년이 농고 1학년이 되었고 3학년이었던 학생들이 현 보은중학교 1회 졸업생이다.

54년에 축산과가 신설되었고, 56년 2월 16일에 농업과 1학급을 농업가정과로 변과시켜 여학생 23명을 수용하였는데, 전국의 농고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농업가정과 1회인 김한순(51, 농고10회)씨는 주위의 시선이 퍽 따가웠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한편 61년 농업가정과가 보은 여고로 독립하여(4회때) 한동안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84년에 학생 충원계획으로 원예과 30명을 입학시켜 현재 농과, 원예과를 포함하여 84명의 여학생이 있으며, 여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67년 10월 4일에는 누전으로 인해 본관 건물이 모두 타는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당시를 박대종씨(8회, 의료보험 총무과장)는 “새벽 1시쯤일 겁니다. 농고에서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불길이 많이 번져 있었죠. 학적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지만 학적부를 챙길 시간이 없어 교기만 들고 나왔죠. 눈썹하고 머리가 불에 그을려서 노랑내가 날 정도였지만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야 머리가 탄 것을 알았습니다”라며 속수무책으로 타고있는 것을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서 모교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재로 인해 본관건물이 전소된 자리에는 67년 11월 9일 본관 신축공사가 시작되었고 현 농고 본관의 모습은 그때 지어진 건물이다.

◇ 학교의 변모과정
1969년에는 IDA(국제 개발위원회)의 교육차관 지원학교로 지정되었고 그 결과 실험실 건축비, 내부 시설 및 기구비 등에 2억 5천여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원받아 전국 농업고등학교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학교로 인정을 받았다. 갖추고 있는 시설만해도 영농관, 임업실험실, 우유처리실, 과수관리실 등 60개가 넘고, 실험 실습 기구는 농기계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선반류 등 총 4백52종에 1천9백15점에 이르는 기구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72년 2월 전국 12개교 중의 하나인 산학협동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이론이 현장에서의 실습을 통해 확인될 수 있도록 기회가 부여되었다.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영농기술 또는 경영능력을 갖춘 영농인을 위한 자영농과가 79년 신설되었는데 영농에의 정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학비 등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영농대상학과가 신설되어 89학년도 현재 각 학년에 축산과 2학급, 자영농과, 농학과, 임학과, 원예과가 각 1학급씩 총 18학급이 있다.

연간 8천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방대한 목장이 85년 산외면 중티리에 마련되어 초지 17만㎢에 비육우 30두, 젖소 40두를 비롯하여 돼지 36두, 닭 3백수 등의 가축을 보유하고 있으며, 논(1만5천평), 과수원(1천6백여평), 묘포(2천여평), 채소포(2천2백여평) 등에서도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 수익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급하여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는데 89학년도 현재 총 6백38명의 재학생중 84%에 해당하는 5백34명이 장학금혜택을 받고 있으며, 총 장학금지급액은 연 8천81만9천원이다.

◇ 나아갈 방향(개선점)
위와 같이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학비 등 각종혜택을 지원하고 있지만 농업고등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매년 감소하여 정원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90학년도 신입생만 보더라도 2차모집까지 80명 정도가 미달이다. 한 학교관계자에 따르면 어떤 대책 없이 이런 상태가 5년간만 계속된다면 자칫 폐교까지 논의 될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농고에서는 현장실습에 있어서도 인력에 의한 노작을 지양하고 기계를 최대한 활용하는 영농방법을 시행할 것이고 한편으로 공과를 병설하여 보은에 소재한 중소기업 내지는 대기업에 취업시킬 수 있는 다방면의 계획들이 제시되고 있다. 보은농고 총 동창회장인 김종철씨(5회, 군 사회과장)는 “제가 다닐 때만 해도 90% 정도는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실력들이 우수했어요. 그런데 지금 후배들을 보면 진학은 거의 포기한 상태이고 그렇다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 기술 실업자가 많은 것 같다”고 모교를 걱정한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 보은농고 이상춘 교장(4회)은 “농업이 사양길을 걷고 있고 이농현상이 확대되어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데 91년부터 학생유치를 위해 화공과를 병설하게 되었다”며 이 같은 조치가 늦은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농고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화공과 병설이 스러져 가는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굳이 외지의 공고로 진학하여 비싼 하숙비를 들이는 등의 부담을 덜어주고, 기존의 훌륭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잇점으로 제2의 도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출신인사
40여년의 전통을 빛내며 보은지역 교육발전에 기여해 온 보은농고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인물들을 배출해 냈는데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장
임호순(1회, 청주 서원중), 최흥구(1회, 청원 미원중), 김홍격(1회, 단양 가산국교), 이상춘(4회, 보은 농고), 한재봉(7회, 탄부국교)

·박사 및 고시합격자
강효신(3회, 한의학박사), 최병문(4회, 농학박사, 청주교대), 김봉구(5회, 농학박사, 단국대), 조성대(8회, 행정학박사, 성심여대), 강신우(9회, 농학박사, 충북대), 배길관(11회, 농학박사), 서상범(16회, 행정고시), 최재을(17회, 농학박사, 충남대), 권일찬(17회, 행정학박사, 충북대), 이봉희(19회, 사법고시, 대구검사)

·군내기관장
김태언(3회, 민방위과장), 최석규(3회, 옥천군보건소장), 조성열(5회,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전무이사), 안기순(5회, 보은읍장), 이병관(5회, 삼승면장), 윤봉권(5회, 회남면장), 김홍구(5회, 농촌지도소 담당관), 이상구(5회, 탄부면 농협장), 이동환(5회, 내북면 농협장), 이정환(7회, 외속리면장), 임순철(7회, 내속리면장), 최원춘(8회, 농협중앙회 보은군지부장), 이환성(8회, 회북면장), 김명로(8회, 산외면장), 박대종(8회, 의료보험조합 총무과장), 구민회(9회, 마로면장), 박종기(9회, 탄부면장), 주진성(10회, 민정당 연락소장), 구본선(15회, 산림조합장)

·군청(과장 이상)
김종철(5회, 사회과장), 이재표(6회, 기획실장), 최중열(6회, 재무과장), 곽종천(9회, 산림과장), 김홍운(9회, 식산과장), 김종길(10회, 공보실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