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숙녀가 되어가는 사춘기 손녀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찾다가 발을 주물러 주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늦도록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러 거실로 나왔을 때가 기회다. 발바닥을 꾹꾹 눌러주면 온몸의 피로가 사라진댔다. 에미애비가 할아버지한테 발을 드리밀지 말라고 야단을 치지만, 할애비가 슬그머니 발을 끌어당기면 못이기는 체하며 딸려온다. 힘들어도 고등학교 시절이 평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지식을 가장 많이 습득하는 때란다. 발은 제2의 심장이다. 편안한 운동화 신고 잘 때는 꼭 발을 따뜻하게 해라. ‘예예’하며 대답을 잘한다.
통풍으로 고생하고 있는 선배 한 분이 있다. 혼자 양말 신기도 어렵고 잠잘 때 홑이불만 덮어도 발바닥에 심한 통증을 느낀댔다. 선배 말로는 바람만 불어도 아파서 붙여진 이름이 통풍이라고 했다. 통풍은 체내에 과다하게 쌓인 요산(尿酸) 찌꺼기가 주로 발 관절 마디마디에 들러붙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특히 체온이 낮은 엄지발가락에 심하게 나타나는데, 단백질의 일종인 요산 결정이 핏속 백혈구에 의해서 이물질로 인식되어 신경을 자극해서라고 한다. 술은 신장기능을 억제하고 간에서 만들어지는 요산 배출을 방해한다. 그래서 수분 섭취가 부족한 상태에서 음주는 적은 양으로도 통풍 발작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젊은 시절 술꾼이었던 선배는 요즘 맥주 한 모금에도 심한 발바닥 통증을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주말 연합뉴스는 7월 한 달이 ‘치맥의 계절’이라며 통풍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할 때라고 보도했다. 무더운 여름밤에 즐기는 바삭하게 튀긴 치킨 한 쪽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자칫 극심한 고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경고다. 건강보험평가원은 2024년 한 해 통풍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55만 3254명으로 2020년 대비 18%가 늘었다며, 특히 7-8월에 통풍 환자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같은 해 2월 11만 1977명에서 7월 13만 5994명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땀 배출이 많은 여름에는 체내에 수분이 부족해 지면서 혈중 요산 농도가 쉽게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통풍과 비슷하게 통증을 동반하는 족저근막염이라는 발병도 있다. 발굼치에서 발가락 끝까지 뻗어있는 고무줄 같은 인대(靭帶)인 발바닥의 근막(筋膜)에 염증이 생기면서 통증이 나타난다. 이 근막이 발바닥의 아치(arch)를 지탱하고 걷거나 운동할 때 체내로 흡수되는 충격을 완화한다. 나이를 먹어서 신장이 줄어드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근막이 느슨해져서 활 모양의 발의 아치가 주저앉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서서 일해서 발바닥에 지속적으로 압박이 가해지거나, 단단한 바닥에 오래 서 있는 직업을 가진 경우나, 체중이 과도하게 비만인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발병이다. 족저근막염에 의한 통증은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이때의 통증은 발바닥을 한참 동안 꾹꾹 눌러주면 점차로 사라진다.
여름철 통풍보다 더 무서운 발병도 있다. 근육이 위축되고 발 모양이 변형되는 사르코마리투스(SMT)라는 병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만 명의 환자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에서도 이 유전병을 앓고 있다. 이 난치병의 치료법을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발병원인과 치료법을 발견했다며, 5년 내에 치료제가 상용화될 것이라는 낭보가 있었다. 2024년 1월 27일 국내 의료계는 서울대 농생명공학부의 염수청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최병옥 교수의 공동연구팀이 이 희귀난치성 신경질환의 발병원인과 환자별 맞춤형 유전자 치료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사르코마리투스병은 1886년 최초로 이 병을 규명한 의사 3명의 이름에서 따온 신경질환으로 인구 10만 명당 19명에만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이 병의 주된 증상은 보행장애와 손과 발 모양이 변형되고 이 부분의 감각 소실이라고 한다. 이 병의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 있기는 있는데, 1회 투여 비용이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밖에 나갈 일이 생겨서 오랫동안 신지 않았던 새 구두를 꺼내 들었다. 몇 번 신었던 구두다. 홍콩에서 환승하여 늦게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는데 발이 많이 아팠다. 이튿날 서너 시간을 서서 강의했더니, 오는 승용차 안에서 벗어놓은 구두를 다시 신을 수 없을 만큼 발이 부워 올랐다. 양말을 벗었는데 양쪽 엄지발가락 윗마디에 크게 물집이 잡혔다. 남은 약속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현지 국제학교 졸업반인 손자가 제 신발 하나를 내주었다. 평생 처음으로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누가 늙은이의 발을 유심히 보겠나. 발이 편하니까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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