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대청호에 잠긴 수몰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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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대청호에 잠긴 수몰의 현장”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2.08.18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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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아래 소나무뜰과 대나무숲을 만난다”
보은의 명소길(61)- 금강의 발원을 따라 대청호로 가는 길
용곡리 입구에서 대청호로 흐르는 회인천.
용곡리 입구에서 대청호로 흐르는 회인천.

모든 길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길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역사의 중요한 이야기도 남긴다. 보은의 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연고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전설이나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길, 그냥 편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길, 자연과 함께 걷고 싶은 숲길, 그 모든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회인 송평리 마을입구의 둥구나무.
회인 송평리 마을입구의 둥구나무.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 호산 박문호 선생의 사당 풍림정사를 지나면 좌측으로 송평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송평리 마을의 배산을 이루면서 회인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국사봉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예전 주자를 모시는 사당인 주자서원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송평리에서 가장 으뜸되는 마을인 바디울(紫松)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부근의 지형이 ‘옥녀직금형’ 으로 붉은 소나무, 자송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마을 이름 역시 ‘소나무 뜰’ 송평이가 유래되고 있다. 송평리 마을 입구에는 지금도 둥구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 전통마을숲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송평리에 죽암리로 넘어가는 선바우재.
송평리에 죽암리로 넘어가는 선바우재.

대청호로 가려면 송평리에서 죽암리로 향하는 길에 선바우재를 넘어가게 된다. 이 선바우재를 넘으면 죽암리가 나오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동네 곳곳에 감나무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가을에 찾아오면 감나무의 붉은 감잎과 감이 달려있는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청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죽암리는 아랫마을, 윗마을로 형성되어 있어 아랫마을은 대청호의 호수와 만나고 윗마을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옛 마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곳 죽암리부터 1980년 대청호 담수로 인해 수몰된 지역으로 죽암리를 지나 신대리 마을에 위치해 있던 구만이들이 대청호 담수로 수몰되었다고 한다. 신대리를 시작으로 예전 마루들, 도랫말, 안짜리등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신대리 마을에서 용곡리로 향하려면 대청호를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용곡리가 나오는데 마을입구에 용의 머리처럼 생긴 용두와 마을 뒷산에서 두견새가 울었다고 하는 ‘우레실’ 이라 불리는 명곡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용곡리 입구에 용의 머리처럼 생긴 용두.
용곡리 입구에 용의 머리처럼 생긴 용두.

이 곳 용곡리에는 호점산성이 위치해 있다. 삼국시대의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2.7km정도로 회인면 용곡리, 회남면 거교리.남대문리의 경계에 있는 호점산(해발 280m)을 중심으로 봉우리와 계곡을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지형이 매우 험하고 가푸른 서남쪽 1.2km 구간은 흙으로 쌓은 토석축산성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회인현 남쪽 9리에 있는 석성으로 둘레가 858보에 높이 8척인데 험하고 가파르며 오래되어 무너진 곳이 많다고 하였고 성안에 우물이 3개 혹은 1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점산성은 노성산성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문자리는 6개소이며 남문이 위치한 곳은 지금도 회남면 남대문리라 불리고 있다.
이곳 호점산성이 있는 용곡리를 지나면 회남면 금곡리가 나온다. 이 곳 금곡리는 송평리 뒤편 배산을 이루었던 국사봉이 위치한 곳이다. 이 국사봉은 지금의 회인면과 회남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며 해발 552m로 정상에는 돌무더기가 있어 최고의 명당이라고 한다. 옛날 이 국사봉 정상 돌무더기가 있는 명당터에 묘를 만들면 자손이 크게 번성하고 귀하게 된다고는 하나 그 산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고 그 가뭄은 묘를 파내어 기우제를 지내야만 비가 온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명당에 산소를 쓰려고 하는 사람과 가뭄이 있을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려는 사람들과의 분쟁에서 유래된 듯 보였다.

금곡리 마을 입구에 위치한 추양정사.
금곡리 마을 입구에 위치한 추양정사.

이 곳 금곡리 마을 입구에는 추양정사(秋陽精舍)라는 사당이 위치해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64호 조선말기의 유학자인 호산 박문호(1846-1919)는 스승인 이상수(1820-1880)선생이 강학하던 옛 집터에 1911년에 추양정사를 건립해 이상수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그 후 이상수의 문하에서 배출된 양주승. 박용호. 박순행의 영정을 함게 봉안하고 봄과 가을에 제향지내고 있다. 본래 회남면 신추리에 있었으나 대청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1995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이 초상화 4점 모두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지만 크기. 재질. 양식에서 약간 다른 특징을 보여주어 조선 말기의 초상화에서 근대의 인물화로 변화하는 과정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 진본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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