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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송마을
[1377호] 2018년 05월 10일 (목)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webmaster@boeuni.com

 충북 보은군 장안면에 “장재리”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 중 몇몇은 일제때 살았다는 “표장재”라는 사람이 마을명의 연원일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 친일파 부호이거나 독립운동가일 수도 있지만 면사무소나 군청 어디에도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사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병풍송(屛風松)”이었다. 곧게 서 있는 것이 병풍이듯이 병풍송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를 말한다. 동물들이 사냥할 때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뒤에서 공격한다. 따라서 위험은 뒤쪽에 있기 때문에 뒤가 허전하면 왠지 사람의 마음도 불안해진다. 예부터 명당은 “배산임수”, 즉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막고 있고 앞으로는 물을 임하여 훤하게 트인 그런 장소가 중요한 조건이다. “병풍송”은 마을 뒷산이 온통 하늘로 쭉쭉뻗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 마을의 지명이며 여기에 조선왕조때 왕의 별궁인 행궁(行宮)이 있었음이 왕조실록 기록에서 확인된다.
 조선 제7대왕 세조10년(1464) 음력 2월 27일자에 왕이 “병풍송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이튿날인 28일자에 “ … 신시(申時, 오후 3시-5시)에 행궁(行宮)으로 돌아왔다.”는 실록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항간에는 정이품송이 곧 병풍송이라느니 당시의 속리사가 현재의 법주사가 아닐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전설을 빌려 말하더라도 세조가 “정이품송”이라는 벼슬을 주었다는 그 나무는 지금부터 550년 전에는 연이 걸릴 정도로 가지 많은 나지막한 소나무에 불과하였을 것이니 병풍송과의 연관성은 없다.
 호불군주 세조(조선 제7대왕)는 피부병 치료와 요양을 위하여 1464년 2월 17일에 온양온정행을 결정한다. “척박한 땅” 보은에 온 세조는 27일 이곳 병풍송 행궁에서 머물면서 떡 150동이를 들고 찾아온 복천사의 중 신미를 만난다. 신미는 부왕인 세종대왕의 병을 부처님께 기원하여 치유한 바 있어서 세종이 존경했고 문종 역시 부왕에 이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세조는 28일 복천사에 들러서 이후 3일간 법회를 열고 김수온을 불러 그 사실을 쓰게 하였는데(“福泉寺 御製後記”) 어쩐 일인지 실록에는 그 내용이 빠져있다. 그것은 세조 사후에 실록을 편찬할 때 유신들이 빼버린 때문이었다. 세조의 명을 받은 김수온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했겠는가? 유신들은 이전의 세종, 문종때도 그랬지만 왕이 석씨(석가)를 존중하고 중을 후대하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는데 세조가 절에서 3일간 법회를 열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29일(문의현)→3월 1일(온양행궁)→3월 18일(직산현)을 거처 3월 21일에 귀경하였다. 복천사 법회 3일을 숨기기 위해서 온양행궁에서 오래 머문 것으로 조정했을 것이다.
 세조가 귀경하자 모든 신하들, 왕비까지 왕의 온정행차를 칭송하는 글들을 길게 지어 바치고 왕은 그것을 듣게 된다. 그로부터 4년후 세조는 죽었고 병풍송 행궁도 더 이상 관심을 가지는 왕이 없어 허물어져 서서히 역사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옛 촌로들의 전언에 의하면 동네 앞산의 큰 바위(속칭 “북바위”)에 달린 북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동네앞 넓은 논에는 “담안뜰”이라는 이름과 함께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수많은 대형 주춧돌들이 널려 있었음은 이곳이 행궁터였음을 확인해준다. 경지정리 사업과 함께 지금은 그 흔적마저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왼쪽으로 새파란 호수를 끼고 울창한 병풍송들이 둘러선 배산에 기대어 남향하고 앉아있는 조용한 한옥마을이다. 어디선가 그 옛날 왕의 거가를 따르는 수천의 군사와 수백명의 신하, 왕비, 대군과 종친들, 수발나인, 지방관료들이 수백마리의 말울음 소리와 뒤섞여 법석대던 그 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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