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7】
삼국시대, 고려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한번 전쟁이 벌어졌던 하면 전쟁이 끝나야 돌아올 수 있었다. 조정에서 임명하는 무반(武班)을 중심으로 군수뇌부가 짜지면 상인(=常人)들은 개병제 또는 강제로 군인이 되었지만 무기의 허술함도 지적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회적인 제도 하에서 강제로 끌려가 군인이 된 남편이 죽은 줄로 모르고 겨울옷을 손질하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서릿발은 내리고 기러기떼 남쪽으로
금성의 포위망은 뚫리지는 않았구나
남편이 죽은 줄 모른 아내 겨울옷 다듬이질만.
交河霜落雁南飛 九月金城未解圍
교하상낙안남비 구월금성미해위
征婦不知郞已沒 夜深猶自도寒衣
정부불지랑이몰 야심유자도한의
군인 아내의 원망(征婦怨)으로 제목을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석주(石洲) 권필(權필:1569∼1612)로 정철의 문인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술과 시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일생을 살았다.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강화에 있을 때 명성을 듣고 몰려온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교하에 서리발 내리고, 기러기 떼 남으로 나는데, 구월의 금성은 포위망이 풀리지 않는구나. 군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겨울옷만 다듬이질 하네]라는 시상이다.
시인은 광해군의 비 류씨 동생 등 외척들의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宮柳詩)]를 지었다. 1612년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된 조수륜의 집을 수색하다가 이 시를 그가 지었음이 발각되어 친국(親鞠)받은 뒤 해남으로 유배의 명을 받는다.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다다랐을 때 행인들이 주는 동정술을 폭음하다가 다음날 운명을 달리 했던 걸쭉한 사람이다.
우리의 역사로 보아 1000번의 외침을 받았다는 발표를 보면 나라를 지킨 군인이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요즈음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위 시는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노정하고 있다.
서릿발이 내리고, 기러기 떼가 남으로 나는 늦가을인데도 포위망이 뚫리지 않는 전쟁터 금성에는 지금도 총성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여인은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추위에 입을 겨울옷을 다듬이질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정(表情)하고 있다. 이것이 조선 사회였고, 조선의 여심(女心)이었다.
【한자와 어구】
交河: 파주시에 있었던 지명. 霜落: 서리가 내리다. 雁南飛: 기러기가 남으로 날다. 九月: 구월. 金城: 금성. 샛별이라고도 함. 未解圍: 포위망이 풀리지 않다.
征婦: 군인의 아내. 不知: 알지 못하다. 郞已沒: 남편이 이미 죽다. 夜深: 밤 늦도록. 猶自도: 홀로 다듬이질하다. 寒衣: 겨울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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