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자 할머니의 일대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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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할머니의 일대기를 말한다.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0.02.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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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할머니는 무능한 남편을 만나 딸 쌍둥이까지 7남매에 자녀를 길러냈다.
온갖 고생을 다하고 서울에 큰 한약방을 전전하며 약을 써는 담당으로 출·퇴근 하며 7남매 뒷바라지를 하고 먹고 살기위해 열심히 살았다.
남편은 노숙자가 되어 가정을 떠났고 혈혈단신 여자의 몸으로 각박한 서울을 떠나 시골로 이주할 것을 결심했다.
강원도 출신이지만 충청도를 택했다. 연고지도 없는 충북 보은 종곡리로 결심하고 큰 아들은 서울에 남아 일을 하고 딸 쌍둥이와 막내를 데리고 종곡으로 와서 정착했다.
이 곳에 와서도 변변한 일거리 없이 남의 농사에 일거리가 생기면 일을 하러 나가면서 돈을 벌었다.
현재는 김교형 변호사가 여자 혼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사냐며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조건을 갖춰주어 제대로 자신의 농사를 짓고 살게되었다.
약초를 캐어 햇볕에 건조하여 가마솥에 고아서 팔기도 하고 침술을 알아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길가에는 꽃길을 조성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꽃향과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해서 꽃 할머니라는 별명도 있다.
타지에서 들어와서 살기 힘들법도 했지만 김춘자 할머니는 훌륭히 잘 살고있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던 중 소식도 모르는 남편이 병이 든 상태로 김춘자 할머니를 찾아왔다. 남편은 집에서 누워 집을 지키고 있었고, 김춘자 할머니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약을 팔러 나간 사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온 할머니는 큰 충격이었지만 이내 남편의 장례를 준비했다.
남편을 따뜻한 곳에 안장하고 싶어했던 할머니는 묘지를 잘 가꾸고 편안히 쉬라며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리고서 할머니는 종곡을 떠나신다고 했다. 사람들은 정들만 하니까 떠날거냐고 말렸지만 할머니는 장신에 조그만 집을 사서 이사를 갔다. 현재는 노인 대학에 다니면서 공예 만드는 것도 배우고, 종이학 만드는 것도 배우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할머니는 자기가 힘들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종이학을 예쁘게 만들어서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 쓸 거라고 하시면서 즐거워하신다.
할머니는 장신마을에서도 꽃을 많이 가꾸어 놓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생각하며 홀로 살아가신다. ‘아...인생은 아등바등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며 모두가 허망하다.’ 고 느끼며 이제는 한푼 두푼 돼지저금통에 불우이웃돕기를 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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