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결혼실패 딛고 행복 가꾸는 닭살부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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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결혼실패 딛고 행복 가꾸는 닭살부부이야기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10.01.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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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근, 왕춘홍 부부
▲ 눈밭에서 미소 지으며 재근 씨가 아내의 어깨를 큰 품으로 감싼다. 과거보다 현재, 미래가 있어 꿈을 갖는 행복한 부부다.
문재근(48), 왕춘홍(37)부부는 누가 보더라도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시쳇말로 ‘바퀴벌레 한 쌍’이니 ‘닭살부부’라고 주위에서 평할 정도다. 그 날도 그랬다. 대화도중 답변해야 할 특별한 질문이 나오면 서로 간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틈틈이 눈빛도 주고받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애정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 부부는 보은군 산외면 오대리에서 농사일을 하며 산다. 또한 두 사람 모두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은 재혼부부다. 이들 부부가 만나기 전 재근 씨는 1남1녀, 춘홍 씨는 1녀가 있었다. 이제는 모두 한 가족이 됐다.
재근 씨는 성격차이로 첫 결혼에 실패했다. 그 뒤로 여러 해를 어머니 김혜순(78)씨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혼자 농사지으며 살았다. 재혼을 하기위해 맞선을 몇 차례 보았으나 한국 여성들 대부분은 까다로운 조건들만 제시해 왔다.
춘홍 씨도 중국에서 남편 탓으로 인한 첫 결혼에 실패했다. 품안에는 딸 효주(15)가 있었다. 친정 부모에게 맡겨놓고 2005년 3월 한국에 왔다.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의한 시행착오였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법원을 쫓아다니며 법적인 문제를 2년여에 걸쳐 혼자 해결했다. 그동안 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일도 해왔다.

# 전제된 결혼 실패는 두 사람의 ‘만남’을 위한 필연이었다

재근 씨에게 청주에 있는 결혼중개업소에서 춘홍 씨와의 재혼을 주선했다. 맞선 보는 자리에서 재근 씨가 춘홍 씨에게 “어머니를 형이 모시지만 내가 모실 수도 있는데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춘홍 씨는 흔쾌히 “할 수 있다”고 답했다. 2007년 3월의 일이다. 그리고 그 해 10월 20일 보은군에서 주최하는 합동결혼식을 치렀다.
춘홍 씨는 알고 본즉 팔방미인이었다. 춘홍 씨의 고향은 중국 지린성(길림성) 옌벤조선족자치주 동쪽 끝에 있는 훈춘이다. 한족이 48%, 조선족 42% 정도가 거주한다. 남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나선시와 접하고, 동쪽은 러시아 연방의 연해지방과 국경을 접한다. 동해까지 15킬로로, 러시아의 뽀세트항과 철도(현재는 화물철도선만)로 연결된다. 1990년에 중국이 제창하여 유엔 개발 계획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두만강(도문강) 지역개발의 거점 도시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빛정책으로 한국 기업이 다수 진출했다. 고구려시대에는 책성부(柵城府)가 설치되어 동쪽 지배의 거점이 됐다. 8세기에 발해는 이 땅에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훈춘시 8연성)를 설치해, 동해를 넘어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 루트의 거점이었다.
춘홍 씨는 ‘간도 쌀’로 유명한 이곳에서 3년간 간호(의무)병으로 여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에는 약국, 개인택시, 게임오락실 등 약사, 기사, 사장을 했다.

# 길림성 훈춘에서 군 생활, 약국운영, 개인택시기사 등 다방면 활동

이들 부부는 농사일이 많다. 담배, 콩, 고추, 사과, 벼농사를 한다. 기계농이지만 사람의 일손이 필요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25단 1만평 정도의 담배농사의 경우, 어떤 때는 20여명의 일손이 필요하다. 문제는 일손의 먹을거리 준비다. 중국, 동남아 등 외국의 일손은 먹을거리를 도시락을 싸오는 등 스스로 해결하지만 유독 한국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새벽 5시 참을 내고, 오전 9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오후 2시에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5시에는 두 번째 참을 낸다. 이 정도 인원의 이 같은 식사와 참을 준비하려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춘홍 씨는 한국의 이런 낯선 문화로 인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엄청난 노동력이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었다. 다행스럽게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세월이 갈수록 적응도 되었고 한국문화도 이해가 갔다. 이제는 30명분의 식사와 참도 가뿐히 해결한다.
중국에 있을 때 점쟁이가 “나무 심고 가꾸는 일을 해야 돈을 번다”고 귀띔했었다. 춘홍 씨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래서 농사일이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자신이 아마도 농사에 매료된 것이라 생각한다.
규모만 보아서는 부농인 재근 씨는 그러나 아직 숨 돌릴 여유가 없다. 춘홍 씨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꾸미기 전 까지는 한국 농민이면 대부분이 겪어야하는 채무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가정이 안정되니 모든 것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았다. 부지런히 채무도 갚아나가고 하니 조만간 여유롭게 살날도 올 것이다.
# 농사일하며 자녀들에게 효도 받고, 지역행사에도 적극 참여

이들 부부의 자녀 정하(25), 남구(24) 씨는 서울에서 생활한다. 정하 씨는 서울 성모병원에서 간호사로 재직한다. 남구 씨는 지난해 10월 군에서 제대했다.
춘홍 씨말로는 정하 씨도 끔찍이 시골집을 걱정하지만 특히 남구 씨는 자신을 특별히 생각한다고 아들 칭찬일색이다.
올 해 보은중학교에 진학하는 효주는 앞으로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며칠 전 중국에 갔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중국 연길 공항에 외할아버지 왕정후(64), 외할머니 쟝슈방(61) 그리고 외삼촌이 마중을 나오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효주는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지난 2008년 6월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었다. 그리고 언어문제로 인해 학년을 낮추어 산외초교 5학년2학기에 편입 곧 두 번째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어학능력이 있어서인지 효주는 한국어를 제법 한다. 그래서 큰 대가 없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줄 안다. 무엇보다 이들 부부가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정하, 남구 남매가 효주를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훈춘에 비해 첩첩산중 보은군 산외면의 농촌생활이지만 시집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생활에 비해 다소 불편한 것은 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존경스런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 딸, 거기에 자신을 아껴주는 시모 등 시댁 식구들의 품이 마냥 좋은 그녀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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