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맞는 경인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행복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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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맞는 경인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행복을 꿈꾸다”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10.01.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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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현, 고설청(가오 기투에탄) 부부
▲ 경인년 새해를 맞는 1일 저녁 대현, 설청 부부의 보물 1호인 규철이를 안고 만면에 가득한 희망의 미소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60년 만에 돌아왔다는 흰 호랑이 해인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보은읍 장신리에서 단촐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경대현(54), 고설청(가오 기투에탄 ·32) 부부가 결혼 후, 4번 째 맞는 대망의 새해다. 등산을 즐기는 대현 씨는 새해 첫날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있다’는 전설의 산인 금적산을 다녀왔다. 설청 씨는 새해를 맞아 법주사에서 주최한 다문화가족 행사에 참석해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선물도 받아왔다.
이들 부부에게는 또 올 한해 이루어져야 할 소망과 계획이 있다. 부모님과 외아들 규철(3)이의 건강기원, 설청 씨의 한국인 귀화, 가정의 화목은 부부의 공통 희망사항이다. 그리고 대현 씨가 바라는 ‘아내의 체중감량’, 설청 씨의 ‘베트남 친정부모 한국나들이’는 개별적으로 염원하는 기대 사안들이다.
설청 씨의 고향은 베트남 북중부 지역 해안에 위치한 응에안 성(省)의 빈(Vinh)이다. 응에안은 베트남의 국부로 칭송받는 호치민(胡志明)이 가난한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탄생지다. 빈은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30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기차로는 5시간 거리다. 빈은 특히 바다가 없는 인접 내륙국 라오스의 해산물 공급지 역할을 한다. 육로를 통해 국제버스와 화물이 오가는 베트남-라오스 간 국경무역 중심지이기도 하다.

# 공직출신 가정에서 성장한 설청씨 다시 공무원 남편 내조

설청 씨가 친정부모의 ‘한국 나들이’를 끈질기게 소망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아버지 가오 타인반(63), 어머니 응웬티 반(60) 씨 등 그녀의 부모는 호치민과 고향은 같았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민족상잔 베트남 전쟁 당시 두 사람은 북부출신이었지만 자유 베트남의 군인이었다. 그런 운명 덕에 이들에게는 평생 가슴 아파야 할 자녀가 태어났다. 설청 씨에게는 배건(29), 디안용(28)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둘째 동생은 현재 컴퓨터를 전공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첫째 동생은 29년 동안 집안에서만 살고 있다. 말도 어눌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밥도 누군가가 먹여주어야만 한다. 바로 전쟁의 산물인 고엽제 후유증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코드명 ‘에이전트 오렌지’. 베트남 전쟁동안 미국은 게릴라 소탕을 위해 수백만 갤런의 고엽제를 정글지역에 살포했다. 고엽제에 들어있던 다이옥신이 아군, 적군 상관없이 직접 접촉자는 물론 유전인자를 통해 2세에게 까지 각종 암과 기형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했던 것이다. 설청 씨는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친정부모는 이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지금껏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공직생활을 정년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설청 씨는 친정부모를 한국에 초청, 여행도 시켜주고 자신의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 이다.

# ‘가을연가’ 등 한류영화 통해 애정 느껴 국제결혼에 골인

요즘은 세상이 좋아 한국의 사는 모습을 친정부모에게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바로 인터넷 화상채팅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의 거리를 한 순간에 연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설청 씨는 다문화가족들 사이에서 중국어, 베트남어, 한국어 등 3개 국어를 잘하는 여성으로 통한다. 한국에 시집오기 전 타이완(대만)에서 3년 정도 생활도 했다. 타이완 노인병원에서 간병인으로 근무했던 설청씨는 그래서 노인들의 수발방법은 물론 심리상태를 잘 안다. 중국어도 이때 배운 것이다.
시아버지 경연수(81), 시어머니 이철우(80) 씨는 인근에서 따로 생활한다. 아직은 거동이 불편하지 않다며 두 분만의 독립생활을 즐긴다. 시아버지는 보은군 노인회장으로 왕성한 노익장을 과시하며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시부모의 열린 사고 덕에 당연히 집안 내에 다문화여성인 설청 씨를 포용한 것이다.
설청 씨는 타이완에 있을 때 이른바 ‘한류’를 경험했다. 연속극인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통해 사랑하는 여인에게 모든 걸 희생할 줄 아는 남자주인공들을 보았다. 한국의 눈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막연히 한국을 동경하게 됐다. 한국에서 온 남자 대현 씨를 만났다. 나이차는 있었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2006년 9월 17일 한국에 입국했다. 대현, 설청 부부의 ‘사랑의 연가’가 시작됐다.

# 아내의 체중감량을 소망하는 행복한 깨 부부의 사랑연가

신혼 초, 설청 씨의 몸은 날씬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유산이 되곤 했다. 한약을 복용한 뒤 지금의 규철을 낳았다. 약발이 너무 잘 받은 탓인지 그 후로 설청씨의 몸은 불기 시작했다. 한 때는 85킬로그램까지 나간 적도 있다. 오죽하면 남편의 새해 소망이 ‘아내의 체중감량’일까.
그런 설청 씨는 자가운전자다. 남편 대현 씨에게 운전교습을 받아 2007년 단번에 필기와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러나 초보운전 당시,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항시 사이드 브레이크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 있었다. 같은 경우 어느 부부나 겪는 과정이지만 이들 부부는 유독 큰 마찰 없이 과정을 마스터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공무원인 대현 씨는 등산애호가다. 규철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부부가 등산을 함께 했다. 그러나 경남 통영군 남해안의 사랑도에 있는 지리산을 끝으로 설청 씨는 등산을 그만 두었다. 5-6시간 씩 걷는것에 설청 씨가 더 이상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연말에는 송년회를 겸해 가족끼리 제주도를 다녀왔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바다가 없는 내륙도 충북 보은군으로 시집 온 아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이었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설청 씨다.
이제 곧 설청 씨는 한국인으로 귀화한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게 되는 것이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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