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일요일 단풍관광을 위한 관광객으로 만원을 이뤘다. 충북 알프스로 알려진 구병산을 찾은 단풍 관광객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단풍을 맞이하러 온 차량들로 공원 입구는 북새통을 이루고 등산로마다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지체현상을 보일 정도였다. 속리산 사무소에서는 한적하게 단풍감상을 하기 위해서 절정기를 피할 것을 권고했으나 절정기를 피해 단풍구경을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쨌든 최고조에 달한 단풍을 보기 위해서는 절정기에 갈 수밖에 없다.
또 속리산, 구병산이 아닌 단풍 명소를 찾아 행락을 떠나더라도 넘치는 인파와 차량의 홍수에 뒤섞여 자칫 짜증만 나기 쉽다.
그럴 때 해답은 가벼운 소풍이다. 숙소 예약도 필요없고 행선지를 물색하느라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다.
우리지역에는 단풍명소가 주변에 참 많다. 곳곳마다 가을 냄새 짙게 풍기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가을의 속도를 알고 있는가. 단풍은 보통 정상에서 시작해 산 아래로 하루 약 40m씩 내려가며 물들고,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하루에 25㎞가량 기척도 없이 이동한다고 한다.
찐 고구마나 떡, 점심 도시락, 국화차나 커피 등을 준비해 이번 주말 올 가을이 가기 전 단풍구경의 호사를 누려보자.
보은정보고 은행나무 길
단풍나무와 함께 단풍의 백미는 바로 은행나무 일 것이다. 우리지역 은행나무 단풍의 진수는 바로 보은정보고등학교가 아닐까 한다.
학교 진입로는 물론이고 울안까지 들어차 있는 노란 은행나무가 그림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특히 학교를 들어서면서 보여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은행나무 단풍의 백미다.
세력을 다한 은행잎들이 비처럼 쏟아져 길 위에 그대로 쌓이고 이렇게 쌓여진 은행나무 잎이 이불을 만들고 있다. 밟으면 푹신푹신 할 것 같다. 가을빛 좋은 날은 종일 그 나무 아래서 앉아서 떨어지는 낙엽을 하나 둘 세고 싶을 정도다.
맑은 가을 햇살은 노란 은행나무 빛깔을 더없이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단풍과 함께 읍내 전경을 보는 ‘눈 맛’도 좋다. 저녁 무렵 삼년산성에 올라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면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경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수리티와 피반령
그럼 이번에는 보은에서 회인면으로 연결되는 국도를 이용해보자 동정저수지 쉼터에서 한 숨 돌리며 저수지에 비친 갈 빛 단풍을 감상해보자.
더없이 깊어 보이는 물빛 속에서 쓸쓸한 가을의 서정가지 느낄 수 있다.
수리티와 피반령으로 가는 내내 가을색으로 갈아입은 활엽수들이 펼쳐놓은 담백한 단풍을 만난다.
벌써 수리티 정상에서 차정리 쪽으로는 단풍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놓고 있어 아시움을 주지만 그래도 길옆에서 손을 흔드는 억새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한없이 가녀린 억새들이 갈바람에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고 구절초와 쑥부쟁이 등 가을꽃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수리티 정상에서는 차도 마시고 요기도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보은군이 설치해놓은 산불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설치된 곳까지 올라가보자. 만약 해질녘시간이라면 산과 산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을 감상할 수도 있다.
주위의 파란 하늘을 단풍보다 더 곱게 붉은 빛깔로 물들이는 환상적인 저녁노을이 장관이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왔던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면 그 황홀함을 한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문티재와 말티재
아직 낮은 산은 이제 막 가을 옷을 갈아입고 있어 감흥이 다소 얕을 수 있으나 사실 단풍은 산에 들어서 자세히 보는 것보다 오히려 ‘길에서 보는 경치’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단풍은 건조하게 바스러지는 것보다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었을 때 더 아름답다. 붉고 노란 단풍 색감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물이다.
가뭄으로 물기 없이 말라 떨어진 낙엽에 불과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잦은 비로 인해 단풍이 더 없이 고운 빛깔을 내고 있다.
어찌 단풍이 이리 예쁠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됐다. 말티고개 정상에서 둘리공원 방향으로 펼쳐진 단풍 또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속리산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단풍나무 길도 달릴 맛이 난다. 갈목재 아래 갈목터널입구까지의 단풍도 원색적이지 않지만 은은한 향이 느껴질 것처럼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단풍에 유혹 당한 눈은 잠시 푸른 물결 넘실대는 삼가저수지 물빛으로 휴식을 주자. 그런데 삼가저수지 건너편 구병산 그림자가 빠져 붉은 물을 저수지로 쏟아내며 허우적댄다. 저걸 건져낼 수도 없으니 우린 구경이나 할 수밖에.
다시 장안면을 지나면서 만날 수 있는 99칸 한옥의 고즈넉함에 마음을 뺏겨 보자. 고풍스런 기와, 돌담, 장독, 감나무, 갈꽃 그리고 목젖으로 넘어가는 우리차 맞보기…. 고택이 맞이한 가을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를 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여유롭게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면 수한 문티재까지 가는 동안 차량의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시간에 쫓기지 않게 나들이에 나선 길인데 가속 페달을 밟으면 여유가 없어진다. 가면서 내내 주변이 온통 갈 빛이니 이것도 감상을 해야 하지 않는가.
문티재 정상 휴게소에서는 좀 더 여유 갖고 단풍 감상을 하는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온 단풍 덕분에 산행을 하지 않고도 단풍이 부리는 색의 조화에 빠져들 수 있지만 휴게소 앞 덕대산에 올라보자.
휴게소 앞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산 정상에서 만끽하는 가을 맛은 황홀하다. 보은군과 옥천군의 경계인데 갈색으로 붓질해 놓은 단풍이 황홀하다 싶어 보은 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주 멀리 속리산이 보인다. 옥천군 쪽으로 펼쳐진 대청호도 눈안에 들어온다.
한 땀 한 땀 발걸음에 가을을 새길 수 있다.
이곳말고도 선명한 가을 색을 발하고 있는 동네 느티나무도 아름답고 탄부 임한리 앞 국도에는 4㎞가 넘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랑 물감을 칠하고 있다. 찾아보니 우리지역 모두가 단풍 명소다. 깊어가는 가을 풍경에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절경이라고 손꼽혀 사람들로 들끓는 단풍명소에서 하루를 보내도 좋겠지만 사람들이 미처 그 아름다움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친 우리지역 곳곳을 찾아가는 맛도 각별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 그 어느 해보다 고운 단풍 색을 발하고 있는 가을 풍경 속으로 푹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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