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동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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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동 서강대학교 교수
  • 보은신문
  • 승인 1990.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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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산하로 향하는 마음
‘수구초심(首邱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는 죽을 때 반드시 그가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다. 이런 귀소성(歸巢性)은 여우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개미도 그렇도 연어도 마찬가지다. 어지 이뿐이랴. 그것은 수다한 동물들이 공유하는 본능적 속성이기도 하다. 내가 고향을 떠나 객지(客地)로 떠돌며 산지도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친구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더러 있다. 이런걸 곰곰이 되돌려 보니 내가 외지(外地)로 떠돌았던 세월들도 가당찮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향을 떠난 뒤에도 나는 가끔 고향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바람처럼 스쳐왔을 뿐이며, 고향의 속사정을 한번도 챙겨보지 못했다. 내가 늘상 고향과 옛 친구들에게 미안해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음에는 꼭 고향친구들을 만나고 와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때가 되면 뭣엔가 쫓기듯이 서둘러 올라오곤 했다. 사람이 산다는게 다 뭣인지 내가 걸어온 발걸음들이 너무나 짜증스러울 뿐이다.

나는 최근 고향에 들를때마다 쓸쓸함을 더하여 때로는 적막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건 무엇때문일까. 고향의 산하(山河)는 옛 그대론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게 아닌가. 낯익은 훨씬 더 많아졌다. 새세대들이 터를 잡으면서 나와 친숙했던 세대들은 한쪽으로 밀려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 때문에 고향을 떠나 살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나도 모른다. 그저 남들이 도시로 나가 살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도시로 나왔다는 기억밖에는 없다.

부뒤와 공명을 찾아 나왔다면 그걸 얼마나 성취했는가. 생각하면 공허하기 이를데 없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시달리며 살아온 주름살밖에 남은게 없다. 깊은 밤 잠못 이루는 시간이면, 나는 가끔 두고온 고향을 생각한다. 봄이 되면 꽃이 피어 활활 불타오르는 고향산하와 그곳에서 함께 자란 옛 친구들을…. 그러나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고, 도시생활에서 규격화된 내 삶이 그걸 용서치 않는다. 어머니의 품속과 같이 따스한 고향, 그곳에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더 그리워지는 것인지 모른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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