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40억5000만원의 중소기업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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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40억5000만원의 중소기업으로 성장
  • 보은신문
  • 승인 2001.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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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과 좌절
마로낙우회는 84년 20여 농가로 조직 되었다. 정부의 낙농가 육성 시책에 따라 많은 농가들이 대출을 받아 낙농을 시작하여 회원이 60여명으로 양적 발전을 하였다. 80년대 후반 소 값이 하락하기 시작하여 구입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소값파동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대출금의 이자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자진해서 축사를 폐쇄하고 낙농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착유우의 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개량축사를 신축하여 사육우의 관리를 과학적으로 하고 회원들간에 일치단결하여 낙농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였다. 그 결과 소 값파동을 거치면서도 새로운 낙농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 낙농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소값파동 그 뒤엔 기쁨이 있었다 .
소 값파동의 여파를 슬기롭게 이겨낸 회원들은 90년 낙우회 영농법인 사무실을 개소하고, 납유처를 일원화함은 물론 약품 및 기자재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생산원가 절감에 성공하였다. 또한 6400만원의 공동 자금을 조성, 폐사된 젖소에 대한 회원공동보상제도를 실시하는가하면 매분기 전문기술교육 및 선진지 견학을 통하여 발전된 낙농 기술 습득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안정적인 납유처를 확보하였고, 옥수수, 호밀등 조사료 생산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37ha에 이르는 조사료 기계화단지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내일을 준비하다
낙우회회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자체적으로 종합배합사료 생산을 계획하고 1억8000천만원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고려대 손용석 교수와 기술센터의 기술지도로 97년 하루 3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T.M.R배합소를 준공하여 생산에 들어갔다. 이로인해 납유처에서 원하는 양질의 사료를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하였고, 수입사료원료 확보를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98년 IMF로 현금거래에 의해서만 사료를 구입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단미사료(원료)를 구입하여 직접 TMR을 제조 이용함으로써 사료 구입이 용이하였으며 일반 배합 사료가격이 50%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하게 사료를 이용하여 충격을 크게 완화 하였다.

총소득 연간 40억4400만원
현재 20명의 회원이 1278두(10말현재)의 사육두를 가지고 있으며, 연간 7104톤의 생유를 생산, 총 매출액이 40억4400만원에 이르고 있고, 호당평균 9000만원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는 호당 평균 63.9두로 전국 낙농 평균 39.8두에 비해 크게 앞서 전업화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원들간에 일치단결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적인 개발과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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