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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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의회
  • 보은신문
  • 승인 199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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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군민 면의원들에게서 듣는다
군내 총 1백27명의 면의원 선출 당시 시대 상황과 정치·사회 분위기에 휘말려 제역할 다 못했다는 평
우리나라의 지방 행정사를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사 입장에서 본다면 갑오경장 이후의1백년사라 할 수 있으며 그 이전 반만년의 지방행정사는 전통적인 우리교유의 지방자치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독립하면서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헌법을 수립한 이후 민주적 지방 자치를 법률로 정하고 제도적 보장을 확고히 하였으며 지방자치 행정의 기본방행을 제시했다. 헌법에 기초, 1949년 7월4일에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1952년 4월25일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자치 의회 의원선거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초대 의원선거가 실시된 후 10년동안 5차에 걸친 법개정, 정권교체 등 파란과 우역곡절을 거듭해오던 지방자치제도는 5·16군사혁명으로 전국의 지방의회가 해산됨으로써 맥이 끊겼다. 6·25동란 중에 초대 의원선거가 실시된 배경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당시 지지기반을 상실한 자유당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또다시 정권을 잡기 위해 지지할 면중적 세력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국 당시의 지방자치는 정치적 목적에 밀려 그 역할과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민주적 토대와 능력, 자질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추진되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고 하겠다.

보은에서도 1952년 4월25일 전국에서 실시된 면의회 의원선거가 진행되었다. 총 1백27명(보은 14, 내속 10, 외속 10, 마로 12, 탄부 12, 삼승 12, 수한 11, 회남11, 회북 12, 내북 12, 산외 11명)의 면의원이 선출되었고 그해 5월1일 의회를 구성, 지방자치의 원년을 맞이하였다. 초대 면의원에 당서된 이들은 대부분 마을 이장이나 마을의 원로 들이었다. 당시 초대 면의원 이었던 노인구씨(78. 마로 원정2)는 "선거유세나 공청회도 없었고 당 소속도 나중에야 만들었졌지요. 다만 후보자로 나왔다고 마을 주민에게 인사하는 것이 고작이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라 주민의 관심도 부족했고 의원 자신들도 자질을 갖추지 못한데다, 전쟁중이라 치안 경비와 구호대책 문제 등이 의원들에게 가장 큰 논의대상이었고 또한 자체예산이 부족해 교부금운영을 의결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회의실은 보은면(1973년 7월1일 보은읍으로 개칭)에만 한 곳이 있었고, 타면은 면사무소에서 회의를 진행했으며 면사무소의 서무주임이 의회 간사를 맡았다. 교부금이 고작이었기에 의회에서의 부결이란 거의 없었다. 다만 구호품을 주민이 조금이라도 더 받도록하고, 마을에 버스 통행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 면의원의 역할이었다. 특이할만한 것은 전쟁포화로 인해 학교 건물이 부서져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자 면의원들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의회내에 교육구를 분리 운영하면서 학교개건과 중축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각 면 교육위원을 통해 군에서 협의하고 교육감 선출도 이에 맏게 대처하였으며, 교과서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초대의회와는 달리 2∼3대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주민들간, 또는 의원들간에 마찰이 생겼으며, 불균형적인 지원, 개발이 눈에 띄면서 마을간의 위화감과 성씨간의 불협화음 등이 생겨난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1960년 4·19혁명을 거치면서 면장 직선제가 되자, 후보들이 각 마을을 방문하고 쥔들에게 주연을 베푸는 등의 형태로까지 나타났다. 집행기관과의 마찰도 생겨나 탄부면의회는 눈에 뛸 정도로 알력과 지역 이기주의가 심했다. 또한 사망이나 면장당선, 공무원 입문 등으로 이탈자가 많아 회의진행에 자주 제동이 걸리곤 했다.

"보청천 제방부지 확보, 농수로와 보 건설, 삼가저수지 건설을 위한 외속, 마로, 탄부면의회의 단합된 노력 등 당시 이루어낸 일들도 많이 있다"고 말하는 구홍서씨(74. 마로 관기)는 "그래도 그 당신는 면의회라는 민의수렴이 훨씬 수월했다"면서 "지방자치 실현은 필수 불가결한 것인 만큼 지금의 군의회 의원들도 민의수렴과 현안사업 파악 등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면의원들은 지방자치의 씨앗을 뿌리면서 보다 나은 민주적 성장을 이루고자 노력했지만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았던 탓에 정치인들에게 이용을 당하는 오류도 많았었다.

지방자치에 대한 염원이 고조되고 있는 현시대는 보다 빠른 지방자치의 완전 실현을 요구하고 있으며 집행기관과의 대립보다는 상호협력을 통한 지역발전 노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더불어 의원 자질향상을 통해 민의를 이끈다면 과거의 오류가 결코 영원한 과오로만 치부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과거민의 대변다들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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