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을 날」에서 릴케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주여, 시간이 됐습니다. 여름은 대단히 위대했습니다./ … / 지금 외로운 이는, … /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지난 여름엔 지구촌 곳곳에 극한 폭염과 폭우, 열대야 등, 그야말로 자연의 원대함과 인간의 왜소함이 극명하게 드러난 계절이었다. 그러나 햇빛과 물은 생명의 원천으로 무성함과 가을의 결실을 약속하는 것이다.
가을은 한가위 수확의 계절이자, 책을 뒤적이는 독서의 계절이다. 혹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잠 못 이루며 그리운 이에게 긴 편지를 쓰는 고독한 영혼들도 있으리라.
한편으론, 단풍 가랑잎 쇠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노래하는,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기도 한가 보다. ‘가을에 떠난 사람’ ‘낙엽이 흩날리던 그 길 끝에서 그대의 뒷모습이 멀어졌죠’ 오솔길을 낙엽을 밟으며 걷는 모습은 낭만 그 자체다. 이별의 슬픔은 인지상정이며, 이 세상에서 만났다 헤어짐은 필연이다. 잠시 여행을 왔다가 다시 저 세상으로 조금 더 긴 여행을 떠난다 생각하자. 언제 떠나도 좋을 정도로 짐을 가볍게 챙겨두고…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고...
그러나, 각자 주어진(타고난) 소명은 감당해야 하지 않겠나. 개미나 꿀벌도 나날이 일을 하고 겨울을 채비한다. ‘열정(passion)’에는 ‘고통’의 뜻도 있단다.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허무한 인생이라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다. 남긴다기보다 걸어간 발자취가 남는 거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숨도 쉬고 생각도 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 자취도 남는다.
‘왜 사냐 건, 웃지요’ 라고 미소로 답을 대신한 ‘소이부답(笑而不答)’의 경지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살다 가느냐는 건 좀 생각해볼 과제다. 각자 나름대로 생각도 있고 누구나 ‘다 계획이 있다.’
그런데, 어떤 계획이냐가 중요하고, 그 계획대로 인생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사는 세상, 말 같지 않은 말들이 난무하고, 세상은 저리도 거대하여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돌아가며, 우주는 광막하고 블랙홀도 있다는데…
유한한 인생,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다 이룰 수는 없는 일, 어디쯤에선가 잠깐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길, 걸어갈 길을 바라보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특정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도 기도를 한다고 한다. 종교가 없는 이들이 왜 기도를 하는가. 우리나라 옛이야기에 곧잘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새벽에 소복을 한 여인이 남편이나 자식의 입신출세나 안위를 위해 장독대 위 하얀 대접에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우주 만물의 자연발생설이든 창조론이든 간에, 하늘과 땅을 지키는 신에게 기원을 담아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바랐을 것이다.
만유인력이나 진화론, 빅뱅 우주팽창이론, 양자물리학, 생명과학, AI인공지능 등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구촌 신앙인의 인구 비율은 줄지 않는 것 같다.
김현승은,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라고, 「가을의 기도」를 한다.
인생의 가을이 되면 원숙함과 겸허함이 저절로 배어나는 모국어의 시를 읊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외로울 필요가 있다는 뜻인가.
하루하루 먹을 식량과 입을 것과 잠들 거처를 주심에 감사하자.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이 묵상하며 침잠(沈潛)의 계절 겨울을 준비할 때다.
「회개하는 가을」
초가을 새벽에 핀/ 코스모스처럼 청초하게/ 기도하게 하소서
늦가을 국화 향기 퍼지듯/ 절절하게 가슴에 저미는/ 기도하게 하소서
단풍이 붉게 타오르듯/ 단심(丹心) 어린/ 참회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낙엽 지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욕망에 눈멀어/ 세상 속의 허망한 것들을 좇은/ 지난 세월을 돌이키게 하소서
가을에는 회개(悔改)하게 하소서
그리고,
가을엔 열매 맺게 하소서.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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