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도 11만4천여명에서 현재 약4만9천5백명으로 감소
급격한 공업발달이 가져온 것은 농업의 상대적인 퇴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도 될 만큼 농촌은 경제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하나 둘씩 이사짐을 싸서 도시로 향해 보금자리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멈출 줄 모르고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더욱이 젊은 층의 이동으로 사실상 농촌인구라고 해봐야 생산능력이 있는 경제인구보다는 직접 생산현장에 뛰어들 수 없는 노령인구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노령인구는 사망률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인 만큼 현 상황에서 농촌인구의 감소는 이농으로 인한 감소에 더하여 노인인구의 사망으로 인한 자연감소 등으로 그 감소 추세는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또한 지금 더 이상 이농현상이 없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사회적인 유입이 없는 한 인구는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인구구조를 갖게되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한 지역에 있어서 인구감소의 원인은, 첫째 가족계획으로 인한 감소, 둘째 직업을 구하기 위한 사회적인 이동, 셋째 자녀교육을 위한 이동, 넷째 사망으로 인한 자연감소의 4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위의 4가지 요인에 비춰볼 때 우리군의 인구감소를 부르는 주요 원인은 직업과 교육문제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공업에 비해 농업의 생산성이 크게 뒤떨어지면서, 군내 인구가 공장이 많은 도시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동한 것은 70년대 부터이고, 자녀교육을 위해 이주한 것은 80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86년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한 단면으로 직장이 보은에 있으면서도 자녀교육을 위해 도시로 이사를 나가서 출퇴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이 급격한 인구감소를 유발시켜 지난 91년 11월1일 0시를 기준으로 우리 군의 총 인구는 1만4천6백15가구에 겨우 4만9천4백94명밖에 안된다. 이는 90년도의 1만4천9백12가구 5만2천2백80명인 것과 비교할 때 불과 1년사이에 약 3천명이 감소한 수치이다.
학생인구 현황
위에서 인구감소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 것이 자녀교육 문제라는 점에 비춰볼 때 86년 학생인구가 1만8천1백25명으로 전체인구의 26.59%를 차지했던 것이 점점 감소하여 87년 1만7천2백96명, 89년 1만4천9백97명, 91년 1만2천6백16명으로 매년 1천명 이상씩이 감소, 지난해 총 인구 감소숫자인 3천명중 30%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인구 이동이 특히 심한 국민학교는 86년에 7천14명, 91년 5천7백47명으로 매년 4백명에서 7백명 정도가 전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입·전출자 비교
더구나 인구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인 전입자도 전출자를 능가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어 군내 인구는 계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왜냐하면 공업도시가 아닌 전형적인 농촌이고 또한 도시인구의 농촌분산을 시도하는 농공단지 또한 규모가 작아 큰 인구증가를 가져올 만한 조건을 지니지 못한 때문이다. 최근 5년 동안 주민등록에 의한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85년 전입이 6천7백93면인데 반해 전출은 9천8백50명, 87년에는 5천9백93명이 전입했으나 이 숫자의 배에 가까운 1만16명이 전출했고 90년에는 4천6백19명이 들어왔던 것에 비해 8천2백80명이 외지로 나가는 등 전입자에 비해 전출자의 수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음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출생률·사망률 비교
이외에도 출생률의 증가보다는 사망률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인구통계에 의하면 지난 85년의 경우 총 출생자는 1천3백77명으로, 사망자 8백87명보다 4백90명이나 더많아 인구의 자연증가가 발생된 것을 볼 수 있으나 89년에는 출생자가 8백26명으로 사망자 8백5명보다 겨우 21명만이 앞섰을 뿐이다. 이와같이 출생률이 대폭으로 감소한 반면 사망률은 대폭으로 증가, 90년에는 출생자가 총 5백98명인 반면 사망자는 6백40명으로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앞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망자의 증가는, 노령인구가 대다수이고 인구의 자연증가를 불러올 수 있는 젊은 인구가 거의 없는 현재의 실정으로 볼 때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추이
시기별로 군내 총 인구의 변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구조사를 실시해 통계치를 기록으로 남겼던 지난 54년부터 알아본다. 통계연보에 의하면 처음으로 보은군의 인구가 10만명이 넘은 시기는 60년이다. 인구조사의 근거를 처음으로 남겼던 54년에는 총 1만6천5백3가구에 9만2천3백86명이었으나 60년에는 1만6천7백59가구에 10만1천4백41명이었고 인구조사를 실시해 자료로 남긴 이후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는 65년으로서 1만7천6백29가구에 11만3천8백25명이었다. 이것은 3, 4대가 한가정에서 살던 대가족 사회에서 결혼으로 인한 분가로 핵가족을 이뤄 가구수도 늘었을 뿐만 아니라 인구이동 또한 외지로의 이주가 아니라 마을에서 마을로,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이동하는 등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때는 가족계획이 실시되지 않아 한가정에 자녀가 4∼5명씩 되는 것은 보통인 시대였다. 그러나 가족계획이 정부주도로 강력하게 추진되고 공업화정책으로 인해 인구이동이 시작되면서 조국 근대화를 부르짖던 74년에는 1만7천96가구에서 인구 10만1천2백54명을 기록, 간신히 10만명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75년에는 1만7천6백26가구에 9만7천6백79명으로 인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인구 최대치를 기록했던 65년과 비교할 때 10년이 지나는 동안 인구는 현재의 보은읍 거주인구와 맞먹는 1만6천1백46명이 줄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핵가족을 이루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가구수는 오히려 74년보다 5백30가구가 증가했고 65년보다도 가구수는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79년에는 1만6천6백40가구에 총 인구 8만5천1백71명으로 78년의 9만2백79명보다 5천명이 감소했다. 81년에는 1만6천4백21가구에서 7만9천4백74명으로 매년2천여명씩 감소해 85년에는 6만8천1백61명을 기록, 인구가 빠른 속도로 급격히 감소해 최고치를 이루던 65년에 비할 때 20년이 지난 85년에는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4년뒤인 89년에는 5만6천3백78명, 90년에는 1만4천9백12가구에 5만2천2백80명이었고 지난해 11월의 통계에 의하면 인구는 약 3천명 정도가 감소, 1만4천6백12가구에 4만9천4백94명으로 나타나 지난 54년부터 살펴본 인구추이는 매년 2∼4천여명씩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읍면별 인구 및 가구
91년 통계 연보와 92년 읍면정 보고 자료에 기재된 것을 근거로 90년 보은읍은 총 5천1백80가구에 남자 9천5백49명 여자 9천6백5명으로 1만9천1백54명이었으나 91년에는 5천70가구에 총 1만8천6백64명 중 남자 9천2백21명 여자 9천4백43명으로 4백90명 감소. 내속리면은 90년 1천1백2가구에 남자 2천55명 여자 1천9백56명 총 4천11명이었으나 91년에는 1천51가구에 남자 1천8백59명 여자 1천8백23명으로 3천6백82명으로 3백29명 감소. 외속리면은 90년 6백1가구에 남자 1천84명 여자 1천28명으로 2천1백12명이었으나 91년에는 6백21가구에 남자 1천2백10명 여자 1천34명 총 2천3백44명으로 90년보다 2백32명이 증가. 마로면 90년 1천5백가구에 남자 2천4백84명 여자 2천5백16명 총 5천명으로 91년까지 변동이 없었다.
탄부면은 90년 1천1백2가구에 남자 1천8백36명 여자 1천8백88명으로 3천7백24명이었으나 91년에는 1천63가구에 남자 1천6백75명 여자 1천7백66명 총 3천4백41명으로 2백83명이 감소. 삼승면은 90년 1천3백11가구에 남자 2천2백51명 여자 2천3백80명으로 4천6백31명이었으나 91년에는 1천2백65가구에 남자 2천72명 여자 2천2백34명 총 4천3백6명으로 3백25명감소. 수한면은 90년 8백89가구에 남자 1천4백91명, 여자1천4백46명으로 2천9백37명이었으나 91년에는 9백19가구에 남자 1천6백89명 여자 1천5백54명 총 3천2백43명으로 3백6명이 증가. 회남면은 90년 4백16가구에 남자 6백52명 여자 6백10명으로 총 1천2백62명이었으나 91년에는 3백89가구에 남자 5백97명 여자 5백96명 총 1천1백93명으로 69명 감소.
회북면은 90년 1천79가구에 남자 1천7백58명 여자 1천7백21명으로 3천4백79명이었으나 91년에는 1천20가구에 남자 1천5백67명 여자 1천6백22명 총 3천1백89명으로 2백90명 감소. 내북면은 90년 8백44가구에 남자 1천4백94명, 여자 1천4백39명으로 2천9백33명이었으나 91년에는 8백14가구에 남자 1천3백62명 여자 1천3백61명 총 2천7백23명으로 2백10명 감소. 산외면은 90년 8백83가구에 남자 1천5백47명, 여자 1천4백90명으로 총 3천37명이었으나 91년에는 8백83가구에 남자 1천6백82명 여자 1천6백62명 총 3천3백44명으로 3백7명이 증가.
위에서도 나타났듯이 사실상 군내의 전체인구는 감소추세에 있으며 흔히 타지역은 감소해도 보은읍은 증가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뒤집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1읍 10개면인 우리 군이이와 같은 추세로 인구가 계속 감소된다면, 관연 군(郡)으로서 유지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이고 보면 이에 대한 대책의 마련은 하루가 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군내 인구의 감소를 막기 위하여 민·관이 함께 협력, 교육 환경 및 문화공간 종성 등 전반적인 환경개선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 군의 발전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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