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상태바
모성애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3.11.23 0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는 엄마다.
대한민국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엄마는 엄마다. 
머리에 이고 있는 것도 잡아야 되고 왼쪽 팔은 가슴에 매달린 아기를 안고 걷는 엄마의 발등을 딛고 다리에 매미처럼 매달린 아이도 뿌리칠 수 없다.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에서다. 이고 안고 다리에 찰싹 붙은 아이의 엄마 조각상을 관람하면서 은근히 가슴으로 전해진 울림, 여운의 꼬리가 길다. 모성애에 감염된 거다. 
생태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바탕으로 모성애를 연구하고 뇌 과학자들은 호르몬과 신체의 변화를 바탕에 두고 연구했다. 하지만 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이론을 내놓아도  가슴의 울림은 학술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토론할 수 없을 것이다. 엄마들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요당한 모성애의 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런 엄마에게는 엄마됨의 어려움이나, 고통, 후회는 드러내면 마치 모성애도 없는 엄마로 치부 당하거나 비난을 듣기 때문에 견디는 경우지만 극소수다. 모성애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부조리극’을 겪으면서도 대다수가 엄마라는 역할을 당연하게 해내는 것은 심층에서 우려낸 모성애에 도덕성과 책임감을 곁들인 것이지 싶다. 
요즘 젊은 임산부들은 별의별 걱정을 다 한다. 부모의 성격적 결함이 고스란히 유전되는 건 아닐까,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따로 있느냐 까지 궁금해 하는 경우도 있다. 심리 전문가에 따르면 물론 유전인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이코패스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다르다고 한다. 유전적 요인보다 모성애가 부재한 성장과정과 양육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젊은 임산부들의 이런저런 걱정 역시 모성애다. 
조각상을 보면서 깨달았다. 모성애는 단순히 엄마 혼자만의 마음이 아니다 자식으로부터 받는 애절한 텔레파시와 어우러질 때 진한 모성애가 발산한다.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아기가 세상에는 엄마뿐이고 엄마 없이 못 살 것처럼 매달리면서 애틋해 하는 그 표정과 눈동자를 보면 없던 사랑도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모성애란 학문적으로 이러이러 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북극곰은 한겨울에 새끼를 낳는다. 출산을 하면 봄이 될 때까지 한순간도 굴에서 나오지 않고 젖을 먹여 새끼를 돌보느라 굶는다고 한다. 봄이 되면 부쩍 마른 몸으로 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변에 새끼의 배설물을 먹어치우고 냄새를 지워서 다른 짐승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한단다. 이런 행동이 생태학자들의 연구에 바탕이 된다고 한다.  
반대로 일부 유럽 쪽 학자들 중에는 모성애가 본능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18세기 프랑스는 갓 태어난 아기를 유모에게 위탁해 4~5년간 키우는 게 관행이었다. 그래서 모성애가 엄마의 본능만은 아니라는 논리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존 볼비는 보육원 등에 맡겨진 유아들의 심신발달이 늦은 이유를  “모성적인 양육결핍이 원인”이라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 조상은 ‘3년 신화’ 즉 생후 3년은 엄마 품에서 키워야 된다는 설이 있다. 
모성애가 생물학적으로 볼 때 본능이라는 이론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이론도 모두 근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성애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회 내의 젠더의식과 맞물려 모성애의 의미가 과도하게 해석되고, 결과적으로 엄마들을 옥죄게 되는 경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능이라고 주장하든 반대 주장이든 엄마들은 학자들의 논문에 관심 없다. 어쨌든 엄마의 모성에는 무조건 적이다. 보호본능이 이끄는 대로다. 
세상살이가 너무나 각박해지면서 잔인한 범죄가 발생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다보니 가족관계도 친구 사이도 자꾸만 애틋함이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중에 머리에 이고 안고 잡은 엄마의 조각상을 보면서 순수했던 모성애가 살아났다. 가슴이 훈훈해졌다. 

 
모성애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3세 신화’의 경우에도 한국에 도입되면서 왜곡됐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3세 신화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보육시설에 맡기지 말고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게 좋다는 개념입니다. 이 신화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51년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가 발표한 논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볼비는 보육원 등에 맡겨진 유아들의 심신발달이 늦은 이유를 분석한 세계보건기구(WHO) 위탁 연구 보고서에서 “모성적인 양육결핍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개념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도입되면서 아이가 세 살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3세 신화’로 굳어졌습니다. 아이가 가족이나 보육대상과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뜻의 연구가 한국에 들어와서 엄마는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까진 회사에 다니지 말고, 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쪽으로 왜곡된 셈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구에서 엄마가 일하는 상황이 아이의 학습능력과 문제행동간 관련성이 없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