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상태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3.11.09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전쟁 직후에 입학한 초등학교는 교정 절반이 상이용사가 입원한 야전병원이었다. 철조망으로 학교와 병원을 갈라놓았는데, 쓰레기장도 가운데가 철조망이 가로질러 있었다. 쓰레기통을 비우러 가면 언제나 석회를 칭칭 감고 잘려져 있는 팔다리를 볼 수 있었다. 하도 많이 보아서 무섭지도 않았다. 1, 2학년을 같은 선생님이 담임교사를 하셨는데, 키가 작고 말씨가 고왔다. 존함도 기억난다. 내가 글씨를 네모 칸에 꼭 맞게 반듯하게 쓰게 된 것은 이 선생님을 만나서가 분명하다. 늘 공책에 빨간색 색연필로 연못에 돌 하나 던져서 생기는 동그라미를 네 개씩 그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넷(4)이 가장 좋은 숫자로 알고 컸다.
   바삐 살다가 늦장가 들어서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언젠가 큰아들이 그랬다. 아빠랑 목욕탕에 갔던 기억은 딱 한 번이고, 아빠는 동생 놀리는 재미로 우리를 키웠던 것 같다고 했다.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다 지난 세월이니 어쩌랴.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아이들 공책을 들춰 보면 ‘참 잘했어요’라는 잉크 스탬프 고무도장이 찍혀 있었다. 숙제 해오면 누구나 다 찍어 준다고 했다. 이게 영어로 ‘웰 던’(Well Done)이다. 미국 작가 케네스 블란챠드(Kenneth Blanchard) 등 세 사람이 공저한 ‘웨일 던’(the Whale Done)이라는 저서가 있다. 2002년에는 한국어 번역서도 나왔는데, 제목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했다. 웨일은 고래다. 원서 제목은 그래서 ‘고래가 해냈어요’ 정도가 된다. 고래가 춤을 추도록 조련하는 방법은 칭찬에 의한 것이라며, 칭찬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참 잘했어요’에 해당하는 웰 던을 웨일 던으로 살짝 바꿔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웨스 킹슬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절망감 속에서 방황하다가 우연히 범고래 쇼를 보게 되었다. 그는 범고래 쇼를 보면서 어떻게 3000킬로 넘는 몸통을 가진 범고래가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풍선처럼 가볍게 묘기를 부리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범고래는 샴이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조련사는 데이브 야들리라고 했다. 주인공 킹슬리는 문득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를 유연하게 조련하는 야들리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영감(靈感)을 얻게 되었다. 쇼가 끝난 후, 킹슬리는 조련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된다. 야들리는 그에게 범고래를 훈련 시키기 위해서는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태도와 끊임없는 ‘칭찬’으로 끝내는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참말로 칭찬에 인색한 민족이다. 역사를 더듬어 보아도 조선조 500년 내내 잦은 외침과 당쟁으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일제시대를 거쳐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을 3년 넘게 지켜보았다. 다시 폐허 속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도 앞이 보이지 않던 일상 속에서 누구를 칭찬할 일이 많지 않았다. <칭찬합시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등장한 배경이 아니었나 하는 대목이다. 문화방송에서 1999년 1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3년 동안 총 133부작으로 방송하였는데,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남모르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릴레이식으로 소개하면서 서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칭찬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장점을 말해 주는 것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칭찬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인식되며 자존감을 높이고 기분 좋은 심리적 효과가 나타난다. 지난달 17일은 제6회 보은군민의 날이었다. 우리 마을 이장이 군정발전 유공자로 표창을 받았다. ‘주민이 행복한 도시형 농촌 보은’을 만든 공로로 군수의 칭찬을 들은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마을 도로가 넓어지고, 큼지막한 마을 공원이 조성되고, 내방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집집마다 상시 태극기가 펄럭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마을 청소에 나서고 있다. 서당샘물도 맑다. 모두 이장의 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칭찬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