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세상: 많고 많은 커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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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상: 많고 많은 커피의 맛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3.10.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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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세상이다. 1896년 고종이 한양 주재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여 만 1년 동안 망명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외국 문물에 호기심이 많았던 황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처음 맛보셨다. 당시로는 진귀했을 게 분명한 커피가 100년 만에 국민 음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8위의 커피 대량 수입국으로 작년(2022년)의 경우 2조 원에 육박하는 13억 달러어치 20만 톤을 들여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농무부의 2019/2020 통계도 있다. 9000만 톤에 달하는 전 세계 커피 총생산량 중 한국이 1.7 퍼센트의 원두를 수입하며, 이는 전 국민이 1인당 325잔을 마시는 양이라는 것이다. 커피 국제시장에 자국산 브랜드를 내놓은 나라가 92개국이나 된다. 한국도 곧 수출국 대열에 끼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 50개소가 넘는 커피농장이 있고, 그중 전남 화순의 두베이커피는 5,500평 규모의 농장에 22,000그루의 커피나무를 심어 연간 10톤의 커피를 생산하여 국산커피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한류문화가 뜨고 있다. 춤과 노래뿐만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케이 후드(K-food)’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세계화하고 있다. 초코파이와 라면에 이어 김치와 떡볶이 같은 각종 매운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데, 최근에는 김밥까지 가세하고 있다. 케이 후드 덕택에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1회용 인스탄트 커피가 해외에서도 잘 팔리고 있다. 한 봉지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스틱형 커피가 그 주인공인데, 한국 생활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만 마실 수 있는 음료’라고 극찬하면서 날개를 단 것이다. 가까운 동남아로부터 시작된 인스탄트 커피 수출은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미국과 일본에까지 나가고 있으며, 현재 20개국을 넘어섰다. 커피 원두 수입에 비하면 인스탄트 커피는 수출고 면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국내 커피 제품 제조기업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동서식품은 초코파이나 라면에 못지않은 대박 상품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커피 맛에 대한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중 압권은 231대 교황 클레멘트 8세(재위: 1592-1605)가 당시 ‘악마의 검은 음료’라 칭한 커피에게 세례를 내려 축복한 것일 것이다. 클레멘트는 “이 훌륭한 음료(커피)를 이교도(이슬람교도)들만 마신다니 너무 안타깝다. 이제 내가 악마의 음료에 세례를 내리노니 모든 그리스도교도의 음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을 세계사에 등장시킨 탈레랑(Talleyland: 1754-1838)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유럽 격변기에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낸 사람인데, 그가 커피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음식문화에 관한 한 세계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내준 적이 없다고 자부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음식 중에서 단일한 맛으로는 커피와 비교할 수 있는 맛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버킷리스트는 ‘죽다’라는 뜻으로 쓰여온 속어로 중세에 교수형을 집행할 때 사형수가 올라서는 양동이를 걷어차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는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말한다.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주인공(잭 니콜슨)이 암에 걸려 자기 소유의 병원에 입원하면서까지 병실로 가지고 들어 온 물건이 바로 루왁(luwak) 커피 제조기다. 이 커피는 커피콩을 먹은 야생 사향 고양이(civet)의 배설물을 모아 세척하고 가공한 것으로, 과육은 소화되고 딱딱한 알맹이가 체내에 있는 동안 화학작용으로 독특한 풍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350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한 네덜란드가 처음 발견했는데, 사향 고양이 한 마리가 일 년에 기껏해야 500그램 정도를 배출하므로 희소가치가 부가된 셈이다. 루왁 커피를 찾는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나자 커피콩을 원숭이를 굶겨서 사료로 먹이기도 하고, 다람쥐와 족제비가 등장하여 베트남산 루왁 커피인 위즐(weasel) 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는 커피 향을 뜨겁게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커피를 담아낼 커피잔도 대개는 미리 뜨겁게 데운다. 뜨거운 커피가 나오면, 식히기 위해서 불지도 않는다. 커피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조금씩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블랙’으로 반쯤 마신다. 그 후에 생크림이 있으면, 생크림을 넣고 나머지의 반쯤 마신다. 마지막 남은 커피는 반 티스푼쯤 설탕을 넣고 한두 번 만 저은 다음 달콤한 맛으로 아쉽게 커피잔을 비운다. 커피나라 인도네시아에서는 나스기텔(nasgitel)로 커피를 마신다. 뜨겁고, 달고, 진함을 뜻하는 쟈바어다. 이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한국인들이 참 이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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