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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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잡초 
  • 최동철
  • 승인 2023.08.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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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말, 여지없이 잡초에 지고 말았다. 텃밭을 비롯해 집 주변 거의 다 잡초가 점령했다. 사실은 잡초와의 전쟁 초기만 해도 승산은 내게 있었다. 여름 초입 때, 잡초의 근원을 아예 뿌리 뽑고자 제초제를 과감히 살포한 바 있다.

 몇 시간 후, 잡초들은 처량하게 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누렇게 변해 생을 마감했다. 그 다음에 잡초가 또 다시 싹 틔우며 죽을힘을 다해 총공세를 펼칠 때도 처음 때와 같이 제초제를 연거푸 살포하면 끝날 일이었다.   

 한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면 제초제 살포 후 풀숲에서 뭔가 꿈틀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있었다.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아기 방아깨비였다. 이어 주변 잡초 풀밭을 유심히 살펴보니 아기 사마귀도 있고, 엄지손톱만한 아기 청개구리도 눈에 띄었다.

 아! 모르는 새에 이들의 생을 좌우할 삶의 터전을 파괴 했구나.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권정생시인의 ‘밭 한 뙈기’ 시구가 연상됐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그랬다. 그 이후 ‘우리 모두의 집’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을 그 작은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인 잡초를 말살하지 않기로 했다. 이웃 할머니들이 게을러 빠졌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도 잡초제거를 내팽개쳤다.

 이후 잡초들은 신나서 춤추듯 쑥쑥 자라났다. 바랭이는 물론 어릴 적 코 밑과 턱에 붙인 뒤 ‘어흠’하며 어른 흉내 냈던 강아지풀하며 쇠비름, 방동사니, 깨 풀, 중대가리 풀, 개비름, 밭둑외풀, 명아주, 개망초, 까마중, 닭의장풀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못 본 척 하려해도 그럴 수 없는 잡초 중에 ‘환삼덩굴’이 있다. 손바닥 모양의 커다란 잎에 거친 가시 형태의 털, 왕성한 번식력으로 주변 식물을 고사시키고, 제거도 어렵다. 오죽하면 2019년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됐을까 싶다.

 그런데 진짜 밉기만 했던 이 ‘환삼덩굴’이 최근 탈모방지에 효능이 있음이 확인됐다. 폴리페놀이란 성분이 체내 활성산소를 중화·제거하는 항산화 활성 능력이 우수해 탈모와 피부노화 방지는 물론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억제하고, 미백효과까지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쓸모없는 것도 쓸모 있다(無用之用)’는 말처럼 잡초도 꽃 피우고, 유익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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